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날입니다. 슬픈날.

민관기
  • 3015
  • 2015-01-24 07:58:16
1909. 8. 12 생.
1935. 1. 23 졸하신 최용신.
오신곳으로 다시 가신 날입니다.

오늘 그 분이 사역하시던 안산의 샘골교회에선 추모예배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제목 : 최용신 선생 서거 60주기 추모식이 공식명입니다. 왜 서거일까요?

예배는 7시부터지만 조금 일찍갔어요. 집에서 걸어서 10 여분.
식사를 떡국을 내놓았더군요. 그것에 여러 반찬이 있었지만 그냥 떡국하나만 놓고 먹고 있으니
샘골교회 교인이 다가와 손님이신데 그냥 떡국만 드시니 좀 그러네요?하면서 사라다, 김치, 잡채, 과일 등을 가져다 놓으신다. 예~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손님이 아니에요 했습니다. 그 분 잠시 멍~
왜냐면 그 분은 샘골교회만의 여성이 아닙니다. 그녀는 민족의 여성입니다.
하여, 그는 처녀론 최초로 사회장이라는 민족장으로 치러졌어요. 저 손님아는거 맞죠? 했습니다.
그 녀에게서 교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일렁이는걸 옆에서 느꼇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처녀가 학생들 100 여명 가르치다가 병으로 죽었는데 당시 중앙언론에 부고, 추모시, 추모글 다 수, 소설에 요즘 사람들도 잘 안 펴내는 평전이 쓰여지는게 상식적이지 않다.
전태일 평전, 한용운 평전보다도 엄청 많이 더 열독율(대략 10만 정도가 류달영의 최용신 평전 읽었을 것으로 봄 = 10만부 발행한게 아니라 엄청돌려보았단 의미입니다)이 높았으며..
왜? 그랬을까??
왜 서거이며..
종교적으론 죽으면 우리 기준 용어로 소천인데 서거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최용신은 국가 유공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최고반열인 국가독립유공자는 별세라거나 종교 용어인 불교의 열반이나 천주교의 선종이나 기독교의 소천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서거"라 합니다.

안산시장과 국회의원, 시도의원들을 비롯한 안산시의 주요 인사들.
그리고 당연. 경기연회 홍성국 감독을 비롯 감리교 목회자들이 다 수 참여하여 선생의 그 고귀한 삶을 추모하였습니다.


"기억을 넘어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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