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유삼봉
  • 2284
  • 2015-03-09 14:06:56
무덤에 와서 보니 돌이 무덤에서 옮겨졌습니다. 그 밤에 무덤 문이 열렸습니다. 시몬과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가서 말하니 사람들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갔는데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소중한 존재를 세상에서 강탈당하였다는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나요. 애태워서 찾지만 볼 수 없고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주님입니까. 죽음의 터에서부터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두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갑니다. 무덤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요. 죽음의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달려갑니다. 세상은 끝났다고 여긴 곳인데 둘이 달려나갑니다. 서로 더 빨리 달려 무덤에 다다릅니다.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먼저 무덤에 이르러 들여다보아 세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주검의 자리 무덤 빈 무덤의 새로운 시야에 세마포로 보입니다. 무덤에 들어간 베드로는 세마포와 머리를 싼 수건이 딴 곳에 놓였는 것을 보았습니다. 주검의 껍질 무덤은 실체를 벗었습니다. 죽음의 심연 더는 두려움의 상징일 수는 없습니다. 눈동자의 깊이만큼 일뿐 벗겨져 보일 허물입니다.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니 무덤은 어둠의 절망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어서야 다시 사는 성경 말씀을 아직은 모릅니다. 죽지 않고 영생을 살지 못합니다. 펄펄 살아있으니 죽음의 풍기를 일게합니다. 빈 공간 죽음의 흔적으로 하찮게 여겨서 접하게 하였으며 두 제자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갈 곳 잃고 무덤 밖에 섰는 마리아 눈으로 흐르는 눈물이 마음도 닦고 있는지요. 무덤 안을 들여다보면서 웁니다. 새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 예수의 시체가 놓였던 곳 머리맡에 발치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과 거룩함으로 똑같이 쌍으로 겹치면서 나타납니다. 여자가 눈물을 흘리니 가시지 않는 서러움입니다. 서로의 시선으로 든든함을 확인하고 가르침을 받들면서 힘을 얻는 유일한 의지였는데 죽음을 끝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져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허망함이 눈물로 가려 투과됩니다. 우는 여자가 돌이켜 서 계신 예수를 보았으나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울면서 무덤에서 찾는 예수 돌이켜 서 계신이 가 예수신지는 모릅니다. 예수께서 울면서 찾는 이가 누군지 묻습니다. 눈물로 찾는 시체 무엇을 얻자는 것인지요. 동산지기라고 보이니 통사정을 털어놓습니다. 당신이 어디 두었으면 내가 가져가게 하시요. 사람이 끌면 옮겨지고 들어서 가져다 놓는다는 뒤틀린 시각으로 보는 예수신지요. 마리아를 부르시니 돌아서서 선생님 생명으로 살리려고 죽었다가 다시 사신 큰 사랑의 말씀이 부르십니다. 황망 중 부활의 은혜로 불러 말하도록 하십니다. 내가 아직 여기 있어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으니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라. 내가 내 아버지이고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먼저 떠나니 형제들이니 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게 된다는 것을 이르라. 그럼으로 아직 여기 있다고 막달라 마리아가 가니 제자들에게 자기가 본 주님을 자기를 말씀으로 보내셨음을 일렀습니다. (요한복음 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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