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 한만경님께 답을 드리며, 일단 반가움을 전합니다. ^^

관리자
  • 2925
  • 2012-06-21 08:40:29
참, 오랜만에 감게에서 서로의 관점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제가 지난 06년 미자립교회에 관한 글부터 시작해서 7년동안 감게에서 글을 써오면서, 한만경님의 입장을 전해받으면서, 제대로 글을 주고받으면, 지켜보는 감게 독자들에게는 감정적인 과잉의 공방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한만경님의 입장을 지지하는 분들은 뭔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볼 수 있을 것이고, 또 제 입장의 한계는 있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신 분들에게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기에, 일단 무척 반가운 마음입니다.

저는 감게에서 적당하게 어설프게 논지를 제시했다가 바로 접는 방식을 별로 내켜하지 않아 왔습니다. 마침, 이때에 저에게 블레이크를 걸어주시니, 어찌 반가움 마음이 없을 수 있겠는지요?

저는 목사님과 뭔가 의사소통의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전화를 요청하는 메세지를 보냈지만, 메세지를 수신하지 못하신 것인지(지금 제 전화기는 발신정지상태입니다. 몇 주전부터 퀵서비스를 하면서 통화량을 조절하지 못해서 당분간 요금미납으로 바로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주십사 문자를 드렸는 데, 수신을 하지 못하셨을 수도 있고(이런 경우의는 거의 없었지만) 전화통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일단, 감게의 글을 주고받음으로 서로의 진정성과 의도의 함량을 글을 읽는 이들로 평가받을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신 것으로(사실 이미 감게에 필명을 노출시켜서 글을 쓴다는 행위의 전제가 그렇지요)

일단, 답글을 주셨고, 그 답글에 준해서 답변하는 형식으로 글을 보냅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 오래가면, 적어도 2동안 그동안 써왔던 글들에 관해서, 그리고 바로 작성하는 글들에 관한 공방이 일어날 것으로 감지됩니다.

한마디로 살아있는 글쓰기가 되는 셈이지요. 저는 가능하면, 제가 공부한 웨슬리신학의 아우틀러와 존캅과 러년과 무엇보다도 정경옥의 입장에서 의견을 진술할 생각입니다.

먼저, 오늘 올려 주신 답변에 대한 글입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 과 \\'옳다고 믿는 것\\'
이 름        한만경  
날 짜        2012-06-20 12: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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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전히 지 멋대로 판단(웨슬리안적 정체성?보다, 칼비니즘?에 가깝습니다)하고, 꼴리는대로 결정(경건과 사랑을 대립시켜서 어떤 경건이 제 자리를 찾을 지 심히 우려스럽고)하고, 쏠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맑은 물이 원래 생습에 안맞아 흔들어대는 미꾸라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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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경님의 경건론을 한번 제대로 톱아봐야 제대로 된 의견교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생각에 소위말하는 또옹폼은 경건을 빙자하시면서 성서에서 제시하는 모든 가치들을 뒤로 밀어 내시는 글을 쓴 것은 표현상,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만경님의 웨슬리안으로서의 경건론의 지평이 이모든 것을 포월할수 있는 지평의 논지라면, 수긍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 아니지요.

제가 다른 모든 성서에서 제시하는 가치보다 경건을 제시하는 입장이 조장한
교회사의 폭력적 사태들이 제네바시의 성시화운동을 벌리면서 무참하게
고문하고 살인했던 칼빈의 독선적 요소들을 간과할 수 없기에 제기했던
관점이었고, 웨슬리는 경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질식시키는 신앙의 분위기를
가장 경계했던 이였다는 입장이 제입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글은 심사숙고해서 쓴 글이라기보다는 경건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
하기 위한 측면있으실 수 있다고 헤아릴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 제가 이번 제13대 감신총장선거에서 화두로 던졌던 그 바울의 통해서 기록된 말씀을 전제하자면, 이렇게 풀어야 할까요?

믿음 소망 사랑 경건 이 모든 것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경건이라.....  ㅠㅠ

청교도혁명 크롬웰이 가장 높이 휘날렸던 깃발도 저는 경건이라고 봅니다. 소위 말하는 치명적 독소가 빠지지 못한 칼빈의 신학적 전통은 유럽의 근현대사에서 엄청난 폭압적 사태들을 조장했습니다. 그래서 킬빈소총과 칼빈신학을 유비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이후의 개혁주의 전통의 신학은 전혀 지평이 다릅니다. 총신과 고신에서는 보수적으로 해석해도, 장신과 한신에서는 칼 바르트의 입장을 열려진 관점에서 해석하는 신학자들의 저작이 대부분입니다.



