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따지기식의 추궁이라고 하시니,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관리자
  • 2604
  • 2015-04-07 03:35:48
성경, 정경이 우선일까? 성령의 감동이 우선일까?
이 름 노재신
날 짜 2013-10-21 19:28:33
조 회 207
IP 59.2.4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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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엔 성경전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출판되어 판매가 되는 성경엔 성경전서라 씌어 있지 않고 OO성경이라는 수식어와 더불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성경들이 출판 판매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제 '성경전서'라 하면 젊은 이들은 '그런게 있어? '성경전서가 뭐야?'라고 할 지도 모릅니다.
OO성경이라 표현된 갖 가지의 성경은 익숙하지만 성경전서는 이제 과거에 성경을 일컬어 부르던 것 정도로 알고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도 요즈음 몇 몇 아니 대다수의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들은 성경이란 말보다 성서란 말을 잘 사용합니다. '성서'란 성경전서의 줄임말 입니다. 사람들은 대학교 이름을 줄여서 잘 사용했습니다.
서울감신은 감리교신학대학을 뜻하고, 목원은 목원대학교를 뜻하고, 협성은 협성대학교의 준말입니다.

예전엔 고려신학교가 있었지만 그 이름을 줄여 고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젠 고려신학교는 과거의 이름이 되었고 아주 고신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개명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모르고 대학교 시절 고신대학을 자세하게 표기한다고 고려신학대학교라고 했다가 고신대학 기독교 동아리장들에게 창피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성경전서라 사용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모든 출판되는 성경은 OO성경은 있어도 성경전서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목회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은 '성서'란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성서란 표현을 이젠 성경으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일 전 하느님이라고 표현하는 몇 몇 분들이 계셔서 하느님은 케톨릭에서 표현하는 하나님의 표현이니 우리는 전통과 교단의 공용적 표현을 따라 하나님이라 바꿔서 글을 써야 할 것이라고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성서는 이제 성경으로 바꿔야 합니다.

성경은 정경화 과정을 통하여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케톨릭은 자신들의 교리를 위해 위경을 포함하여 더 많은 성경을 정경이라고 공표하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신교인으로써 케톨릭의 정경을 따르지 않고 66권으로 되어진 성경을 정경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뿌리는 같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고백은 같으나 개신교회와 케톨릭은 너무도 달라졌습니다.
케톨릭이 정교회와 달라진 것 만큼 정교회와 개신교가 다른 것 만큼 케톨릭과 개신교도 달라졌습니다.
만약 애큐메니칼 운동을 하려면 먼저 성경부터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3개의 기독교의 큰 흐름이 다시 한권의 성경 즉 같은 정경을 성경으로 고백할 날이 찾아 올까요?

정경은 교회의 신앙고백과 같은 길을 걷습니다.
개신교의 입장에선 위경과 외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케톨릭은 자신들이 채택한 위경 또한 성령의 감동이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단인 몰몬교는 몰몬경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 졌다 할 것이며 통일교는 자신들의 원리강론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졌다 할 것이고 신천지의 이만희는 자신의 비유 해석을 성령의 해석이라 함으로 또 다른 성경을 위한 성경이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개신교회는 그들을 이단이라 정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성령의 감동이라 할 것입니다.

정경은 열려 있을까 아니면 닫혀 있을까?
정경인 성경은 또 다른 성경을 인정 하고 있는 가 아니면 더 이상의 성경은 인정하지 않는가? 이것도 너무도 복잡하고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 개신교회들은 당연히 정경화 작업은 더 이상의 성경을 필요치 않는다라는 암묵적 교단의 인식과 합의가 있다 할 것입니다.

