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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한 아내들의 모범적인 행위
관리자
- 2306
- 2012-08-02 21:30:33
창세기 18:1-15, 베드로전서 3:1-6.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창세에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지으셨으나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음으로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다 주셨는데,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하며 여자를 맞이해 가정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중매자가 되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에게서 낳고 남자의 갈빗대로 지어진 배필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주인이 되고 아내는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에베소서 1:22-23,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이니라. 고 상징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22-23,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계시고 교회가 탄생된 것처럼 남자가 먼저 나고 여자가 생겨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못 박혀 옆구리에 창에 찔림으로 흘린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남편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가 지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를 지으실 때 왜 하나님은 남자의 머리뼈나 발뼈를 택하지 않고 갈비뼈를 택하셔서 여자를 지으셨을까요?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여자를 남자의 머리뼈로 지었더라면 남자의 머리꼭대기에 올라가 앉을 것이라는 것이고, 만약 남자의 발뼈로 지었더라면 남자 발 밑에 항상 짓밟혔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지으셨기에 남자와 여자는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며 서로 사랑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남자의 가슴을 에워싼 갈비뼈로 지음 받았기에 아내는 남편의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받고 아내의 사랑은 남편의 심장 속에 스미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내가 남편에게 상처를 주면 남편의 심장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고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는 아내의 전 생애가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제자 베드로 사도는 가정 제도를 두고 교훈 할 때, 먼저 아내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속담에 “가정이 평화로워야 만사가 형통하다”는 뜻으로 “家和萬事成”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정에서 아내들의 위치가 매우 귀중합니다.
남편은 가정의 주인이지만 아내는 가정의 지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보금자리이며 평안의 안식처이며 삶의 천국이며 지상의 낙원이기 때문입니다.
몽테뉴는 “왕국을 다스리기보다 가정을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가정이 국가의 기초가 되고 중요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면 정결한 아내의 행위는 어떠해야 합니까?
1. 외모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삽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아름답게 잘 생겼고 키도 크고 균형 잡힌 신체와 팔등신의 아름다움을 지닌 건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외모는 보 잘 것 없는데 대하면 대할수록 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외형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아름다움보다 내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 타입은 인간들처럼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매력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외형적인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매력은 생명이 끝나는 날 사라지고 썩어지고 말 것입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구원받는 길이라면 아마 사람을 정형수술 하는 정형외과병원들은 초만원을 이룰 것이고 정형외과 의사는 구세주일 것입니다.
화장품 회사와 의상실 양복점도 불티가 날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꾸미는 것으로 보시지 않기에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정결한 아내는 몸을 단장하고 머리나 꾸미고 금이나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않는 다고 했습니다.
속은 부정과 부패로 가득한데 외모를 꾸민다고 속되고 추한 것이 감추어지는 건 아닙니다. 행동은 거짓되고 악독한 것으로 가득한 사람이 얼굴이나 아름답게 꾸미고 몸이나 단장한다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랑끌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언제나 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선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잠언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호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죄는 가리지 못합니다.
금이나 진주로 사람의 인격을 변하게도 못합니다.
외모에 보이는 겉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으면 끝납니다.
속사람이 깨끗하게 변화되고 새로워지지 않으면서 겉만 꾸미고 깨끗이 한다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1: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돼지를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단장을 해 주어도 돼지는 도로 더러운 곳이 들어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도 수없이 목욕을 하고 씻어도 속을 씻지 않으면 더러운 그대로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향해 책망하십니다.
마태복음 23:25-28,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안은 송장이 썩고 냄새나는데 겉만 회칠하고 평토장 한다고 무덤이 아름답게 바뀌어 지나요?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히브리서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베드로전서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 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아름다움은 머리나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3:16-26, 시온의 딸들의 화장에 대해서 예리하게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 도다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고리와 팔목 고리와 면박과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 지환과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디모데전서 2:9, “또 이와 같이 여자들은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홍안의 소년 미인들도 늙으면 흉하고 머리도 쇠합니다.
금과 은도 달아 지고 옷은 삭아지고 낡아집니다.
외형적인 삶은 잠간이요 육체의 아름다움은 순간에 지나갑니다.
