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구...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요 4:23-2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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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02 19:52:20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계속해서 예수님은【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οἱ ἀληθινοὶ προσκυνηταὶ)은 직역하면 ‘참된(1:9의 주석을 보라.) 예배자들’이다.

신령과 진정으로(ἐν πνύματι καὶ ἀληθείᾳ: 신령과 진정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의 신령으로에 대해 (1) ‘마음과 영혼과 중심으로’(A. Barnes), (2)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계시해 주시는 새로운 영역 안에서’(E. A. Blum), (3) ‘성령에 의한 영적인 자녀로서’(박윤선), (4) ‘인격적으로’(J. H. Mayfield), (5) ‘사랑의 정신으로’(H. J. S. Blaney), (6) ‘영적으로’(J. Calvin, W. Hendriksen) 또는 ‘영의 진지함으로’(H. Alford), (7) ‘정직하게’(A. J. Gossip), (8) ‘중심의 행위로’(E. G. Dobson), (9) ‘인간의 영으로’1) (10) ‘성령으로’(J. A. Bengel, “슈낙켄부르그”,2) 민영진3)) 등0의 견해가 있다.

옛 시대의 예배, 즉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예배가 장소와 인종을 따지고 인간을 차별하는 등의 본질에서 벗어난 형식과 외식에 치우쳐 허례허식이 되어 버린 것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라는 점과 새 시대의 참된 예배 자세에 대한 말씀이라는 점과 다음의 진정(알레테이아, ἀληθείᾳ)으로 곧 ‘진리로’를 미루어 보아 (10)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진정(알레테이아, ἀληθείᾳ)으로 곧 ‘진리로’에 대해 (1) ‘지적으로’(J. H. Mayfield), (2) ‘순수하고 단순함으로’(J. Calvin), (3) ‘하나님께 접근함에 있어서 완전한 실재로’(L. Morris), (4) ‘진실함으로’(H. Alford, M. Henry, H. W. Watkins), (5) ‘공공연하게’(A. J. Gossip), (6)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H. J. S. Blaney, E. G. Dobson), (7) ‘하나님의 진리로’(R. C. H. Lenski), (8) ‘예수 그리스도 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진리로’(J. A. Bengel, E. A. Blum, 박윤선) 등0의 견해가 있다.

앞서 “신령”을 성령으로 보아야 할 근거로 제시된 점들과 진정으로 번역된 알레테이아(ἀληθείᾳ)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또는 그분으로 말미암은 복음의 진리로 사용된 점(1:14의 주석을 보라.)을 미루어 보아 (8)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이렇게, 즉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의 내적 생명인 영과 교통하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로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로 설명되어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πνεύμα ὁθεός)는 “많은 영들 중에 한 영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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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 Henry, J. Wesley, A. Barnes, H. W. Watkins, C. R. Erdman, R. C. H. Lenski, L. Morris, C. K. Barrett, H. R. Reynolds.
2) in C. K. Barrett.
3) 기독교세계, 2000년 9월호, p.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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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인 본성이 영이시라는 뜻이다(참조: 요일 1:5, 4:8)”(L. Morris).

반즈(A. Barnes)는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며, 물질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지 않으셨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고, 어디에나 계시며, 거룩하고 순결한 분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라고 하였고; 바레트(C. K. Barrett)는 “구약성서에서 영은 대체로 물질에 대립되는 존재의 질서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창조적인 활동력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도 이 말을 이런 의미로 쓴 구절들이 있다(7:38-39). 그러나 여기서 더 좋은 병행구는 3:8이다. ‘영’은 볼 수 없으며, 오직 그 소리와 결과를 통해서만 그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다’라는 말은 그는 볼 수 없으며,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참조: 1:18).”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물질로 생각하거나, 장소 또는 사물과 결합된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L. Morris). 하나님은 영 곧 생명을 주시는 창조주이시며,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순결하고 거룩하며, 시공을 초월하시는 존재이시므로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만 하는 것이다(데이, δεί).

<필자의 www.newrema.com의 ‘난해 성구 사전 1권’, \\'요한복음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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