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윤허로 조선에 깃든 복음의 빛

민관기
  • 2617
  • 2015-02-28 19:32:26
이란 제목의 역사 전도지가 있다.
감리교회 선교 윤허 122주년, 주재선교사 파송 121주년, 안산지역 선교 111주년에 경기연회 안산지방회에서 발간했다.
파란바탕에 태극기가 펄럭이며 위의 제목이 있고 사진으로 광무황제 명성황후 스크랜튼 아펜젤러 이준 김구 이재명 유관순 하란사를 넣었다.
*. 기실 이 글은 좀 전 한시간여 걸쳐 나름썻는데 저장하기 누르니 사라져서 다시 쓰는 글이라 좀 자증이 나는 상태에서 쓰고 있음을 양해해 주십시요.

1. 감리교회 선교윤허 공로자 : 가우쳐의 안내로 1884년 맥클레이이게 선교 윤허한 공로자는 광무황제, 명성황후 민영익 김옥균 등이다.
2. 순종 철종기에 이르러 영정조기의 문화적 르네쌍스가 완전히 허물어졌으며, 대원군의 개혁과 쇄국정치로 쓰러진 국운이 일어설 수 없음을 간파한 명성황후는 1875년 천주교인 8000여명의 대박해라는 현실을 딛고 개혁과 개화를 국가발전전략으로 선택하니 이것이 1884년 감리교회 선교윤허로 나타났다. 라고 전도지에 기록했다.

이 말이 무슨말인지 되돌아보자.
민영익이 도대체 뭐길래 미국 방문도중 기차에서 만난 낯선이에게 선교 가능성을 언급했으며 그걸 또 믿고 맥클레이에게 선교 가능성을 타진하라는 연통을 넣는 가우쳐. 그걸 또 믿고 즉시 조선으로 달려온 맥클에게 단 며칠만에 그래 너와서 선교해 허락하겠다라는 결정은 도대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이냐는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국력이 소진됐다. 숙종기에 이르러 약간의 정비가 되었다 한다.
1700년대 이대로의 조선은 안된다는 유학의 대안 학문인 실학이 발흥하기 시작했고 청나라를 통해 북학파들이 서학이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과 실학의 만남으로 선빛들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이 나라는 개화의 새길로 가야한다는 열망을 품는 이들로 근기지역(경기 충청)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것이 영정조기 융성의 토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역사는 그런건지 19세기인 1800년대에 들자마자 이 세기는 민란의 세기가 되었다. 순헌철종기 나약한 국왕들이 올바르게 서지 못한 가닭이다. 또 그렇게 반세기가 지나 고종임금이 등극하며 부친의 섭정이 이뤄지고 그는 조선의 정치를 개혁하는 나름의 조치를 취하며 국운을 융성시키고자는 하나 쇄국책 씀으로 시대의 조류는 읽지 못했다.
그는 명성황후의 배후조정으로 면암 최익현의 탄핵 상소로 임금이 직접 친정체제가 수립됨으로 물러난다.

간단하게 보자.
이미 1700년대부터 대안유학인 실학과 양명학 그리고 북학파의 서학 유입 그리고 그에 반하는 위정척사파의 발흥 또한 세계종교사에 전무후무한 무엇에 반대하는 종교인 서학반대 동학의 창도. 서양에 일기 시작한 제국주의자들의 발호와 미국의 해외선교열망 분위기.
이것이 강화도 조약과 조미수호통상조약 그리고 감리교회에 의한 선교윤허의 개략이다.

다시 한 번 풀어보자.
그래~ 쇄국은 아냐. 개화로 가야해란 조선의 방침은 확고했다. 언제 어떻게의 문제만 있을뿐이었다. 명성은 황제와 국정을 내치 외치 가리지 않고 감당했다. 수신사로 몇 차레 왜에 사절로 갔나보다. 거기에서 왜의 근대문물을 보았다. 이는 정무보고로 황실에 보고되어졌다.
그 보고엔 불국의 천주쟁이와 미국의 개신교는 다르다는 점이 있었다. 개신교는 감리교회를 말한다.
불국의 천주쟁이들은 불법선교사를 파견해 정부가 하지 말라는 복음선교를 자행하여 원성을 샀으나, 왜 진출 감리교회는 병원과 학교를 운영하여 왜에 근대 지식인을 양성하고 어려운 백성을 위해 근대 병원이 운영되고 있음이 구별되어 보고됨이다. 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말할것도 없이 1876년 불과 10여년도 안되는 때에 천주쟁이 8,000여인 대박해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명성은 견미사절단의 대표인 영익에게 말했다. 네가 가서 확인하고 타진하라. 광무는 암말도 안했을까?
임금은 영익에게 경은 들으시오하며 말했다.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며 미국교회가 조선으로 올 수 있는가를 알아보라고 말이다.
그가 그렇게 결정되어가지고 가지 않은 이상에야 자기가 무슨 왕이나 장관도 아니고 길거리에서 만난 이에게 선교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말은
전혀 사실 관계를 파악치 못한 말이다.

하여, 맥클레이는 내조선하게 되었고 단 며칠만에 왜에서 하고 있던 학교와 병원의 선교 허락을 공식적으로 받게 된것이다.
스크랜튼 모자와 아펜의 내조선은 정부의 허락으로 미감리교회 선교부가 결정하여 파송된 이들일뿐이다.
아니라면, 불국 천주교 사제들처럼 수 천명과 순교를 했을지 모르나 그들은 오지도 않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한편, 실학과 서학은 천주교 선교의 자원화되나 독립운동자원화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들이 개신교보다 100년 먼저와서 수만의 피를 흘려가며 선교을 해왔는데 개신교가 엄청난 선교물량작전으로 나오자 식민제국을 많이 거느리고 있어 선교물량을 대량 투입하지 못하는 천주교는 왜의 식민당국과 밀통하여 개신교 선교를 방해하는 일에 몰두한다.

하나, 실학과 서학 그리고 양명학으로 단련된 조선의 선빛들이 있었다. 개화 근대화의 선구들이며 국권수호와 회복 그리고 독립의 최전선에 선다. 그냥.그래 우리 조선이 개화를 했대 쇄국은 이제 아니래. 그러니까 나도 개화야~가 아니란 말이다.
이미 이전 준비된 이들과 감리교회의 주재 선교사로 온 선빛들과의 만남에서 감리교회의 그 츨발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해석하지 않을때 오는 혼란이 있다. 혼란보단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헐버트의 황제특사, 이상설 이준 위종 황제특사, 이승만의 도미특사, 손정도 하란사 이강 이회영의 황제망명 북경 정부수립 등. 감리교회 선교사와 목사와 평신도들만이 동원되었으며 황제가 그렇게 왜 결정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 잠 시후 경기연회 주최 31절 기념예배가 열리는 제암교회로 가족교인들과 같이가야 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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