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아는 과연 부자였을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인이었을까!

관리자
  • 2666
  • 2012-06-21 19:49:23
\"루디아는 루디아의 두아디라성에서 사는 여인이었다. 그의 이름이 루디아라고 하기 보다는
루디아에 속한 성읍인 두아디라에서 왔기에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본다.
두아디라는 수많은 전문직종별 조합이 있었는데 몇 가지 예를 들면 구리장인, 무두장이,
가죽제품 제조공, 염색공, 모직공, 면직 공들의 조합이 있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에서 생산한 것을 파는 자주장사로 그 곳에(빌립보)와 있었으며 그녀가 팔고 있었던 옷감, 또는 옷의 ‘자주’는 두아디라에서 염색공 조합이 사용하던 꼭두서니 뿌리로 만든 ‘터키자주’라는 물감이었을 것이다.\"(민영진,성서대백과사전 제3권, 성서교재간행사,1982, pp150-151)

꼭두서니 꽃은 터키지역에서 많이 나는 식물이며, 우리나라에도 서생하는 꽃이다.
그 뿌리는 물감의 원료로 쓰이는데 자주빛을 내는 색체를 만든다.
루디아가 팔았던 자주는 바로 그 자주빛 물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로마의 박물학자 플리니는 이 염색법을 소라고둥을 채집한 다음 농도가 진한 소금물에 여러 날 담가둔다. 천이나 실을 이 용액에 한 번에 수 시간씩 여러 번 담그기를 반복한 다음 햇볕에 쪼이면 자주색으로 염색된다”고 묘사했다.“ 또한 \"20세기 초 파울 프리뢴더란 독일의 화학자가 이 염색법을 재현해봤는데, 소라고둥 1만2천개에서 불과 1.4g의 염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라는 김교석 목사의 글에서 소개하고 있는 자주색빛깔과 공정이 같을 수 없고 그 가치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루디아는 강가에서 여러 여인과 배회하는 가운데서 바울을 만난다.
루디아도 바울처럼 유대인이었는지 빌립보에서 유대인들이 머물렀던 지역에서 만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아시아의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가 “루디아가 자주 장사였다는 것은 한낮 장사치에 불과했다는 것이 아니라 황실과 고관대작을 상대로 하던 대단한 국제무역가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고 했던 김 목사의 생각은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1. 자주빛 내는 물감의 원료가 ‘터키 꼭두서니’ 였기 때문이다.

2. 여러 여인과 강가에서 배회하듯 있었다. 바울은 기도처를 찾기 위해 한적한 곳을 향했던 것이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비우고 그곳에 있었는데 아마 장사하는 자리였다고 본다.
그러니 그가 황실이나 고관대작을 만나는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3. 고대사회에서 여인이 이국땅까지 여러 여인과 함께 와서 유대인을 위한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 주지하는 대로 고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아와 과부는 보호 대상자이다. 루디아가 과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생활전선으로 나아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는 오늘날 보따리 장사였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 본다.

4. 그가 부자였다면 바울이 한사코 사양하는 자신의 집에 모실 것이 아니라 복음전하기가 더 좋은 장소를 임대했을 것이다. 바울이 몇 번이고 마다한 것은 그의 집이 손님과 함께 기거하기에 합당치 않는 공간이었던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루디아는 당신이 나를 주 믿는 자로 여기거든 유하라고 강권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바울이 그 여인의 청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눅10:7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이 집 저 집 옮겨다니지 말아라 어느 고을에 가든지 너희를 영접하는 집에서 머물라” 이와 같은 가르침과 원칙을 몰랐을까! 그럼에도 그의 집은 바울을 비롯하여 일행들이 모이기에 협소했던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이전 김정효 2012-06-21 나를 가짜 만들려
다음 관리자 2012-06-21 박운양님 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