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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아야 할 사랑의 도움
최세창
- 1615
- 2023-01-24 21:35:50
<데살로니가전서 5:14-15>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 시작하는 말
사람은 다 남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부득이해서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실상, 돕는 사람도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정작 부끄러워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여겨야 할 것은 자립하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존심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을 줄 아는 것은, 도울 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지혜입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도움을 받되, 돕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도록 그의 사랑의 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남을 도울 때에는 꼭 도와야 할 경우인가를 판단하고, 주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2. 주고받아야 할 사랑의 도움
교역자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일의 중대성에 비추어서 그들을 사랑하며 존귀하게 여기고, 교인들끼리 화목하라고 권면한 바울 사도는 문제아들을 도우라고 권했습니다.
첫째, 아주 중대한 일인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는 것입니다. “규모 없는 자들”의 헬라어 아타크투스(ἀτάκτους)는 ‘군기를 문란하게 만드는 자들’, ‘의무에 태만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이나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매우 많이 있습니다. 도덕이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문란한 사람들은 권리만 내세우고, 의무에는 태만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갖춘 지식과 실력과 정보와 권력은 물론, 남들까지 이용하거나 짓밟으면서 권세와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이런 지도자들이나 공직자들은 속한 단체나 국가와 국민을 문란하게 만드는 일에는 탁월하고, 의무 수행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그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 안에도 규모 없는 교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과 중생,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까?
저도 목회자가 되기 전에는, 교회에는 다 천사 같은 사람들만 다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은, 교회에는 근본적인 피조성과 죄성, 가능성과 한계성, 자율성과 제한성, 나약성과 필멸성을 깨달은 사람들만 다니는 곳이 아닙니다. 온갖 문제와 갖가지 병고와 나약함과 부족함 때문에, 주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도움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을 보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과 교인들을 돕는 것은, 권고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돕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에 권계하는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언젠가, 어느 종교 단체의 여자 지도자가 행한 범죄와 같은 범죄 이야기를 듣고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모 종교 단체의 지도자가 신자들에게서 돈을 빌린 후에, 높은 이자를 꼬박꼬박 주었습니다. 그렇게 신자들에게 신임을 얻고는, 더 많은 신자들에게서 돈을 빌렸습니다. 결국 일이 터져 버렸고, 종교 단체가 불신과 혼란과 시험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 12:15을 보면,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라고 했습니다.
둘째,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의 헬라어 올리고프쉬쿠스(ὀλιγοψύχους)는 ‘담력이 적은 자들’, ‘낙담하는 자들’, ‘소심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는 박해로 인한 환난 때문에 심약해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당대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으로 잘못 안 탓에, 재림 전에 주님 안에서 먼저 죽은 교인들로 인해 낙담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재림 전에 죽을까 봐 겁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기타 원인들로 인해 심약해진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인들에게 적절한 도움은 주님의 이름으로 안위하는 것입니다.
셋째,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자들”의 헬라어 아스테논(ἀσθενών)은 신체가 허약한 사람이 아니라,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미성숙한 교인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 곧 영력이 약할 때에는, 사단의 시험이나 핍박이나 죄의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미성숙한 교인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넷째,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무에는 게으르고, 문란하게 하는 일에는 부지런한 교인들과 소심하고 심약하여 낙담하는 교인들과 미성숙한 교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처벌하는 대신에, 가르치거나 권면한 후에 깨닫고 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도움이 안 되는 도움이 있고, 심지어 해가 되는 도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에 돌아온 곰바우를 뚫어져라 보던 동생이 물었습니다. “형아, 물고기도 땀 흘려?” 더워서 정신이 없던 곰바우는 아무 대꾸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따라 들어온 동생이 또 “형아, 말 좀 해 봐! 물고기도 땀을 흘리냐구?” 그러자 한심하다는 듯이 한참 동생을 쳐다보던 곰바우는 “당연하지, 이 바보야! 그렇지 않다면 바닷물이 왜 짜겠냐?”
이 세상에 잘못된 도움 때문에 잘못되는 자녀나, 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험 때가 되자 사랑이 많은 엉뚱이가, 멍청이를 도와주었습니다. 시험을 치는 시간에 멍청이는 배운 대로 연필을 굴려서 답안을 작성하고는, 누가 커닝할까 봐 시험지 위에 엎드려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시험 종료 10분 전이 되자 고개를 들더니, 또 연필을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선생님이 의아스럽다는 얼굴로 물었습니다. “어차피 연필 굴려 쓴 답인데 왜 또 연필을 굴리냐?” 그러자 멍청이가 한 말이 걸작입니다. “에이, 선생님도. 검산을 해야죠.”
세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도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적절한 때에 필요한 것으로 적합하게 돕지 않으면, 애써 도와 줘도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더 나아가,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라고 권면했습니다.
데니(Denney)는 “보복이란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것이다.…그것은 가장 쉽게 덕인 것처럼 가장할 수 있는 것인데, 인간이 복음의 정신을 거슬려 행하는 마지막 세력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복음에 맞는 선을 좇지 않고, 악으로 악을 갚는 보복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뿐입니다.
그러한 보복에 대해 출애굽기 21:23 이하에는,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런 규정은 본래 백성들이 공동체에 대해 행해진 사회적 악행 등을 응징할 때, 당한 악행 이상으로 보복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개인적인 보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것을 이용함으로써 계명의 목적을 왜곡했던 것입니다. 제한적인 율법으로서 주어진 것을, 허용된 규정으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명하심으로써 보복 대신에 취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선은 인간의 도덕적 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부합하는 선을 회피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 특히 내게 이런 악행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까, 내게 저런 악행을 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돕는 것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피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보면, 독재자 한 사람이나, 전범자 한 사람이나, 힘있는 교활한 위선자 한 사람을 도운 것이 엄청난 살상과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게 된 일이 적지 않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사람은 다 남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나 교인들을 도울 때에는 꼭 도와야 할 경우인가를 판단하고,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우월감이나 교만이 아니라 주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주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말씀에 합하는 선을 좇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 특히 내게 이런 악행을 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이 그에게 도움이 될까, 내게 저런 악행을 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그는 물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처신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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