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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구원받은 극악했던 3사람
관리자
- 2335
- 2012-06-13 09:00:00
시편 69:1-18, 누가복음 23:32-34.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생명의 종교입니다.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고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어떤 처지에서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어떤 죄악이던지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고, 어떤 죄인이든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없으며 멸망 받지 않고 용서받고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자복하면 어떤 죄인이든지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없고 사함 받지 못할 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죄인도 용서를 받았고, 살인자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았으며, 저주받을 죄인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본의 아니게 죄를 지어서 꼭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이 죽음의 종말직전에 기도를 하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면전에서 배반하였던 베드로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한 때는 가이사라 빌립보지방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여 주님으로 칭찬을 받았고 베드로(반석)라는 새로운 믿음의 이름을 부여받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주님을 죽는데 까지 따르겠노라고 맹세하였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폭도들에게 칼을 휘둘러 말고의 귀를 자르는 용기를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폭력으로 폭력 자들을 대하는 짓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석에서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내 몸” “내 피”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오늘 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서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특히 힘주어서 강조하기를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가 오늘밤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예언의 말씀과 같이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폭도들에게 체포되시어서 가야바대제사장의 뜰에 끌려가셔서 조롱과 멸시를 받으실 때에 베드로는 멀찍이 따르며 모닥불을 쪼이며 구경을 하다가 작은 계집종이 “너도 저 사람과 같은 갈릴리 사람이다”고 하자 베드로는 당황하여 “나는 아니라 나는 그를 알지도 못 한다.”고 부인하고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또 베드로에게 “너도 그와 일당이다 네가 말하는 것이 갈릴리 어투다”고 말하자 베드로는 다시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또 “너도 그와 같이 있었다.”고 말하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그러자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께서 “네가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신 말씀이 생각이 나서 밖으로 뛰어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만 예수님을 배반하였나요?
아닙니다. 가롯 인 유다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가롯 인 유다는 은 30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은 30은 종을 사고 파는 금액입니다(출 21:32).
창세기에 보면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아라비아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릴 때, 은20에 팔았습니다(창 37:28).
그러니까 가롯 인 유다는 예수님을 종의 몸값을 받고 팔아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롯 인 유다는 그 돈을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성전의 마루바닥에 던져버리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였으나 거꾸로 떨어져서 땅속으로 파고들어 창자가 터져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롯 인 유다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에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회개했더라면 그도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지 아니하였기에 영원한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배반의 죄를 지었던 베드로는 눈물로 회개하였기에 사도직을 다시 회복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언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행악 자 바라바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라바는 열심당원이며 폭력자라고 합니다.
로마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불만을 폭력과 강도짓으로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살인까지 저지르며 살았던 행악자입니다.
바라바는 로마의 정부로부터도 강력범죄자로 여김을 받았고 유대인들에게도 외면을 당하는 강력범죄자입니다.
바라바는 이미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취급을 받는 자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바라바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인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이 끌고 온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로서는 행악자이며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자 바라바를 비교하여 명절이면 죄인 한 사람씩을 놓아주는 전례대로 “내가 명절의 규례대로 죄인 한 사람을 놓아주려고 하는데 너희가 아는 바라바라고 하는 살인자를 놓아주랴? 아니면 너희가 끌고 온 예수를 놓아주랴?” 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죄 없는 예수를 놓아달라고 할 줄로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총독 빌라도의 의도했던 대로 예수를 놓아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러자 이들의 합심하여 요구하는 부르짖음에 빌라도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세수 대에 물을 떠다가 책임회피의 손을 씻고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고야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자들의 합심하는 간구에도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의 나쁜 목적으로 부르짖는 합심의 목소리에도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악한 자들의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도 들으시고 바라바를 죽을 위기에서 살아나게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들의 합심하는 기도를 외면하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합심하여 간구하는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살인자 바라바까지도 놓아달라고 합심하여 부르짖는 폭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구출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한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합심하여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십자가에 처형 받은 강도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이 박혀서 죽어가는 사형장에서 두 사람의 강도들이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쪽강도는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쪽 강도가 그를 책망합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하고, 예수님을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강도는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의지하면 구원을 받을 것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 강도는 최후의 종말시간에 기도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강도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타종교처럼 염불이나 외우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타종교처럼 주문이나 외우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타종교처럼 우상에게 절이나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고 응답을 받는 종교입니다.
형식과 외식에 치우쳐서 의미 없는 몸짓으로 예배를 다했다고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찢고 통회하고 자복하며 눈물로 회개하고 구할 것을 구하여 응답을 받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