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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이 진 십자가
관리자
- 3461
- 2012-06-19 20:49:46
이사야 53:7-9, 누가복음 23:13-26.
십자가는 두 개의 통나무들을 가로와 세로로 결합시켜진 사형기구입니다. 이 십자가의 처형은 식민지인이나 정치범들이나 흉악범들에게 사용했으나 로마인들이나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국민들에게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십자가를 위협적으로 사용한 것은 로마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을 때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입니다.
로마의 장군 바러스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평정하고 반란자 2천명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아둔 채 길가에 전시해 두어서 참혹한 십자가의 처형을 보고 민중들의 반란을 경계로 삼았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시체는 새들이 뜯어먹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십자가의 처형을 제일 두려웠고 경계했습니다. 사형언도를 받으면 갖은 모욕과 희롱당하고 알몸으로 벗겨진 채 가죽채찍으로 매를 맞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달려 죽을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까지 끌려가 두 손과 두 발에 쇠못이 박힙니다. 살과 뼈가 부셔지고 신경이 끊어져 많은 피를 흘립니다. 벌거벗겨 노출된 온 몸에는 갖은 고문과 채찍을 맞아 찢어진 상처부위에 따가운 태양열이 내려 쪼이고, 수분과 진액이 다 빠지고 지친 사형수는 목이 타 헐떡입니다. 피 냄새를 맡은 파리들과 모기떼들이 상처를 빨아대면 가려움으로 더 괴로움을 당합니다.
이렇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며 고통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면 구경꾼들은 더 흥미 있어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처참하고 무서운지 십자가라고 하면 모두가 치를 떱니다.
이 십자가의 처형을 처음 시작한 페르시아에서는 자기들의 신 올무즈에게 바친 신성한 땅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한 죄수들의 시체를 십자가에 높이 달아서 죽였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체를 버려두지 않으려고 안식일 전날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장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우리 예수님은 죽으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제물로 받으신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는 의로우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심문한 유대인의 총독 빌라도는 로마 정부의 위촉을 받은 사람이지만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와 허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고소 자들에게 “너희가 고소하는 예수는 아무 죄도 없다”고 세 번이나 선언을 하였습니다.
갈릴리 분봉 왕 헤롯도 아무 죄와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시기하고 모함하여 죽이려 한 대제사장 가야바도 아무런 죄와 허물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예수님을 죽이라고 떼를 쓰며 소동부리는 자들 때문에 빌라도는 불법재판의 판결로 사형 언도를 내렸던 것입니다.
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수치와 멸시와 조롱을 받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체포되실 때부터 치욕이요 멸시였습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새워 기도하시다가 검과 몽치를 든 무리들을 이끌고 온 대제사장들과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체포되실 때, 예수님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왕이요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황금빛으로 찬란한 마차로 모셔갈지라도 욕이 될 터인데 마치 강도를 잡으려는 듯 흉기를 들고 몰려와서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였으니 너무도 하는 처사입니다.
피조물인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향하여 흉기를 들이대고 반역하였고 멸시하는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들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다하였습니다. 왕관을 쓰셔야 할 머리에는 가시관을 엮어서 씌우고 감히 눈을 바로 뜨고는 쳐다보지도 못할 거룩한 얼굴에 침 뱉고 이 뺨 저 뺨을 치며 온몸에 가죽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영원한 권세를 나타내는 몸에 왕의 예복을 입어야 하실 몸에 홍포를 입혔고 권위의 홀을 들어야 하실 손에는 갈대를 쥐게 하였으며 눈을 가리고 때리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때리는 자가 누구냐?”고 조롱을 했습니다. 갖은 욕을 다하고 멸시를 하였습니다.
세상의 임금에게 이런 일을 저질러도 능지처참을 면치 못할 터인데 감히 창조주 하나님에게 이러한 못된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탄의 계교에 빠져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②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십자가입니다.
무리들이 다 일어나 빌라도총독 앞에 예수님을 끌고 가서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라고 고소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무리들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죽을죄를 발견할 것이 없으니 때려서 놓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러서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하였습니다.
바라바는 성중에서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사람으로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려고 민란의 주동자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놓아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신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은 가장 흉악한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처형을 받으신 것입니다.