아름다움을 장식으로 꾸미고 단장했다 해도 외모와 같이 사람의 인격과 품성이 아름답지 못하면 곧 싫증이 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장을 외모로 하지 말고 속사람으로 단장을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마음이 정결하고 온유하며 안정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정결한 아내는 외모에 치중하는 삶이 아니라 마음이 정결하고 온유하며 안정된 심령으로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정결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정결하다는 말의 뜻은 “말쑥하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정직하고 더러운 생각을 품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온갖 부조리와 부패함으로 가득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진실 되고 정직하게 사는 삶입니다. 또 모든 사람들에게 온화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대하는 삶입니다. 불안과 초조함을 버리고 안정을 찾는 삶입니다.
인간의 외모의 모습은 늙고 병들고 삶은 순간으로 지나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은 영원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값지고 비싼 금이나 은으로 꾸민 옷도 언젠가는 낡고 없어지고 말지만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은 하나님 앞에 지극히 귀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외면적인 허식보다는 내면적인 마음의 아름다움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26,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했습니다.
안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한데 겉으로만 깨끗하게 해 보아야 깨끗하게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그릇처럼 보 잘 것 없어도 그 속에 귀한 보배가 담겨 있으면 그 그릇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겉만 아름답게 꾸미고 속이 더러운 것보다 겉은 질그릇처럼 남루해도 속사람이 깨끗이 단장되어 있으면 더욱 귀하게 여겨지고 매력이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은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으며 자기의 일로 다른 사람에게 걱정은 끼치지 않습니다.
침착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대합니다.
떠들썩하고 무절제하고 성난 언사와 행동이 아니라 확고하고 균형 잡힌 행동을 실천해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가정 안에서 행위가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남편에게 순복하면 가정이 안정하게 됩니다.
영국황실의 최대경사인 결혼식이 캔터베리 대승정의 주례로 거행되는 중에 신랑신부에게 선서하는 순서가 되었습니다.
신랑은 앨버트 공, 신부는 빅토리아 여왕이었는데 신랑의 선서문이 끝나고 다음은 신부에 대한 서약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문 중에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의 의무규정이 있었는데 대승정은 보통 부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여왕에게 하는 것이므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있는 말들을 좀 고쳐했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왕은 “나도 모든 점에서 일반 여성들과 같은 조건으로 결혼 할 것입니다. 여왕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아내로서 같은 서약을 하여 그대로 이행하고 가정에 있어서 남편에게 복종하여 섬길 것입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는 왕이지만 가정에서는 부인이라는 말입니다.
안으로는 가정에 평안과 안정을 가져오게 하고 밖으로는 선을 행하며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행동합니다.
믿음 안에 사는 가정, 예수님을 모신 가정은 안정되고 심령은 온유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보기에 온유한 삶이 짧은 것 같으나 영원한 삶으로 향하는 삶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집은 흔들리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착한 지어미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젊은 여성들이 건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을 위해 충분한 음식을 먹지도 않고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도 금하며 자기 취미와 감정에 쏠려 기괴하고 변덕스런 섭취를 하는 것을 봅니다.
가정의 정상적인 상태는 금욕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육체관계를 절도 있고 슬기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부부 상호간의 사랑을 풍요하게 하고 유혹에서 쉽게 물러서게 해줍니다.
인간의 심령이 건실치 못하면 아무리 외모를 단장해도 행실에서 아름답지 못한 것입니다.
건강을 해치도록 자학하는 것도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조화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명이 없는 꽃이기에 얼마가지 않아서 싫증이 나지 않습니까?
비록 조화처럼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없으나 탐스러운 열매를 맺는 호박꽃이 더 귀합니다.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알차게 사는 속사람이 성장하는 삶이며 아름다운 생명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3. 소망 중에 남편에게 순복 하며 복종하는 삶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남편을 “주”라 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섬김과 봉사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큰 복을 받도록 내조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의 행위는 남편에게 큰 행복이 되기도 하고 큰 불행이 되기도 합니다.
도르디 카네기는 아내들에게 남편과 화목하고 행복하게 가정을 잘 꾸려나가는 방법을 7가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마음씨 착하고 눈치 빠르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2, 좋은 반려가 되라는 것입니다.
3,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라는 것입니다.
