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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모든 죄인과 하나님 영광"
관리자
- 1969
- 2012-08-02 21:42:18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짓는 일이 얼마나 좋으면 목숨을 걸고 범죄 하겠습니까?
국가에서 법을 정하고 철저하게 금하며 사람들의 이목과 최면의 손상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범죄행위에 스스로 접근합니다.
양심이 두근거리고 짜릿한 두려움이 오히려 쾌감으로 느껴지고 자극하는지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다”는 식입니다.
얼마나 금단의 열매가 좋았으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에도 불구하고 거역하며 선악과를 따먹었겠습니까?
옛날 어떤 장수가 적국의 왕궁을 점령하고 들어가 보니 각종 보석과 금으로 장식한 금 항아리가 보이더랍니다. 그 안에는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술이 맛이 나는 냄새를 풍기며 가득히 담겨져 있더랍니다.
장수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한잔을 마셨더랍니다.
그랬더니 세상에 그렇게 맛이 있는 술은 처음이드랍니다.
이것이 죄악의 시작입니다. 장수는 한 잔만 더 한 잔만 더 하다가 그만 모두 마셔 버리고 말았더랍니다. 그런데 술이 바닥이 나자 바닥에서 독사가 도사리고 있었더랍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죄를 짓기 시작하면 중도에서 끝내지를 못하고 자꾸만 자꾸만 깊이깊이 빠지게 되고 결국은 무섭고도 끔찍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국은 끝이 좋지 않은 죄악의 무서움으로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범죄행위에서는 등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제정하신 규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어겼기에 그 규정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1993년 가을철에 서해 훼리호 침몰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배는 한척이 침몰되었으나 그 배 안에 타고 있던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규정에 어긋나는 죄는 온 인류를 지옥으로 침몰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멸망의 죄는 인류 속으로 스며들어 멸망으로 침몰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통한 죄의 봇물은 걷잡을 수 없이 모든 사람을 멸망으로 몰아넣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가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그러면 죄가 무엇입니까?
① 표적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맞추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과 나는, 나와 여러분들은 그 어느 쪽에든지 속하여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표준을 맞추지 못했든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해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1-14)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만약 자라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악입니다.
빌립보서 3:14,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표가 되시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목표로 그리스도인들은 나아가야 할 것을 일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표로 삼지 않고, 석가, 공자, 마호메트 등, 다른 사람이 목표가 된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② 범법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멸망의 법이 아니라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법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스스로 유익되고 복이 되는 조항들로 이루어 졌습니다.
법을 어긴다고 해서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께 조금도 손해되거나 손상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범법하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피해를 당할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법령들은 인류를 위하여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계명을 계명마다 살펴보면 지키는 자에게 얼마나 은혜로운 계명들인지를 알게 됩니다.
출애굽기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창세기 26:5, 아브라함에게 복을 부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6:2, 계명은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천시 용현2동 언덕위에는 웅덩이를 크게 파놓고 분뇨를 가득 담아놓았습니다. 분뇨를 오래두면 겉은 말라져서 마치 흙 위에 그름을 깔아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어느 여자 아이가 빠져버렸습니다. 분뇨 통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꺼내어주었는데 얼마나 분노를 많이 먹었고 고통을 당했는지 어린아이의 배가 부를 정도였습니다. 그곳은 길이 아닌데도 그 여자아이가 길이 아닌 곳으로 가다가 빠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고, 지킬 것과 시키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며, 갈 길과 가지 못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계명대로 지키고 행하고 순종하면 자신에게 유익하고 복이 될 것입니다.
고집을 부리고 지키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더러운 죄악의 웅덩이에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③ 바르지 못하게 가거나 참되지 못한 것이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벗어나거나 지나서는 길도 진리도 생명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고을의 원님이나 귀인들이 오게 되면 길을 쓸고 황토를 뿌려서 지나가는 길을 눈에 뜨이게 하였습니다. 앞에서는 삼현육각을 불면서가고 뒤에서는 가마나 말을 타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가 있고 벼슬이 높아도 앞서가는 행렬을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 길은 이미 지나가기로 정해진 길이기도 합니다. 역시 우리의 가야할 길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여주신 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안내하셔서 천국 길로 가게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바르게 가고 참되게 가야 합니다.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릴 때만 객차가 화차를 따라서 정상으로 가며 달릴 수가 있습니다. 만약 객차가 불만을 품고 화차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레일을 벗어난다고 하면 그것은 탈선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죄와 죽음과 멸망을 자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께만 매어 달려서 의지하고 따라가야만 합니다.
