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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쳐 목사가 고맙다! (국내 성지순례 답사기)
관리자
- 2316
- 2012-07-31 08:14:13
국내성지순례 답사기입니다
여행은 언제나 기대감이 있다
6월27일 아침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바빠지는 시간 8시40분 광화문 본부 앞 기독교 대한감리회 남선교회 연합회 임원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국내 성지 순례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모두 3대의 버스중 서울에서 떠나는 1호 버스는 36명이 탑승했다 이필용(역대전국연합회장)장로 기도 후 첫 번째 목적지 충남 서천군 서면 땅끝 마을 마량리 동백정 교회를 향해 떠났다 지체를 반복하며 서울을 빠져 나온 후에야 고속도로 위에서 버스는 물 흐르듯 달릴 수 있었다
안내 차 동행한 한국 교회사를 연구한 박정규목사(대신대학)는 마량리는 우리나라에 성경이 최초로 전래된(1816년)곳이고 아펜젤라선교사가 목포로 한국어 성경번역 일로 가던 중 어청도 부근에서 일본 상선과 충돌 순직한 상황을 들려준다 그동안 아펜젤라가 동행한 여학생을 구하려 배밑으로 들어간 후 끝내 나오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아펜젤라는 파선한 여객선에서 사람하나 의지할만한 나무판자 하나를 겨우 잡고 있었는데 허우적대는 여학생에게 그 생명선과 같은 나무판자를 주고 본인의 생명을 끝내 잃었으니 이덕주교수(감리교신대)가 아펜젤라 죽음을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말하던것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한국을 위해 100년을 기도한 사람들
동백정교회는 도착하니 합류한 순례길 일행은 모두 118명 동백정교회안이 가득찼다 “잊지 말아야 할것”이라는 서성옥 장로(전국은퇴장로회장)의 설교에 이어 아펜젤러선교사 순직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한상명목사(아펜젤라순직기념관 추진위원회총무)의 기념관 건립 과정을 설명 듣고 “죽기까지 섬기리라”는 감동적인 아펜젤라 순직 110주년 기념영상을 감상했다 무엇보다도 눈시울이 젖어오도록 감동적이였던 말씀은 아펜젤라의 발자취와 뿌리를 찾아보기 위해 미국을 방문 했을 때 아펜젤라선교사를 파송한 볼티모어 러블리레인 감리교회에서는 얼마전까지 100년이 넘도록 한국을 위해 기도하는 클럽 기도모임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오늘에 한국감리교회가 있기까지는 아펜젤라를 보내놓고 100년을 기도하는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였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고마워진다 그동안 800명의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왔고 그들은 선교현장에서 이름없이 선한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떠났다 그 열매를 우리들이 거두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진행중인 아펜젤라 순직기념관
예배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아펜젤라 기념관을 한상명목사의 안내를 받아 돌아보았다 지하 전시물들 중에는 익명으로 무상 대여한 유품과 기념품들이 우리를 맞는다 미국에서 기증받은 100여점등과 사진들도 전시되어있고 아펜젤러가 승선 했던 여객서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아직 전시관이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귀중한 물건은 도난 우려 때문에 아직은 금고속에 있다고 남광현목사(동백정교회)가 들려준다 순직 기념관은 2005년 7월 아펜젤러선교사 순직 장소에 관한 고증세미나를 시작한 후 7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되었으며 106평 건축 총 공사비 7억2천5백6십만원중 서천군에서 2000만원 지원받은것 외에는 충청연회에서 담당하고 있으나 기념관 아래 해변 쪽으로 성경전래길(바이블루트)과 수양관, 선교사 숙소 등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에 감리교회 본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남광현 목사는 기념관을 건축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중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을 갖게 되었으나 기념 사업 위원들과 충청연회의 각고의 노력끝에 2012년 6월 11일 아펜젤라선교사 순직110주년 추모와 기념관 개관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가우쳐목사는 한국선교의 산모였다