4, 상냥하게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5,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6,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되려고 하거나 남과 같이 구는 일은 매력 없는 일이 됩니다.
7, 여성임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3가지만 더 첨부한다면…….
8, 남편의 단점을 말하기보다 남편의 장점을 발견하기를 노력하고 칭찬을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9, 남편의 스승이나 지배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협력자가 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10, 중요한 일의 결정은 남편의 뜻에 따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F 베이컨은 “아내는 젊은 남자에게는 연인이고 중년 남자에게는 반려자이고 노인에게는 보호자”라고 말했습니다.
라․퐁텐은 “아내는 오직 남편의 배우자 일뿐만 아니라 또한 정신상의 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집안일에 마음을 쓰고 있는 살갑고 부지런한 젊은 주부의 자태는 가장 냉혹한 남자의 마음속에라도 스며드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말하는 것을 얌전하게 들어주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이쪽저쪽을 보며 안절부절 하거나 멈칫멈칫해선 안 됩니다. 딴 생각을 하며 들어서도 안 됩니다. 남편의 말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들어주고 때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더 듣고 싶어 하는 듯 한 반응을 보이며 들어주는 것이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이며,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말을 가로막지 말고 때로 그 말에 자극으로서 남편이 숨을 돌리는 순간을 노려 자기의 경험을 간단하게 뒷받침해주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이 혼자 지껄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오고가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아내는 또 남편을 칭찬하여 어떤 일이나 용기를 갖고 즐겁게 일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남편의 장점을 칭찬한다고 밑천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며 손해되는 일은 없습니다. 남편이 용기를 가지고 일을 하게 하는 것은 가정이 잘 되고 행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본문을 보십시다.
베드로전서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남편에게 순복함은 아내 된 자신을 단장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정한 아내의 심령은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다정함과 귀염성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지도자나 스승이 아닙니다. 남편의 벗이며 돕는 배필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부부이며 한 몸입니다. 함께 도보를 맞추어 인생항로를 걸어가는 협력자이며 가정의 동승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십시오.
남편 아브라함이 어떤 말을 해도 모두 순종하였습니다.
애급으로 내려갔을 때 애급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나를 남편이라 하지 말고 누이라고 하라”고 했을 때에도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소돔성의 아름답고 기름진 땅을 양보하고 거친 광야를 차지했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강권하여 장막으로 초대하고 아내 사라에게 속히 떡을 만들고 송아지를 잡아 급히 요리를 하라고 했는데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삼일 길을 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될 때에도 사라는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늙으신 아버지 아브라함이 밧줄로 자신을 묶고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죽여서 제사를 드리려고 하기까지 순종한 것은 어머니 사라가 남편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고 복종하며 따르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에 이삭도 순종하였을 것입니다.
사라는 오히려 자기의 남편 아브라함을 향해 “내 주인”이라고 높이어 불렀습니다. 그를 때, 아브라함의 가정은 평안하고 화목하며 행복한 가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갈비인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면 남편의 마음을 한없이 편하고 행복하지만 만약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하면 남편의 심장이 아프고 피가 마르게 될 것입니다.
갈비는 남편의 가슴을 외워 싸고 있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가슴은 심장과 간과 콩팥과 허파가 있는 중요한 부위입니다.
남편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을 보호하고 감싸고 있는 갈비는 남편과 일심동체인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가정의 주인으로 남편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잘 알고 보호하고 감싸며 지켜주어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웅변가이며 원로원의 인사인 디슬레이가 아내와 더불어 의회에 연설을 하려고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마차의 문을 닫는 순간 아내의 손가락이 마차의 문에 끼었습니다.
아내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아팠지만 그 순간 숨을 죽이고 신음 소리도 내지를 않았습니다. 아내는 손가락이 문에 끼인 채 의회에 까지 가서 남편이 마차에서 내릴 때에야 손가락을 빼어내었습니다.
더디어 남편 디슬레이는 의회에서 일장 연설을 잘하여 의회에서 무사히 통과하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비로소 아내의 손가락에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왜 이렇게 되도록 참았느냐?”고 묻자 아내는, “당신이 의회에 중대한 연설을 하러 가시는데 내 손가락이 다친 것을 알고 걱정이 되어 연설을 망치게 될까봐 참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기의 아픔을 참고 남편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내조하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