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세창 목사님께 드리는 답변

관리자
  • 3232
  • 2012-06-18 19:34:09
존경하는 최세창 목사님
목사님의 신학적, 주석학적 지식으로 감리회를 섬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목사님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은 목사님의 노력에 제가 보는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해 주시고 괘념치 않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논쟁이나 맘 상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학적, 신앙적 토론처럼
예민한 것은 없으니까요.
목사님의 질문을 토대로 제 답변을 실었습니다.

1) 본문의 주제는 구원받는 방도입니다.

- 이 질문에서 전 근본적으로 구원의 조건은 믿음뿐이지만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잘 정립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2) 부자라는 것은 상대적인데, 어느 정도의 물질을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까? 구원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없고의 부(재물 소유)의 기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 그 기준은 각자의 양심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이 클수록 가난해 지기를 자처 할 것이며, 이웃 사랑에 눈을  뜬 이들이라면 물질보다 지금 고통당하는 이웃이 더 귀하게 보이기에 하찮은 물질로 인해 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하셨거든 믿음이 없어서 과도한 미래의 준비에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지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그 부자처럼 나사로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자가 나사로를 볼 수 있었으면 나누게 되었을 것을요. 그리고 어느 시대나 나사로는 넘처 나고 있기에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의 부자는 양심에서 그 답을 주리라 봅니다.

3) 오 목사님의 의견은 구원받은 표징이나 구원받은 믿음에 따르는 사랑의 행위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 칭의와 함께 나타나는 사랑과 행함의 능력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4) 삭개오의 물질 배상 및 구제 행위에 대한 약속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에 따른 것이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오 목사님이 구원받았다고 대답하셨던, 구원받은 강도는 물질 배상도 구제 행위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 삭개오는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순간 행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삭개오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것이겠지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인 것처럼 말입니다. 구원 받은 강도가 만약 사면을 받아 십자가에서 내려왔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는 이제 선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 강도 짓하는 사람은 절대 아닐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착하고 선한 사람임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5)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부자도 되게 하시고, 출세도 하게 하시고, 지도자도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예 생활을 하던 요셉에게만 함께하신 것이 아니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요셉에게만 함께하신 것이 아니라, 애굽의 총리 생활을 하던 요셉에게도 함께하셨습니다.

- 부한 사람은 더 힘써 나누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귀하게 된 사람도 더 감사하며 이웃 사랑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낮은 자들보다 말이지요. 물론 가난하고 낮은 자들도 그들의 분깃에서 언제나 이웃을 생각해야 겠지만 당장 나, 가족을 챙기기에도 급급한지라
여유가 있는 이들과는 사정이 다르겠지요. 가장 가까운 이웃은 내 가족이라고 봅니다.

6) 오 목사님이 “결론은 실재적으로 물질을 나누고 포기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이르지 못 할 것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어차피 사람이 죽을 때는 자의든 타의든 물질을 비롯한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빈 몸으로 가게 마련이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을 나누고 포기하고 빈털터리가 되어야 하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아니면, 그냥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취지로 한 말씀입니까?

- 죽을 때 놓고 가는 차원은 물론 아닐 것이고요. 물질을 나누고 포기 할 때는 지금이겠지요. 그러나 일용할 양식은 나와 가정을 위해 항상 필요한 것이며 그 일용할 양식은 집, 자동차, 자녀 등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겠지요. 한국의 보통 서민은 사실 더 포기하고 나눌 것도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정에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바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유를 어느 정도 해야 할지 자신의 신앙양심에서 정답을 가지기에 염려할 사항이거나, 헛갈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7) 물론, 구원 곧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에 따르는 행위의 삶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포기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 물질이 자신과 가족의
한계를 넘지 못한 다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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