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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의 삼일절 예배
민관기
- 2948
- 2015-03-04 03:37:16
내가 섬기는 교회, 동네 교회인 안산 샘골교회 그리고 제암교회이다.
그런데 올 핸 샘골교회엘 못갔다.
동대문교회에서 삼일절예배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에서도 예배드리고 밥먹는다. 물론, 실내에서 드린다.
제암교회 예배는 매년 경기연회 주관으로 드려진다. 미안한 얘기지만 연회 주최이기에 감독이 설교하고 감리사들이 각 순서를 맡는다.
한데, 순서를 맡은 이들를 제외하면 일반 목사들은 거의 없다.
올해 순서를 맡았던 목사도 내년 순서가 없으면 참석안한다.
1988년 이래로 제암교회 예배는 계속 참석했다.
그 해엔 야외에서 드려졌다. 그리고 예배당은 왜인들이 자기네가 교회당을 불태워서 미안하다고 지어준 것이었다. 흰빛갈로 31의 형태를 띄어지어진 교회였다.
1999년 나는 임창열 경기도지사와 목회자 간담회를 참석하게 되었는데 회의 말미에..
지사님 제암리교회 아시죠?
네~
근데 그 교회가 일본 사람들이 교회를 불태워서 미안하다고 지어줬다네요. 했다.
아니, 거긴 사람이 대량으로 죽은데 아닌가요?
예. 근데 사람 학살은 빼고 교회불태워서 미안하다고 지어줬답니다.
당장 조사해서 조치하겠다.고 했습니다.
며 칠있다가 도공무원들이 제암교회를 방문해 실상을 파악했고 그들은
제암교회가 학살 사죄가 아닌 소타 사죄 차원에서 지어졌음을 확인 지사에게 보고하였으며 그 해 말 30억의 예산을 편성.
소타 사죄교회를 때려부수고 학살기념관과 교회를 지었습니다.
하여, 전 2.000년 동지사대학 하라교수. 그는 제암교회 소타 사죄위원회를 조직 5,000만엔을 모금해 교회를 교회의 허락하 지어준 인물인데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방문시. 제가 직접 통고했습니다.
1. 당신네가 지어준 소타사죄교회는 내가 부쉈다. 다시 학살 사죄로 지었다고하자. 암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더군요.
2. 하고, 정신대요? 성노예요? 물으니 또 고개를 푹 숙이고 성노예입니다. 대답을 하더군요.
3. 당신네는 신의 종류가 왜 그렇게 많은거요. 하물며 총리조차도 다리 다섯개 개가 타어나면 거기에 돈과 음식을 공양하니 그렇게 해서 정신이 제대로 박히겠습니까? 물었더니..
일본 기독인들조차도 이제서야 성부의 존잴 정확히 인정하며 성자의 인식은 약간 희미한 상태이고 성령의 인식은 거의 인식을 못한다란 답을 들으므로 아~ 물려받은 섬의 대륙문화 수준이라는것의 한계와 거의 2천여년간 근친혼을 해온 그들의 정신적 수준을 정확히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4. 말미에 하라 교수가 자꾸 말의 처음과 끝. 아노 아노~ 하길래. 통역에게 물었다. 왜 말하면서 아노아노~ 하는거요. 물었더니
그냥 말버릇이다라고 하더군요. 아놔~ 이런 말뜻도 모르고 말을 5분하며 아노를 수십번하다니. 하고 그 뜻을 알려줬습니다.
아노. 는 알놓이 본말로 뜻은 알이 놓여졌다는 말인데 자기가 자기에게 아멘하는 것인데 왜 하냐면 자기도 자기를 잘 못믿고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 아노하는거요. 하고 말했더니 통역은 눈이 똥그래지며 뭐라고 뭐라고 설명을 하라 교수에게 하는데 이해를 했는진 말 모릅니다.
서기를 구분할때 B.C(비포 크라..)와 A. D로 구분하는데 A.D는 아노 도미네이트이다. 여기서의 아노도 일본인들의 말버릇인 아노와 뜻은 같으나 용도는 다르다. 여기서의 아노는 용상이나 보좌에 앉은 현상을 말한다. 보좌에 알이 놓여져 있다. 곧, 왕을 알이라보았고 놓여짐을 놓여진것이라고 설명하고 도미네이트는 도미노처럼 그냥 그냥 그 앉아 계신 이 앞에서 뒤로든 앞으로든 부복하고 자빠지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긴 했는데 통역이 제대로 전달을 했는진 모릅니다.
*. 도미노는 돋아있던것이 밀려서 작게(미) 놓여지는 현상을 언어화한 것.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주앞에 안 자빠지시나요? 전 뒷머리가 걱정돼서 앞으로 폭 고꾸라집니다.