2.  그대를 보면, 요즘말로 맨붕이 일어나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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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표현주순이라면, 저는 한만경님을 <맨피파>라고 표현하지요.
정신상태가 피동적으로 파괴된 수준이 바로 <맨피파>라고 하더군요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파괴된 수준이라면 <맨능파>가 되겠지요.ㅠㅠ

갑자기 고등학교시절 맨투맨이라는 영어참고서가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한달이상씩 4번 입원한 이가 맨붕이 아니면 누가
맨붕이런지요. 저는 한만경님이 요즘말로 맨붕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정동장애 종합3급 장애인입니다. 실질적인 요즘말로 맨붕이 아니라
실질적인 맨붕입니다. 그런데, 저는 맨붕인걸 안지하고 있고 그 한계를
감지하고 있는 데, 한만경님은 <맨피파>신지<맨능파>신지 감지할
깜냥이 부재하시다면, 어찌 해야 할런지요?

사실, 제 딸들도 저더로 맨붕~맨붕 입에 달고 지내고 있습니다.

저 요즘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맨붕- 멘탈붕괴- 맞습니다. 인정합니다.



3. 편집기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손기술은 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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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을 직접 편집해 보셨는지는 알수 없지만, 같은 내용의 영상도 편집의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메세지로 읽혀 질 수 있습니다.

저는 한만경님의 글을 편집한 것 없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복사하기 붙이기만
했을 뿐이지요. 한만경님이 그대로 쓰신 글을 준해서 입장을 개진한 것이지 편집이라는 글빛깔을 뿌리시면서, 왜곡의 혐의를 씌우려 하시는 것은 아니시지요. 편집기술의 경지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마우스로 클릭해서 복사하고 붙이기만 해서, 입장을 표현했을 뿐입니다. 이것도 의도적인 입장이 개진된 편집기술이라시면, 감신 03 다큐멘터리 감독인 후배가 쩔겠지요. ㅠㅠ

4. 이곳 저곳 정.신.분.열. 증.세.적. 사고로 들이대는 시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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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세적 사고 이렇게 표현하신 의도는 알겠지만, 정신분열증이라는 표현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신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을 폄하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신분열증>을<조현증>으로 바꿔서 명칭하는 것에 대한민국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이 합의한 상황입니다.

정신분열증을 조현증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게 된 맥락은 <뷰티블 마인드>내시라는 경제수학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보셨다면 감지하실 겁니다.

사실, 이부분도 틀리지 않으신 지적입니다. 제가 1993년 일군단 일포병여단 임진각 최전방 포대에서 대대의 구타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가, 결국은 살아 남고자 탈영을 해서, 이등병으로 강등되고 전역은 동기들과 같이 하게 되었는데, 제가 사복헌병에게 체포되고서 1군단 정신과군의관이 저에게 정신분열증적인 요소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저역시 뒤돌아 보면, 당시 1달여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적인 힘겨움을 겪었었고, 당시에 제가 작성했던 글과 메모와 낙서를 보면, 한만경님이 제기하신 정신분열증적 수준이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돗자리 펴셔도 될듯 ..^^ 대단한 통찰력이십니다.

보통 양극성정동장애 조울증과 조현증(정신분열증)은 경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두 증상에 쓰이는 약이 반이상 동일합니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직접 면접하고서는 다르게 분류합니다.

조현증(정신분열증)은 환청과 환상과 환시와 환감을 동반합니다. 사실, 이런 차원은 퐁티의 견해를 접수하자면, 팔이 잘려 나갔는데도 팔이 있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메타 환장지의 지점과도 연결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모든 인류는 보이지 않게 모든 동일하게 감지의 차이는 있지만, 연결되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정신분열증적 .. 표현의 의도는 알겠지만, 앞으로도 조현증적... 이렇게 글을 쳐주셨으면 합니다.

제 시력은 상당히 좋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눈이 약간 0.36도 사시입니다. 실제적으로 저를 보는 이들이 감지하지 못하지만, 제가 눈을 감고 1시간 이상 관상기도를 드리면,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밝은 빛이 들어오면, 어떤 초점이 잡히긴 합니다. 안과 의사에게 문의했더니, 무시하고 하더군요. ㅋㅋㅋ

5. 慌내장?에 가까운 것 같아 유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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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라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느낌이 있다>라는 표현이신 데,
저에겐 과찬으로 (무한 착각적으로)받겠습니다. 정말, 느낌이 없는
어쩌면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라는 표현처럼, 느낌이 영혼과 등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 나름의 착각적 수용으로 느낌이 있으셨다니
과찬의 칭찬으로 받겠습니다.

저역시 한만경님께 유감입니다. ^^



6. 박전도사.....위와 같이, 내 판단의 글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는가?  또,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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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무의미의 대립을 가장 경계합니다. 저에겐 작금의 류근일의 선생의 진중권과는 또 다른 미학적 기준에 동의합니다. 그는 10여년의 시절을 감옥에 있었지만, 민주화운동보상을 거부했습니다. 조선일보 주필을 마치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진보와 보수가 의미와 무의미로 대척되었을 때, 대안이 없음을 아주 정치하게 제시합니다.