참혹하고 잔혹한 그 십자가에 우리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③ 죄를 씻고 구원을 이루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처형 목적은 정치범이나 흉악범들을 죽이는 사형 틀인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이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달려 죽으심으로 불명예스러웠던 사형 틀은 영광스러운 구원의 생명 틀로 바뀌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그 어떤 작은 죄라도 있거나 허물이 있었더라면 십자가는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사형 틀로 영원히 역사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 처참하고 잔혹한 부끄러운 저주의 십자가의 불명예는 영광과 축복의 십자가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어떤 죽을죄와 허물이 있는 죄인들이라 할지라도 이 십자가를 의지하면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심으로 십자가는 죄인들의 더럽고 흉측한 죄를 용서받는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무서운 죄를 사하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 생각의 어리석고 미련함 때문에 예수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부패와 죄악으로 인해 예수님은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은 온 몸에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우리 손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은 두 손에 못을 박히셨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으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은 두 발에 쇠못이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한 마디로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종합적인 구원선이요 보장 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하나님과 원수이었으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보혈로 화목을 이루게 되어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와 찬양을 드리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십자가가 저주와 형벌의 십자가가 아니라 영광의 십자가요 구원의 십자가요 축복의 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2. 시몬이 진 십자가는 억지로 진 것입니다.
시몬은 북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온 사람입니다. 시몬은 북아프리카에서 모처럼 번화한 도시 예루살렘을 구경하려 왔을 것입니다.
당시의 예루살렘은 종교의 거점도시요 신앙의 요지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일찍이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나은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물로 바쳤던 장소에 솔로몬이 7년에 걸쳐 거룩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성전에서는 6백년에 걸쳐서 매일 제사장들이 반차를 따라 하나님께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황금 빛 찬란한 아름다운 성전은 태양 빛을 반사하여 위용을 떨쳤고 유대인들에게는 더 없이 자랑스러운 곳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 성전의 아름다움을 자랑스럽게 말했고 예수님은 “네가 보느냐?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무너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집정 왕과 총독의 거처가 있는 곳이며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들과 잘 다듬어진 돌들로 포장된 사통팔달의 도로위로 로마 군병들이 찬란한 군복을 입고 씩씩하고 절도 있게 늠름히 행진하는 용맹스런 모습은 철천지원수이며 적일지라도 시골사람들에게 능히 구경할만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요 며칠 동안 그 예루살렘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목수청년이 무리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 가야바와 총독 빌라도와 헤롯 왕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고 무리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는 성화에 못 이겨 십자가에 못 박기위해 흉악한 강도들과 함께 골고다로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모처럼 시골에서 올라온 시몬은 온 도성이 소란한 중에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들을 구경하는 군중들 틈에 섞여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매를 맞으며 피투성이가 된 채 골고다로 끌려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① 그런데 그 십자가는 예수님이 감당할 수 없어서 쓰러지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후 사흘 밤낮을 가야바 대제사장과 빌라도 총독과 헤롯왕에게 끌려 다니며 심문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잠시도 쉬지 못하시고 밤잠도 주무시지 못한 채 물 한 모금 떡 한 조각 입에 대지 못하시고 매 맞고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여 가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여 쓰러지고 넘어지십니다.
로마 병정들은 그때마다 가죽채찍으로 인정사정없이 온 몸을 내려쳤습니다. 아무도 넘어진 예수님을 일으켜 세워주는 자가 없습니다.
군중들은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며 조롱하고 비웃으며 구경할 뿐입니다. 간신히 일어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려하지만 이기지 못해 또 넘어지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든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중풍 병들어 고통당하며 친구들의 들것에 담겨진 채 예수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은 사람은 어디로 갔나요? 날 때부터 소경이었는데 예수님께 간구하여 눈을 뜬 바디메오는 어디로 갔나요? 여리고에서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보려했던 세리장 삭개오는 어디로 갔나요?
예수님께 부르짖어 고침을 받은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죽었다가 무덤에서 살아난 나사로는 어디로 갔나요?
벳세다 광야에서 보리떡과 물고기로 배불리 먹었던 5천명의 무리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를 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죽는 데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하던 제자는 어디로 갔나요?
로마 군병들에게 매를 맞으며 십자가를 이기지 못하여 쓰러지고 넘어지며 고통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따르며 우는 사람들은 몇몇 여자들뿐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여자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위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② 시몬은 이유도 원인도 모르는 채 십자가를 졌습니다.
시몬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구경을 하는 것을 따라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30대의 젊은 청년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그 십자가를 이기지 못하여 쓰러지고 넘어지며 로마 군인들에게 매를 맞는 것이었습니다. 거리의 구경꾼들은 십자가를 지고 고통 받는 예수님을 재미있는 듯이 조롱하고 비웃으며 깔깔대면서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때 로마 군인은 십자가를 지고 견디지 못하여 쓰러지고 넘어진 죄수를 채찍으로 내리치다가 매를 맞으면서도 일어나지 못하는 죄수의 등 너머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구경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시선이 멈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검은 얼굴의 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올라온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군인은 시몬에게 감아 쥔 채찍을 내어 밀고 까딱거렸습니다.
