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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자리 =키노의 진주?
이재신
- 1976
- 2012-07-28 23:58:52
(바로 아래의 도입부분은 김 목사님의 청에 따라 주보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서론적으로 붙여 본 것입니다. 주제넘게~ ,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인생에서 정말 값진 것은 무엇일까?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생의 한계?는 곳곳에서 아픔(존재의 모순)의 흔적을 남긴다.
멀리가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아니 매일의 뉴스에서 흔히 보는 물질과 권력의 해악에 대해서 보통의 사람들(ordinary people)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타나는 부작용보다 오히려 소유자체를 더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그들(갑부?들이나 특정 권력계층)은 양극단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부정한 일이 드러나도 한 부류는 심한 자괴감에 자기를 포기하여 자살이나 심한 우울감에 빠지든지 하는 경우이고, 또 한 부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돈이나 권력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착각에 뻔뻔하고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는 양 극단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
하지만 후자라고 해도 그 이면에 깔린 소외감이나 비애는 감춰져서 드러나지 않을 뿐 오히려 전자보다 더 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그들의 아픔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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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스타인백(John Ernst Steinbeck, 1902-1968)의 중편소설 “진주”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인공 키노와 그의 아내 조안나는 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가는 어부였다.
그들은 이따금씩 바다 속에 들어가서 진주를 채취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요람에 누워 있던 어린 아들이 전갈의 독침에 쏘인다.
그순간 키노의 가족과 함께 하던 평화는 깨지고 그들은 불행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백인 의사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고, 아기는 곧 숨이 넘어갈 듯 위태롭다.
키노는 아이의 회복이 아닌, 아이를 치료할 의사를 부를 수 있도록 진주를 찾게 해달라며 간절히 기도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진주를 찾기 위해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든 키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값진 진주를 찾게 된다.
진주를 손에 넣자 아이의 아픔도 사라진다.
아이를 구해달라는 간절하지만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자, 키노는 이제 진주를 찾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미래를 설계한다.
그들은 기대에 부풀어 이제는 모든 가난이 끝나고 행복한 삶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이 큰 진주를 찾았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졌다.
동네 사람들은 그 값진 진주를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는 듯이 늘 키노의 오두막집을 기웃거렸다.
어느 날 그들 부부는 병이 들어 병원을 찾았다.
이전에는 즉 그들의 아이가 전갈에 물렸을 때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던 의사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과잉 친절을 베풀기 시작했다.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몇 번씩이고 키노의 오두막집을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보니 병이 낫도록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병이 더 오래 가도록 처방을 하는 것이었다. 의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주가 탐이 났던 것이다.
도회지의 진주 장사들은 키노가 가진 값진 진주를 헐값에 사기 위해서 온갖 농간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되지 않자 폭력배를 동원해 그들 부부를 협박까지 했다.
심지어 밤중에 강도가 침입하기도 했다.
키노는 진주를 지키기 위해서 격투까지 벌여야 했다.
진주는 그들의 삶에 행복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진주 때문에 날마다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결국 그들은 그 진주를 깊은 바다 속에 다시금 던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