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2강: 금식과 새 종교(2:19-22) B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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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19 19:08:43
금식에 대한 도전적인 질문을 들으신 예수님의 반응에 대해, 마가는【19】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옛 종교와 새 종교에 관한 첫째 비유이다. “이 비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유대의 혼인은 랍비가 자신의 성경 교육에 지장을 초래하면서까지 참석할 만큼 중요한 의식이었다”(E. Schwei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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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E. A. Blum)은 “그 축제는 혼인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신랑이 신부를 그 자신의 집이나, 혹은 부모의 집으로 동반하고 들어오는 순서로 이어졌다.”라고 하였다. 바클레이(W. Barclay)는 “결혼식은 축제 후 저녁 늦게 거행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 신혼부부는 자신들의 새 가정으로 안내되었다. 그때까지에는 날이 어두워지고, 신혼부부는 머리에 닫집을 얹고 불이 켜진 등불들에 의해 마을길로 안내되었다. 신혼부부에게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잘 살기를 빌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 먼 길이 택해졌다. 그러나 신혼 부부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고 가정에 머물렀고, 일주일 동안 집을 개방하였다. 신혼부부는 관을 썼고 결혼 예복을 입었다. 마치 왕과 왕비처럼 대접받는 신혼부부는 실제로 왕과 왕비처럼 옷을 입었으며, 그들의 말은 법이었다. 극심한 결핍과 끊임없이 힘든 일이 있는 한평생에 이 축제와 기쁨의 주간은 대단한 경사 중 하나이었다.”라고 하였다.}(요 2:3의 주석). 그때는 모든 사람에게 큰 기쁨과 축제의 때로서 음악과 흥겨운 잔치가 대개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의 지상에의 복된 현존을 바로 이 혼인 잔치로 비유하신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을 신랑으로, 제자들을 혼인집 손님들로 비유하신 것이다.

손님들은 휘오이(υἱοὶ)이며 문자적으로는 ‘아들들’이라는 뜻인데, 친밀한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결혼식 준비의 책임을 지고 있는 신랑의 친구들을 가키는 것이다”(A. E. Sanner).

요는, 기쁘고 즐겁고 복된 혼인 잔치의 상황에서 금식하며 슬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예수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율법의 규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 까닭은 예수님의 강림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본격적으로 도래했고, 어둠의 권세가 물러가고 있으므로, 금식과 탄식의 때가 아니라 기쁘고 즐겁고 복 받을 때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은 율법의 위에 계신 자이시며 완성자이시기 때문이다(마 5:17). 따라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요구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이상의 기쁨에서 나오는 종류의 행동이며, 또 이것은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한 소홀함을 내포할 수도 있다(2:14)”(E. Schwei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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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혼인이 메시아적인 구원의 때를 상징하는 것은 예언자들에게까지 소급된다. 일찍이 예언자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비유하였다(사 54:4, 62:4, 렘 31:32, 겔 16:8, 호 2:2, 7, 16 등). 때로 랍비들도 메시아 시대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혼인 잔치의 비유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구약성경이나 유대 문학에서 메시아가 신랑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W. L. Lane).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과 신자 사이를 부부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마 25:1-10, 고후 11:2, 엡 5:22, 계 19:7, 21:2, 22:17). 특이한 것은, 세례 요한이 자신을 신랑인 그리스도의 친구라고 했다는 점이다(요 3:29).

예수님은 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금식해야 할 때, 즉 자신이 대속의 죽음을 겪게 될 때에 대해,【20】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일주일 동안 계속된 혼인 잔치가 끝나는 날, 신랑을 신부 방에 데려다 준 후에 친구들은 떠난다. 잔치하는 동안에는 금식일이 되어도 금식하지 않았다. 신랑과 헤어진 후에 비로소 금식하였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후에는 슬픔에 잠겨 금식할 것이다.

인류 최대의 비극은 바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비탄과 동시에 우리는 그 죽음을 통해 성취되는 구원의 사랑을 감격적인 눈물로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 진정한 금식의 의미가 있다. 바로 이 예수님 안에서 율법주의 및 세상 모든 것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 종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교회의 초기에서부터 내려온 “12사도 교훈(Didache) 8, 1에, 이미 공동체에서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는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J. Gnilka, p. 145). 여기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금식의 중요한 의미가 예수님의 수난 및 죽음과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들에게 대답하신바 옛 종교와 새 종교에 관한 예수님의 두 번째 비유에 대해, 마가는【21】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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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베 조각은 예수님으로 인한 새 종교를, 낡은 옷은 옛 종교인 유대교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옛 종교에 새 종교를 결합하는 부적절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율법적인 규례와 의식 및 형식에 의한 행위를 규정하는 옛 종교에 복음적 원리와 동기에 의한 새 종교는 결합될 수 없다”(E. P. Gould). 율법 종교와 복음의 종교는 공존할 수 없는 다른 것이다. 복음은 율법의 완성이지 율법과 동등한 것이 아니다. 복음의 새 종교는 그에 적합한 형식이 필요한 것이다.

저들에게 대답하신바 옛 종교와 새 종교에 관한 예수님의 세 번째 비유에 대해, 마가는【22】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으로 인한 새 종교를 의미하고, 낡은 가죽 부대1)는 옛 종교인 유대교를 의미한다.

이 비유의 의미 역시 앞의 비유의 의미와 같다. 즉, “율법주의의 구조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산출되는 새로운 경험의 생동성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D. W. Burdick).

두 비유는 기독교가 단순한 유대교의 아류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것으로, 유대의 율법들은 기독교인을 속박하지 못한다는 바울의 교훈의 예견이다. 율법의 속박은 복음의 자유를 감당할 수 없다.

米田豊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옛 의식이나 습관에 구애됨이 없고, 또 속박되지도 않는다. 구 종교를 수선하고 보충한 것이 아니라, 전적 새로운 혁명적 종교이며 구형을 타파하는 생명력 있는 종교, 거듭난 새 마음에만 간직될 종교(교훈)이다. 생명과 자유와 능력 있는 복음의 새 술은 의식과 율법의 낡은 부대에 넣을 것은 아니다. 복음의 은혜는 명실공히 새롭고 표지도 내용도 함께 새로움으로써만 의의가 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규례 또는 전승에 의한 금식 문제를 계기로 보다 더 근본적인 교훈을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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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 Gnilka, p. 146: 양이나 염소에서 통째로 벗겨 낸 가죽이 포도주 부대로 사용되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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