이 66권 이외의 또 다른 글들을 성경이라 주장한다면 곧 이단이라 정죄하고 판단 하게 될 것입니다.
이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교단입니다. 교단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교회의 연합이며 공교회성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성령의 감동인 영감을 통하여 기록이 되었다면 또 구약과 신약 또한 단번에 정경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두고 많은 논쟁과 합의를 통해서 이뤄진 역사적인 산물이라면 성경의 정경은 열려져야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성령은 성도들과 함께 하며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며 성도의 믿음의 삶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분명 지금도 성령의 역사 즉 감동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전해지는 설교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한다 합니다. 그러나 설교는 지금의 정경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말을 합니다. 설교가 현재의 정경인 66권의 성경의 내용과 다른 내용을 전한다면 설교 자체로도 이단의 시비가 걸리게 될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이단으로 판단되고 정죄된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교회는 교단은 정경화 된 성경을 성령의 감동 하심에 열어 주었을까요? 열어 두어야 할까요?
만약 교단의 지도자들이 다 타락을 한다면 정경화의 문을 닫는 것이 주님의 뜻일까요?
만약 교단의 지도자들이 거룩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정경화의 문을 닫는 것을 주님의 뜻이라고 단정을 지을까요?

참으로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6권의 성경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 졌다고 주장하는 모든 글과 설교와 신학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정경이 우선일까? 성령의 감동이 우선일까?

* 논쟁을 위한 논쟁이 뻔하게 보이는 글의 주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라면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노재신 (2013-10-21 19:46:46 / 59.2.43.243)
* 신구교의 성경(정경)의 수

개신교,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의 성경수는 각각 다릅니다. 신약은 27권으로 동일한데 구약의 수가 다릅니다.
개신교는 39권(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 유대인의 표준)이고, 로마 가톨릭은 개신교가 제외한 7개의 제2 경전인 토비트, 집회서, 마카베오상하, 유딧, 바룩, 지혜서로 46권(이외의 다니엘서 3,24~90 ; 13~14장 일부, 에스델서 10,4~16, 24일부 포함), 이것은 이스라엘 -희랍인들(즉 외국 유대인들의 성경)의 70인역 즉 희랍어 구약성경을 따른 것이고, 동방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보다 3개가 더 많은 희랍어 구약성경 49권 입니다.

신구약을 종합하면, 개신교는 66권, 로마 가톨릭은 73권, 동방 정교회는 76권이 됩니다.

http://blog.daum.net/conjugiallove/16151464 에서 복사해 옴

※ 2013-10-21 19:56:10 에 "노재신(shwotls)" 에 의해 수정됨

최신석 (2013-10-21 19:49:12 / 39.7.49.192)
원학수 목사님의 설교학 입문이라는 글에 댓글로 노재신 목사님께 드렸던 댓글을 아래 댓글에 옮깁니다.

목사님의 마당이니 이제 제 문의에 편히 답을 주시겠습니까?

아울러, 목사님께서 올리셨던 가룟유다의 배반의 장미와 예수님과 노인이라는 글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신 글이며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신석 (2013-10-21 19:51:35 / 39.7.49.192)
목사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최신석님만의 깨달음과 믿음 그리고 감춰진 비밀을 읽을 수 잇는 재미도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저를 위한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성령은 하나이시니, 성령님께서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서로 상충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성경에 없는 내용의 경우, 특히 그 내용이 성경에서 말하는 바와 차이가 있을 때에는 그 내용에 대하여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볼 때에는 제가 드린 주요 문의 사항에 대해서는 답을 피하고 계시거나, 목사님께서 올리신 글에 대하여 목사님 자신도 확신을 하고 계시지 않으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목사님께서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 내용의 출처에 대하여 밝히지 않으시면 성도들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요?
어떤 성도는 목사님의 그 두 이야기를 성경에는 없지만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성도들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과 가룟유다와는 다른 예수님과 가룟유다를 말하는 글로 진실이 아니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 두 부류 중 어느 쪽이 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 성령에 감동 받은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목사님께서 올리시는 글에 댓글로 추후에 다시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제가 문의 드린 사항에 대하여 답을 주시고, 문의한 내용에 대한 목사님의 답은 밝히지 않으신 채 목사님께서 하시고 싶은 다른 이야기들을 기술하지는 않아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이번 문의 사항들 중,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지 않은 점도 저로서는 안타깝습니다.
- 아래-
목사님께서는 "만약 성령의 감동이냐의 논쟁에서 제 글이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판명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이단의 논쟁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통해 성경의 정경성을 훼손하는 글이 되어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으로 그 판명의 기준을 삼아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인지요 아니면 성경인지요? 아니면 성경과 다른 내용을 말하는 어떤 존재가 주는 감동인지요?
그것도 아니면 이단시비 연루 가능성인지요?