다만, 경건의 의미를 좀더 깊게 살펴보고자, 웨슬리의 일기와 저작들이 떠올라서 언급했을 뿐입니다. 제글을 그토록 심각하게 독해하셨다니... ㅋㅋㅋ

7. 분쟁과 혼란을 만들어 내는 비효율적인 사고와 행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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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과 혼란을 회피하면서 역사는 썩어 문드러집니다. 물론, 저를 미꾸라지로 비유하시기도 했지만, 저는 그동안 그 어떤 문제제기에도 미꾸라지처럼 무책임하게 문제던져 놓고 폭로해 놓고 끝낸 적 없습니다.

<2008년 당시 감리교자유게시판과 당당뉴스에 기록된 저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참고해 주실 것을 소청해 봅니다. 지난 가을 감신합창단 미주공연사태의 진행된 수순도 모니터링해 보주시는 것도>

8. 웨슬리도 칼빈도 더 나아가 하나나님의 사람(성령의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것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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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는 아직 성령의 사람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물론, 웨슬리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완전성화적 지평에서 현직 감신총장 김홍기 박사님의 웨슬리에 대한 평가를 높이 삽니다. 웨슬리는 완전성화적 지평의 감리교 신학을 제시했지만, 완전성화에 이르지 못했다. 아마도 교회사에서 성프란시스코는 도달했던 것으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킬빈신학의 독소를 비판하지만, 칼바르트의 안경을 통해서 본 칼빈은 달랐습니다. 저는 아직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되지 못했기에, 웨슬리와 칼빈의 신학적 입장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그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고, 당연히 제가 계속해서 진행해야 할 신학도로서의 배움과 헌신의 방향입니다. 물론, 저는 칼빈의 한계를 상당부분 웨슬리가 극복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아우틀러 존캅 러년 무엇보다도 정경옥의 입장이 저에겐 아직도 중요합니다. 더 예를 들자면, 현대 유럽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웨슬리와 서신교환도 했던 스베덴보리의 신학적 지평도 저에겐 큰 관심사입니다.

한만경님이 그 이상의 지평에 도달하신 분이라면, 언젠가? 꼭 만나서 가름침을 받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잠언집을 자주 읽는데, 그런 차원까지 도달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


9. 박전도사는 남들이 갖지 못한 뛰어난 \\'학문적 직관\\'은 가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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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직관을 가지고 있다는 매우 높은 평가를 해주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하는 분들이 종종있긴 하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실증주의와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이런 주의로 표현해서 죄송합니다. 이 세가지가 다 소홀할 수 없는 지점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물론, 낭만주의로 포월해야 저도 결론이 받아들여질만 합니다. 직관적 관점과 실증적 관점과 낭만적 관점은 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같은 요소들이 겹쳐져 있고, 강조하는 지점만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무책임하게 감신의 음험한 교수들처럼 학생들 선동해 놓고, 살짝 뒤로 빠지거나, 도저히 깜도 안되면서 여기저기 학자들 이름 을퍼 데면서 아무런 감흥이나 느낌도 주지 못하는 교수들처럼 처신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체질상 저는 그게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실증적인 증거가 앞에 있기도하고, 때로는 언급하신 직관적 관점이 선행할 때도 있습니다.

사실, 글쓰기 자체가 그렇습니다. 제가 번호를 매겨서 글쓰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일단 번호를 매기고 그 다음 써야 할 글의 방향을 어느 정도 잡고서 쓰기 때문입니다. 지적하신 조현증(정신분열증)적 입장에서 글을 쓰면 미로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논지에서 한참 계속해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학문적 직관은 너무 과평가의 표현이시고, 일상적 직관의 닻을 한번 꽂으면 항구에 도착하기 까지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제 직관과 다른 해석을 뒤이어 받아들이게 될 때도 있습니다.

우연을 그저 우연이 아니라, 천사가 앞발등을 찍고 간 섭리라고 본다면, 이 관점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학문적 직관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고맙게 받겠습니다. ^^


(지금 제가 매일 자기전에 복용하는 세로켈과 리툼과 리보티움이 뇌속에서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 저도 수면을 취해야 할 듯 싶네요. 글은 마저 내일 내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답글 달아 주셔서 한만경님께 감사드립니다. )


10. 정말로 가지고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인(품)성\\'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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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내가 판단(당신이 뭔데, 비슷한 처지같은데.....)하여 애기하니 웃기지도 않겠지?.......


12. 나의 하나님! 아니 우리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너의 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셔!

13. 이 소리를 진정으로 들을 수 있을 때에, \\'다윗의 능력\\'으로 출사하시게......



14. 하고싶은 이야기는 많은데.....내가 남에게 언지할수 있는 지경이 아니라 그만 접겠네!

15.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주장하시게......그러나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마시게!

16. 조금더 세월을 보내면 알 수 있게 될 것이야!


17. 평안하시길.......
  

한만경  (2012-06-20 16:57:09 / 211.224.155.233)  

18. 사람의 완악하고 교만한 마음은 어떠한 바닥보다 강하고 단단하다.

19.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도 듣길 싫어하고 거부한다.

20.겉으로 드러난 예의가 아닌....... 진정한 겸손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21.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이성이 그대에게 있다면......귀하게 쓰여질 그릇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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