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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연회 기념관 건립에 대한 진실'에 대한 답글입니다.
김진형
- 2640
- 2015-02-11 23:08:57
총무님이 알고 있는 진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그 진실을 말씀드립니다.
1.아펜젤러 순직지점은 정확히 어청도 서북방향 2-3해리 인근 바다가 맞습니다.
앞의 글에서 나는 서천에 아펜젤러 기념관 건립에 관한 협조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군산 어청도 부근이 아펜젤러의 조난지점이란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요청을 사양했다고 말했습니다. 아펜젤러가 타고 가던 구마가와 마루호의 조난지점은 목포로 알려져 왔다가 1987년 한경수 감독이 「황성신문」을 근거로 “아펜젤러를 기리며”란 글에서 ‘어청도 서북 2,3리 해상’이란 사실을 밝힌 이후, ‘군산 어청도 부근’이 학계에서는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2007년 충청연회에서 서천에 아펜젤러기념관 건립에 위한 역사적인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당대 한국교회사의 최고 권위자들인 이만열 교수, 이덕주 교수, 한경수 감독 등 초청하여 예산제일교회에서 고증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총무님이 앞의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세미나에서도 학자들은 아펜젤러의 조난지점이 어청도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후 아펜젤러의 조난 지점에 관한 탁월한 논문이 나왔습니다. 당시 연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홍승표 선생이 쓴 “아펜젤러 조난사건의 진상과 의미”라는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2009년 9월 25일 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발행한 「기독교와 역사」 31호에 개재되었습니다. (기독교역사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홍승표 선생은 아펜젤러 조난지점에 관한 이제까지의 연구 성과를 모두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펜젤러 조난사건’에 대한 기존의 선행 연구 성과들을 대략적으로 검토해 보았다. 위의 내용을 통해 「황성신문」과 「신학월보」 그리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등에서 확증해 주고 있는 바, 아펜젤러의 조난 사건 지점이 ‘어청도 서북방 해상(2-3 海里) 지점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사고 당시의 일본 신문을 뒤지고, 사고 선박 회사 오사카상선 주식회사의 일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쓴 이 논문은 이후 아펜젤러 조난 지점에 관한 더 이상의 논쟁을 불식시켰습니다.
2.총무님이 앞의 글에서 잘못 알려진 사례로 든 군산 앞바다의 오식도는 이미 철회된 학설입니다.
1985년 리진호는 “숨겨진 아펜젤러의 행적, 오식도 앞 바다에서”, 란 제목의 글을 1985년 10월 13일자 「크리스쳔 신문」에 개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Korea Review에서 아펜젤러의 조난지점으로 언급된 ‘오세이도’(Osayto)를 일본식 발음을 근거로 군산 앞바다의 ’오식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2년 후 한경수감독이 쓴 글이 발표된 이후, 리진호교수가 “아펜젤러의 조난지점은 어청도 서북방 이삼리 해상”이란 글을 1987년 5월 23일자 「크리스쳔 신문」에 개재함으로 한경수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따라서 총무님이 언급한 아펜젤러의 순직지가 오식도라는 설은 이미 폐기된 학설이었습니다. 총무님은 오식도를 아펜젤러의 순직지로 잘 못 알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이미 1987년 이후에는 아펜젤러의 조난지점은 어청도 서북쪽 3-4Km(1해리는 1마일입니다) 지점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확히 어청도에서 해안 쪽에 있는 해상이 아니라 바다 쪽에 있는 해상 즉 중국 쪽에 있는 해상입니다. 이곳이 사고 당시 인천에서 목포로 가는 항로였습니다.
3.아펜젤러 순교기념관에 대하여
아펜젤러의 순직지가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군산시 옥구군 옥도면 어청도 부근 해상으로 확인된 만큼 그의 순직기념관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가장 좋은 장소는 어청도입니다. 조난지점이 어청도 중국 방향으로 서북부 해상이니 그 조난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기념교회나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이미 1985년 아펜젤러에 관한 책을 펴낸 이만열교수는 어청도에 아펜젤러의 순직기념비를 세워야한다고 하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군산에 있는 2007년 건립된 아펜젤러순직기념관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유는 어청도의 행정구역이 군산시니까 섬까지 가기 어려운 관람객들을 위해 어청도가 보이는 바닷가에 세웠을 것입니다. 당시 조난 지점을 보도하는 일본의 자료의 대부분이 ‘어청도’를 군산인근이라고 밝힌 것을 보더라도 어청도는 군산의 섬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군산은 1899년 개항된 항구로 일본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었던 지명이었습니다. 현재 어청도로 가는 배편은 군산에서 탈 수 있습니다. 2007년에 새워진 아펜젤러순교기념관도 어청도를 순교지로 보고 그 곳에 세운 것입니다. 군산 앞바다 오식도를 순교지로 보고 세운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서천에 있는 아펜젤러순직기념관입니다. 먼저 서천 아펜젤러순직기념관 홈페이지에 소개된 다음의 글은 바꾸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순직 장소를 군산 앞바다에 있는 오식도로 알고 있었으나, 우리 충청연회가 학계의 도움을 받아 그의 죽음의 장소가 서천 앞바다에 있는 어청도(일본발음 오세이도)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습니다.’
앞서 밝힌 대로 학계에서는 군산 앞 바다인 오식도란 주장을 한 리진호가 이 주장을 철회한 이후 군산부근 어청도라는 사실이 정설이 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위치상으로 서천 마량진은 어청도가 가장 가깝다는 이유와 사고 당시인 1902년 어청도의 행정구역이 충청도란 사실로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지형상으로 어청도는 서천의 마량진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깝습니다. 참고로 마량진에서 볼 수 있는 어청도와 마량진 사이의 바다는 아펜젤러의 조난지점이 아닙니다. 아펜젤러의 조난 지점은 섬 뒷 편 어청도 서북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사고 당시인 1902년에는 행정구역이 전라북도가 아닌 충청남도였습니다. 옥구면에는 1914년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서천에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설립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청도를 사이에 두고 각각 군산에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와 기념관, 서천에 아펜젤러순직기념관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다에 떠 있는 어청도가 바라다 보이는 군산과 서천에 각각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2007년 유명한 학자들이 모여 고증을 할 그 해 이미 군산에는 아펜젤러순교기념예배당이 건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알았을까요? 앞으로 군산과 서천에 있는 두 개의 아펜젤러 기념관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한 군데가 기념예배당 문제도 정리해야 할 일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목포입니다. 1974년 많은 감리교회의 모금으로 세워진 목포제일감리교회에 바로 기념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