목양과 기도와 말씀 연구 등으로 바쁘신 중에도 귀한 시간을 할애하시어, 제게 댓글 주신 점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노재신 (2013-10-21 20:15:08 / 59.2.43.243)
하나 하나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 최신석님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과 가룟유다와 제가 올린 글의 예수님과 가룟유다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군요.
어떤 면에서 성경과 제가 올린 글의 내용이 다른지 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최신석 (2013-10-21 20:51:02 / 39.7.45.91)
목사님께 제가 먼저 여쭈었으니, 제가 드린 문의에 먼저 답을 주셨으면 합니다.

노재신 (2013-10-21 21:00:31 / 59.2.43.243)
ㅎㅎ 아주 막무가네시군요. 제 답을 듣고 싶으신건가요? 아니면 저를 판단하고 싶으신건가요?

제 답이 듣고 싶으시다면 제 질문에도 답을 좀 하셔야 합니다.^^

※ 2013-10-21 21:03:36 에 "노재신(shwotls)" 에 의해 수정됨

최신석 (2013-10-21 21:05:35 / 39.7.45.91)
저는 목사님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고 판단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제 관심사는 복음입니다.
제가 문의 드리는 이유는 이전 댓글에서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올리신 그 두 글의 출처를 알고 싶습니다.

※ 2013-10-21 21:06:42 에 "최신석(pldc0216)" 에 의해 수정됨

노재신 (2013-10-21 21:08:31 / 59.2.43.243)
왜 다른 글의 출처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왜 굳이 2개의 글만 궁금하신 이유가 뭔가요?
복음과 출처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 2013-10-21 21:12:48 에 "노재신(shwotls)" 에 의해 수정됨

노재신 (2013-10-22 07:17:03 / 59.2.43.243)
최신석님은 복음에 관심이 많다 하시고는 본인에 대해선 감추시려는 것이 너무 많으시군요.
복음은 진실입니다.
진리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질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함창석 (2013-10-22 08:17:22 / 14.35.85.97)
정경(사)
오랜만에 들어보는 낱말이군.
아마 베드로복음, 도마복음도 있었다지.

최신석 (2013-10-22 08:18:42 / 175.223.25.250)
감리회에 속한 집사라고 몇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감춘다고 몇 차례에 걸쳐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 문의 사항에는 답을 주실 생각이 없으신 것인지요?
오히려 목사님께서 많이 감춘다는 인상을 주고 계신 듯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인용하시며 이것이 복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목사님, 목사님께서 올리셨던 그 두 글은 성령에 감동되어 쓰신 글입니까? 성령님께서 주신 글입니까? 성경에 근거한 글들입니까? 외경에 근거한 글들입니까? 무엇인지 모르시는 혹은 밝히실 수 없는 어떤 존재에게 듣거나 거기에서 보신 글입니까?


그리고 제가 댓글에서 부탁드린 말씀들도 꼭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올리신 예수님과 가룟유다에 대한 글에 문의를 드리고 있는데 댓글은 달아주시면서 답은 주지 않고 계시니 참 답답합니다.

답을 주실 수 있으시면 답을 주시고 주실 수 없으면 그 이유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셨던 것이라면 성령의 감동으로 썼다고 말씀하시고 그에 이어 하시고 싶은 설명을 얼마든지 길게 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노재신 (2013-10-22 08:28:43 / 59.2.43.243)
최신석님은 보통의 집사라 하기엔 상당한 성경적 그리고 신학적 지식을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먼저 제가 질문했던 것에 답을 해주시지요.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과 가룟유다와 제가 올린 글의 예수님과 가룟유다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군요.
어떤 면에서 성경과 제가 올린 글의 내용이 다른지 부터 말씀해 주십시요.^^

최신석 (2013-10-22 09:24:06 / 175.223.3.41)
목사님, 제가 그 두 글의 출처에 대해 문의한 것이 비단 어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드린 문의에 대하여 답을 해주시은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보통의 집사란 어떤 집사인지 모르겠습니다.