아무튼, 그와의 만남을 통해 왜인들의 정신세계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왜어에 능통한 대한인 현자가 출현하여 그들에게 제대로된 배움을 주는 이가 반드시 있어야 동양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잠시후 계속 이어갑니다.
물 한잔 마시고..
저는 재작년부터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지역과 충청이남의 감리교회 31운동(혁명이지만 편의 상 운동)은 수원 종로교회와 삼일학원을 사령센터였다.
하여, 삼일절 기념예배는 수원종로교회나 삼일학원에서 드려지는 것이 맞다고 보고, 제암교회는 선열들의 순국일인 415에 추모예배로 드려져야 맞는것이라고 했으며..
마침 제암교회 옆 수촌교회 목사님이 계셔서 목사님. 제암교회 일본인들이 불태워서 미안하다고 지어준거 아시죠?
네~
그럼 수촌교회, 화수리 교회 사강교회도 불태웠으니 소타사죄교회 지어달라고 우기고 민가도 700 여호 불태웠으니 초가라도 좋으니
소타사죄교회 3개와 소타사죄민가 700여호 지어달라고 징징대세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
이제 4년후면 삼일 100주년인데 이번 연회에서 청원하여 준비위 구성 청원을 하자 하시더군요. 반응 디게 빠르죠 잉.
저는 넵^^ 했습니다.
제가 제암교회 31예배 참석을 거의 삼십번 했는데 올해만 31일 아닌 2. 28에 드려졌습니다. 주최가 연회이기 때문이죠.
담날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샘골교회는 주일 안산기독교연합회 주관으로 3시에 드려져 할 수 없이 동대문교회로 향했다.
왠만하면 서울 안가고 가까운데서 예배드릴텐데 샘골교회는 올해 1. 23일 최용신 전도사 추모예배를 드린바 있어 동대문언덕으로 향했다.
4신데 2시 반에 도착했다. 댑따 추웠다. 눈도 오더라. 언덕이라 그런지 바람도 장난아니고.. 아들과 같이 갔는데 아들은 100 여미터 앞에서
성밖 동인교회 종탑을 보고 아부지~ 동대문 교회는 헐렸는데 저기 저 교회는 왜 그냥 있어요 한다. 할 말이 막막했다.
재넨 성밖이잖아~ 우린 성안이라 성 복원한다고 교회를 헐었단다. 근데 모 아부지 교회있던 자린 그냥 풀밭이네요.한다.
그래, 우리 감리교회가 뭔갈 잘못해서 이렇게 교회가 헐리게 되었단다. 하고 알려줬다. 뭘 잘못했는데요하고 또 묻는다.
음~ 감리교회 땅인데 동대문교회 땅인줄 서울시가 착각했고, 예전 동대문 교회 목사와 어떻게 짜고 200억원을 뭐라고 설명했으며
언덕위로 올라가 이화병원이 있던 자리에 [이화여자대학교 동대문 병원]이란 표지 바닥이 있기에 비유를 들어 다시 설명했다.
서울시가 동대문 병원은 이미 수용했다. 누구와? 이화여대와했고 동대문 병원의 의사와 하지 않았다.
그럼, 교회는 감리교회와 수용협상을 해야는데 개별교회인 동대문 교회와 한게 불법인거다라고 설명을 해줬다.
배가 고파 아들과 계란빵 하나씩 사먹고 4시부터 예배를 야외에서 드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더 추웠다. 한 100 여명은 모였나보다. 동대문 교회 초대 목사와 교인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손정도 목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장로교 여 목사), 김상옥의사(며느리와 손녀 둘 그리고 손자)
칼바람을 맞으며 예배는 진행된다. 독립선언서 낭독자이신 한상언 목사님은 오늘은 칼바람 맞아야 한다.하며 선언서를 우렁차게(당시의 기분으로 읽어야 한다며..) 읽는중 칼이란 단어도 선언서에 나온다.
설교. 축도, 정대철(정일형 목사 후손)전의원의 격려사, 선언서 낭독, 만세삼창, 동대문교회 건축관계(불확지 공탁 설명) 동대문 교회 남은자들의 최애도 장로가 말했을때 모두가 속으로 분노, 사진 촬영 등 등으로 예배가 기념이 아닌 감사예배로 마쳐졌다.
5시 40분이 넘었다. 도착한지 3시간이 넘어간다. 대충 정리하고 집에 가려했다. 밥은 주려나 했다. 아차~ 광고시간에 광고한다. 우리 사정이 어쩌구해서 진지를 대접못하고 빵과 음료를 준비했단다. 추운데서 빵과 음료 마셨다. 하도, 춥고 배고파서.. 부들부들 떨면서.
근데, 또 예배를 드린단다. 아니 이건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