④ 바른 길을 위반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뜻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람이 발락 왕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저주를 하려고 나아가다가 주의 사자가 칼을 들고 죽이려고 하는 것을 나귀가 먼저 보고 피하였습니다. 나귀는 그런 발람 선지자를 책망하였으나 발람은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나귀를 구타하면서도 주의 사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발람의 눈을 뜨게 하여 주의 사자를 바라보게 한 뒤에 그런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자기 뜻으로는 가고 싶고 행하고 싶고 얻고 싶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진대 그 뜻을 어기고 거역하는 것은 죄악일 뿐입니다.
⑤ 사악한 것이 죄악입니다.
사악한 것은 본래 악하고 그 자체가 나쁜 것을 뜻합니다.
끊임없이 본래적이고 근본적으로 악한 것을 말합니다.
애급 왕 바로는 아무것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죄인입니다. 근본이 악했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죽게 됩니다.
⑥ 계명을 어기고 죄를 범하는 것이 죄악입니다.
요한1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바울 사도는 우리 모두가 그 모든 것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것이 언제입니까?
앞으로 5장에 나아가면 대답을 읽게 됩니다. 만은 그 대답은 “아담 안에서”라고 했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에서 모세까지 사망이 왕 노릇 한” 이유입니다.
사망은 모든 사람을 죽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의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결핍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부족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형상 따라 지음 받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본받아 예정된 수준에 이르도록 살아야하는데, 그의 예정된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모두 범죄 한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참여하였던 죄의 결과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궁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냐? 하는데 대한 의견이 많습니다.
① 하나님의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 되시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 이상의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계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리며 전 세계의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는 가운데 목에다 금메달을 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영광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칭찬이 만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받을 때에 그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랍겠습니까?
② 하나님 앞에서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님 앞에 불려가는 것도 영광이고, 대통령에게 초청받아가는 것도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이라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영광이겠습니까?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를 다시 찾아왔을 때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 춤을 추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심지어 왕이 바지가 벗어져서 아래로 흘러내려가서 부끄러움이 드러나도록 춤을 추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의 아내 미갈이 그같이 다윗 왕이 수치를 드러내고 춤을 추는 것을 비난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보다 더한 일이 있어도 기쁠 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③ 하나님 안에서 영광스러운 행동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있을 때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고난과 슬픔뿐이었으나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모든 잃은 것들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아들의 신분과 상속자의 신분과 주인의 신분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 안에 사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④ 하나님의 현저성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만유 안에 거하시고 만유 안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고 이끄십니다. 자연을 변괴 하여 놀라운 경이의 일을 하셨습니다.
애급을 10가지 재앙으로 치시고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는 40년 동안을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모든 백성들이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요단강을 갈라 건너게 하셨고 여리고를 무너뜨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당신의 현저 성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⑤ 성도가 미래에 받을 영광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천군 천사의 환영을 받으며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⑥ 성도가 현재에 지닌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마지막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만 미래의 영광이나 현재의 영광이냐에 달려있습니다.
그 영광은 원래 하나님의 것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승리 적으로 계시된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태양의 7색이 합하여 빛이 되듯이 영광은 하나님의 참여하시는 성도들의 속성의 총체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은 시내 산(출 24:16), 구름 기둥(출 16:10) 성막(출 40:34), 성전(왕상 8:11), 법궤위의 그룹사이(출 25:22, 시 80:1), 등에서 볼 수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할 때 그것은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은 윤리적인 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은 성육하신 그리스도에게 구현되었고(요 1:14), 신자는 믿음으로 이 영광에 현재 참여하는 것입니다(고후 3:18, 4:6).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광으로 임하게 됩니다.
불신자는 영광을 누리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히 누리게 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