출처를 밝히지 않으시는 이유가 그 이야기의 근거가 성경에 없기 때문입니까? 외경에도 없기 때문입니까? 전승도 아니기 때문입니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신 존재가 성령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성령인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으시기 때문입니까? 성령에 감동 받아 쓰셨고 정경에 넣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이단 논란에 연루되실까 두려우시기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목사님께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신 것입니다.

이미 직분까지 몇 차례 밝힌 제게 감추는 것이 많다 하지 마시고, 제 견해를 짐작하시고 먼저 제게 견해를 말하라 하지 마시고, 이제는 문의에 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노재신 (2013-10-22 09:40:35 / 59.2.43.243)
최신석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몇 차례 걸쳐 여쭤 보지만 답은 안하시고 예전 부터 물어 온 질문이니 답이나 하라 하시는 군요.
보통의 집사가 어떤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보통의 장로님들도 최신석님처럼 묻지 않으십니다. 보통의 목사님들도 이런 질문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최신석님 말고 이런 질문을 하고 계신 분이 있던가요?

전 전에도 말씀을 드렸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위의 원글에서도 어느 정도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이젠 최신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간단하게라도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글을 올림은 감게의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음이었습니다.

※ 2013-10-22 09:47:33 에 "노재신(shwotls)" 에 의해 수정됨

최신석 (2013-10-22 09:51:00 / 175.223.3.41)
전에도 이번에도 답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 두 이야기의 근거 혹은 출처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 두 글은 목사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쓰신 것인지요?

그리고 목사님의 댓글의 첫 부분의 내용이 좀 이상합니다. 제가 먼저 문의 드린 내용에 대하여 먼저 답을 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 건과 관련된 문의도 제가 먼저 드렸다는 점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드린 말씀 중 어느 부분에서 답이나 하라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노재신 (2013-10-22 10:05:51 / 59.2.43.243)
글쟁이는 자신이 쓴 또는 올린 글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럼 의미에서 저는 많은 글을 썼고 올렸으니 제 자신의 인신에 대해선 드러나지 않았어도(몇몇 분들의 뒷조사로 드러난 것도 있지만) 제 생각과 마음을 너무도 많이 지나칠 만큼 감게에 털어 놓았다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현재 연회 관리자에게서 모욕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라는 황당한 고소거리로 재판과정에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인터넷의 글쟁이들은 자신의 글들이 실명제가 아닌 별칭(아이디)으로 쓰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최신석님의 글중 원글은 보지 못했습니다. 댓글만 몇 개를 보았을 뿐 입니다.
최신석님은 제가 감춘다고 하시지만 저는 제가 올린 글로 지나치리만큼 많이 노출이 되었습니다.

최신석님은 보통의 집사라고 할 뿐 보통의 집사다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을 숨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견의 글이라도 올리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숨은 그림자와 같은 최신석님과는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글의 출처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저의 생각과
글의 출처가 뭐가 그리 비밀이냐?가 서로 맞서고 있습니다.

신분이 의심이 되는 사람에게 국가 시설에 관한 정보를 유출하면 자칫 간첩의 혐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최신석 (2013-10-22 11:52:46 / 210.109.26.132)
목사님, 목사님께서 많은 글을 쓰셨어도 목사님께서 쓰신 "예수님과 노인"과 "가룟유다와 배반의 장미"가 목사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쓰신 것인지 여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드러내신 것이었다면 직접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신분이 의심되는 사람에게 국가 시설에 관한 정보를 유출하면 자칫 간첩의 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감리회에 속한 교회의 교인이 아니거나 기독교인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하셔서 그 두 글의 출처나 근거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계시다는 것인지요?

목사님께서는 감리회 교인 혹은 기독교인에게만 예수님을 전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혹은 부분적으로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전하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말씀을 가려 전하십니까?
게다가 저는 감리회 홈페이지에 가입되었으니 감리회 교인이라는 사실을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것도 아니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에 대해 목사님께서 올리신 글의 출처와 근거를 문의해왔습니다.