시몬을 앞으로 나오라는 신호입니다. 시몬은 어기지 못하고 군인이 부르는 대로 나아갔습니다. 군인은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지라 했습니다. 시몬은 얼떨결에 넘어진 죄수의 어깨에서 십자가를 벗겨 짊어졌습니다.
시몬은 십자가의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인지 신분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군인의 명령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시몬은 왜 이렇게 젊고 평온하게 잘생긴 젊은 청년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죽을죄를 저질렀기에 십자가를 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낮 모르는 사람의 십자가를 이유도 모르는 채 대신 진 것뿐입니다.
③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참으로 재수가 없게 걸렸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많은 사람들 중에 자기가 걸려들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되었으니 운이 없어도 너무 없고 창피하게 걸려들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다른 짐이라면 모르지만 사형수가 못 박혀 죽을 사형 틀을 대신 지고 간다는 것은 부끄럽고 싫은 일일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인공에 대해 증오와 미운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억지로 하는 일은 더 힘이 들고 무겁습니다. 시몬은 증오와 저주의 무거운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가는 것이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연관을 가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등에 태운 나귀새기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양하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이 영광 받으실 때 나귀도 함께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교회에서도 역사에서도 영광의 이름으로 길이 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영광의 이름으로 영원히 기록이 됩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와 그릇으로 선택을 받아 십자가를 진 바울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진 아펜젤러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자원하여 짊어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다가 인생관이 달라지고 삶이 바뀌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3. 십자가를 진후 시몬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시몬은 예루살렘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복음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말씀은 일찍이 들었을 것이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직 소개를 받은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아프리카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로 고난을 당하다가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강퍅한 바로의 고집을 10가지 재앙으로 꺾고 나와서 홍해 바다를 육지와 같이 건넜습니다. 그러나 홍해 바다까지 추격한 애굽의 바로와 추격 병들은 홍해 바다 속에 모두 수장되어 죽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했으나 만나와 메추라기 고기를 먹이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우더니 마침내 약속의 땅 축복의 가나안복지의 7족속 31왕들을 멸하고 정착했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은 초대 왕으로 추대되고 다윗은 나라를 확장했으며 솔로몬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비롯한 왕궁을 건축했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는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두 나라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역대의 악한 왕들로 인하여 나라는 외세의 침략을 받고 백성들은 바벨론과 수리아와 파사로 끌려가 고난을 받았다는 역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을 때 그와 가족들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함의 자손이요 이방인이었던 시몬의 가족은 셈의 후손과 이스라엘 선민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① 시몬의 온 가족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시몬이 진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요 무거운 십자가이지만 사랑의 십자가이며 은혜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져본 사람만이 십자가의 비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져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를 져본 사람만이 예수님의 고난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일이 내게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주님을 위하여 질 때 그 십자가는 내게 은혜가 되고 그 십자가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고 예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왜 우리가 울부짖고 기도하지만 응답이 되지 않고 답답하기만 합니까?
왜 우리 기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맡겼으나 우리가 그 십자가를 피하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피하려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들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위해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가족이 구원을 받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민족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지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교회는 부흥이 됩니다.
십자가 있는 곳에 구원이 있고 축복이 있고 사랑이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졌을 때 그의 가족들이 구원을 받았고 주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었으며 십자가의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② 시몬 부부는 대 사도의 양부모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는, 로마서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난 후 그의 아내는 바울 사도의 영적인 믿음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교회들에게도 상당히 존경을 받는 여성이었을 것입니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바울 사도의 전도 여행에 후원자로 많은 일을 하였을 것이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시몬의 아들 루포와 알렉산더도 교회에서 잘 알려진 유력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축복을 받은 것은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하여 올라갔기 때문에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 졌던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시골에서 교회에 처음 나갔다가 교회학교 교사가 없어서 지도를 못하는 데 교사로 수고해달라는 목사님의 권고를 받고 교회학교 공과 책을 읽고 교회학교 교사노릇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이 은혜를 받게 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③ 길이 남을 이름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의 성도가 되었습니다.
시몬이 진 십자가의 시간은 결코 오래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동안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신 졌다고 하는 이름으로 시몬의 이름이 영원히 남을 영광의 이름으로 기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시몬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이 나오게 되고 시몬의 이름이 나오게 되면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지는 것이 이처럼 큰 영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와 하나님과의 수직관계가 충성으로 잘 성립되어 화목해야하고 이웃과 이웃의 수평 관계가 사랑으로 잘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잠깐 왔다가는 우리 인생길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를 사양하지 말고 충성스럽게 잘 감당함으로 영원히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남겨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어 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