아펜젤라가 1885년 4월5일 이 땅에 첫발을 디딘것이 열매였다면 뿌리는 가우처대학 존 프랭클린 가우처목사였다 1883년 9월 고종황제가 파견한 미 외교사절단(민영익 단장)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톤으로 가는 대륙횡단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몰티모어역에서 승차한 가우처목사와 만나게되어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조선 문화에 대한 사정을 듣고 조선이 1882년 문호는 개방되었는데 선교사가 아직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당시 일본에 있던 극동아시아 선교책임자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게 하여 맥클레이는 친분이 있던 김옥균(외교부주사)의 도움으로 고종황제를 알현하고 의사와 영어선생을 보내줄것을 허락받아 일본선교사를 꿈꾸던 아펜젤라를 한국 선교사로 방향을 바꾸게 하고 선교비용을 일체를 마련하여 지원했던것이다 가우처 목사는 조선을 6번이나 방문하며 아펜젤라를 도왔다
막 결혼한 27세 청년 아펜젤러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섬리로 당시 어두운 나라 조선에 찾아와 복음의 횃불로 이 민족을 깨우고 1902년 6월11일 어청도 부근에서 당시나이 44세로 순직하기 까지 아펜젤라의 헌신은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하다 그러나 또 하나 한국선교를 잉태한 가우처목사의 선교 열정도 더 많이 알려서 고맙고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어청도를 바라보며
해무 때문에 평소에는 어청도를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치 않은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어청도를 볼 수 있다고 하여 기념관 옥상은 어청도를 육안으로 보려는 우리 일행들로 오르락 내리락 분주하다 아련히 바라보이는 어청도 여느섬과 다를바 없으나 바다속에 있을 여객선을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더 오래 보고 싶었으나 감동적인 관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마량진 포구에 마련된 매운탕 점심 식사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갈 수 있었다
문화적 미래의 가치를 볼수있어야
식당 앞에는 넓은광장이 구획 정리되어 조성되고 한참 공사중이다 하늘이여 바다여 파도여! 로 시작하는 아펜젤러 선교사 추모비와 한국 최초 성경전래 지 라는 기념비가 아직은 썰렁한데 친구처럼 나란히 서있다 원래는 1만평을 기독교 부지로 계획했었는데 2000평만을 허락 받았단다 서천군에서 모양만낸 2000만원 지원금과 2000평으로 공원부지를 줄인것을 보며 앞으로 다가올 마량진의 아펜젤라의 순직기념관과 최초의 성경전래지라는 역사적으로 뜻깊은 문화의 사적지가 될 미래의 가치를 보지 못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마량진을 떠나며 1816년 최초로 받은 영어성경을 1902년 86년 후 아펜젤라는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로 가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마량진에는 오묘하신 하나님의 섬리가 있는듯 했다 아직은 복음화가 10%도 못되는 지역이지만 마량리 복음화를 위해 감리회에서는 아펜젤라의 선교열정을 가져야겠다
한국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국책사업 새만금 방조제
늦게 점심을 먹은 탓인지 서해안 고속도로를 지날 때 까지 눈을 감은 분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군산을 지나 새만금 방조제에 들어서서야 바다위에 펼쳐지는 방조제로 쌓은 길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일행 중에 김성길장로(관광학전공)의 새만금에 대한 안내로 고군산군도를 바라보며 편안히 사야에 들어오는 섬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들을 즐길수 있었다
새만금은 방조제는 군산과 부안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33.9km로 네델란드의 주다찌 방조제 32.5km 보다 1.4km가 길다 방조제 들어간 돌과 모래를 도로에 깔면 경부고속도로 418km 4차선을 13m 높이로 쌓을수있다 새만금 이름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 같은 새 땅을 만든다고 붙인 이름이다
새땅의 넓이는 서울에 3분의2 여의도에 140배 넓이다 이 넓은땅은 군산시가 71.1% 부안군 15.7% 김제시 13.2%를 갖는다 새만금이란 이름이 1987년 처음 불려져 국책사업으로 1991년 기공식을 한후 찬반양론도 많았으나 2010년 4월 20년 만에 완공하여 비응도와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의 교통수단은 배에서 왕복 4차선의 도로를 달리는 차량으로 바뀌었고 종합개발이 완성되는 2020년 에는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움과 어우러져 꼭 찾아가야할 세계인의 관광지가 될것이다
막힘없는 바다위에 길을 달려 방조제 중간섬 신시도에 도착한 일행들은 때를 맞춰 안준식(호남남선교회장)장로 일행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찾아와 입을 즐겁게 하므로 모두들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휴식시간을 가졌다 볼수록 새만금은 가히 장관이다
다시 버스에 오른 일행은 남은 방조제를 지나 부안을 거쳐 소금과 굴비의 고장 영광군 에 있는 야월리 순교기념관과 염산교회를 향해 간다
염산교회는 6.25때 77명의 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곳이다 순교의 스토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