제 원글은 보지 못했고 댓글만 몇 개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올리신 그 두 글에 대한 것이라면, 문의를 드리는 것이므로 댓글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것들에 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왜 원글을 올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원글을 올리지 않은 이들에게는 목사님께서 진리 혹은 진실이라고 생각하시는 것들의 출처나 근거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는 것이 목사님의 뜻입니까?

보통의 집사라고 하시는데, 집사된 자가 목사님께서 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이상한 것인지요?

제가 감춘다고 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목사님께서 올리신 두 글에 관하여 드린 문의에 대한 목사님의 견해입니다.
제가 드린 문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읽어봐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께서 올리신 다른 글들에 대해서 지금 말씀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리회 혹은 기독교인 혹은 목사님께서 신앙을 검증한 사람에게만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시고 또 출처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신다면 제가 아무리 반복해서 문의를 드려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해서 댓글을 주시는 점은 감사하지만, 댓글을 더 주시려면 제 문의에 대한 답을 댓글에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노재신 (2013-10-22 13:05:24 / 59.2.43.243)
계속 기찻길 양 레일을 달리는군요.
성경의 말씀과 제가 올린 글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생각과 판단을 갖고 있는 분에게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오해라면 제가 풀려 할 것이고 잘 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아 주려 할 것입니다.

만약 진정 복음에 관하여 궁금하신 집사님이라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출처는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말씀입니다. 말씀이기에 그 출처도 중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4복음서가 씌여진 그 시기에는 어디에도 출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4복음서의 출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것일까요?
출처가 분명 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라 하는 것일까요?

최신석님의 이러한 집요한 질문은 성령의 감동을 믿고 있는지 조차 의심이 되어 집니다.
성령을 믿지 못 한다면 저는 제가 올린 글을 설명하기 전에 성령에 관한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성령을 믿으라 권고 할 것입니다.

최신석님의 질문엔 이미 정해 진 답이 있는 듯합니다.
그것이 최신석님의 질문에 온기를 느끼지 못 함 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믿음의 핵심은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핵심에 온기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저는 그 온기에 관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감리교회 집사님이라고 하셨으니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복음에 관심이 있는 집사님이라 하시니 생업을 위해 무엇을 하시는 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리교회의 집사님으로써 복음에 관심이 있는 집사님으로써의 온기는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올렸다고 꼭 그 글의 출처를 밝혀야 할 의무나 책임이 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표절이라 하거나 지적 재산권의 무단사용이라 한다면 그 땐 달라지겠지만 말이죠?
집사님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십시요.
그렇지 않다면 전 최신석님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의무감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최신석님의 생각과 느낌을 물어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질문인가요?

율법사가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관심을 두는 따라 다니는 것은 당연함 입니다.
그러나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을 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온기가 없음입니다.

최신석 (2013-10-22 13:59:11 / 210.109.26.132)
물론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을 증거하셔야 하는 목사님이시만, 그렇다고 해서 제 문의에 반드시 답을 하셔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문의에 답을 주지 않으신다고 해서 예수님을 증거하시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4복음서의 출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것일까요?
출처가 분명 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라 하는 것일까요?"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말씀 드린 출처의 의미를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두 글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쓰신 것이냐고 문의하였습니다.
그 출처가 성령님인지를 문의드리고 있는데, "우리가 4복음서의 출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믿는 것일까요? 출처가 분명 하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라 하는 것일까요?"라고 말씀하시니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약과 신약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에 대해 목사님께서 쓰신 그 두 글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인지, 성경에 있는 것인지, 외경에 있는 것인지, 어느 전승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존재에게서 듣거나 보신 것인지를 문의한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댓글로 그 이야기들이 성경에 있지 않다는 점은 밝혀주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믿지 않는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냐고 문의했겠습니까?

목사님께서는 “제가 올린 글은 성령의 감동일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읽으시는 분이 깨달으시고 분별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노인"과 "가룟인 유다의 배반의 장미"를 성령의 감동으로 썼다 한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 진위에 대한 논쟁을 거쳐야 하겠지요.
그 논쟁에서 성령의 감동이 인정이 된다면 성경을 다시 정경화 시켜야 합니다.
저는 그런 논쟁을 원해서 그 이야기를 올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성령의 감동이냐의 논쟁에서 제 글이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판명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이단의 논쟁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통해 성경의 정경성을 훼손하는 글이 되어 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제가 원하는 논쟁이 아닙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정경성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의 글이라면 그 글의 근거가 성령의 감동인지, 아니라고 밝히셨지만 성경인지, 혹은 외경이나 전승 또는 다른 존재인지 더 궁금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온기가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율법사가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관심을 두는 따라 다니는 것은 당연함 입니다.
그러나 율법사는 예수님을 시험을 했지만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온기가 없음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시험만 하고 있다고 보시기에 제게 온기가 없다고 느끼시는 것인지요?
아니면, 제가 목사님께서 올리신 "예수님과 노인"과 "가룟유다 배반의 장미"라는 글을 성령의 감동에 의해 쓴 글로 믿지 않고 있다고 보셔서 제게 온기가 없다고 느끼시는 것인지요?

목사님께서는 이 둘 중 어느 것으로 인한 것이든 혹은 그 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인한 것이든,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목사님께서 말씀 혹은 인용하신 예수 그리스도나 그 분의 제자에 대해 질문을 할 경우에는 답을 주셔야 할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으시는지요?
물론, 저는 목사님께서 모든 질문에 답을 하셔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 목사님께서는 "단지 최신석님의 생각과 느낌을 물어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질문인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께서 올리신 그 두 글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신 것인지에 관한 문의가 그리 어려운 질문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 두 글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신 것인지 여부를 밝혀주시지 않을 생각이시라면, 성경 연구와 기도와 목양에 할애하셔야 할 목사님의 귀한 시간을 더 이상 제게 댓글 주시는 데 할애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노재신 (2013-10-22 19:11:21 / 59.2.43.243)
최신석님 공적인 감게의 게시판에 출처를 밝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님을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궁금한 것에 대해 알만한 충분한 글들을 올렸다 생각을 합니다.

무우 자르듯 잘라 보아야 속이 시원하실진 모르지만 그냥 무우를 통째로 두심이 잘라서 보관하는 것 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임을 기억하십시요.^^

주안에서 사랑이 가득한 믿음의 삶이 되시고 성경의 감춰진 비밀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으시기를 다시 한번 기도합니다.

최신석 (2013-10-22 20:29:00 / 39.7.48.99)
성령의 감동으로 쓴 것인지를 밝히지 않으시고 제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알만한 충분한 글들을 올렸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궁금해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본인께서 올리신 글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인지를 공적인 게시판에 올리시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 하시니...

다른 분들께 성령의 감동을 언급하시는 노재신 목사님의 반응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출처를 밝히실 생각이 아니시라면 댓글 주시지 않아도 몇 차례 말씀 드렸는데도 또 댓글을 주시니...

시간 할애해주신 점은 감사합니다.

기도와 말씀 연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진리에 관하여 그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담대히 전파하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노재신 (2013-10-22 21:41:47 / 59.2.43.243)
ㅎㅎ 성령의 감동은 성경이 한 가지로 공통점을 보이듯 공명과 같이 한 울림이 있습니다.
글 속에는 누구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 지, 누구의 글 뒤로 숨는 지, 지식으로 말하는 지, 스스로 깨우친 것인지 등등은 정확하게는 아니라도 알 만큼은 알 게 됩니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의 됨됨이 등등이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처럼 황당하다 못해 기가막힌 오해로 고소를 당하는 일도 있지만 말입니다. ^^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면야 요셉과 같이 되겠지요.
성경은 드러나 있지만 성령의 감동이 없다면 그 말씀을 온전히 깨닫진 못할 것입니다.
온전한 뜻은 성경 속에 검춰진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감춰진 보화와 같습니다.

세상의 지식도 성경을 왠 만큼 헤아릴 수 있으나 반드시 어딘가엔 헛점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학에 대한 글에 영감을 얘기한 것 입니다.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2013-10-23 09:57:10 에 "노재신(shwotls)" 에 의해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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