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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선한 목자의 삯꾼이어야 합니다.
관리자
- 3009
- 2015-04-10 02:35:57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장)
요한 복음의 선한 목자의 비유는 절대적으로 주님 즉 예수님에 대한 비유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을 더 풍성케 하며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의심할 것도 없이 선한 목자는 예수님에 대한 비유이며 양은 모든 믿음의 사람들을 뜻하며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에게 속한 양은 반드시 그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선한 목자의 음성에만 순종하는 양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양이겠으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아니한다면 더 이상 주님의 양이 아니라 하심입니다.
모든 진실한 성도는 주님의 말씀을 분별해야 하고 그 말씀을 듣고 고민하거나 방황하거나 또는 거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보혜사를 통해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구별케 하는 분별의 은사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치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 하셨습니다.(요14:26)
그러기에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세상의 목회자가 아니라 보헤사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선 우리가 구원의 길을 걷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또한 그때 그때 마다 필요한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심으로 구원을 온전케 하실 거룩한 주님의 영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세상의 목회자들이 이것을 오해하고 왜곡을 시켜 자신들을 선한 목자인냥 말을 합니다.
다시 성경의 말씀을 주목하여 보십시요.
요한복음의 말씀이 제자들이나 목사들이나 장로들과 교사들을 지칭하고 있는 것인지..
절대로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의 목회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선한 목자인냥 행세를 하게 된 것일까요?
이것이 오해이며 왜곡이며 더 나아가 미혹이며 유혹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대조된 존재가 있으니 이 사람을 주님은 도적이나 강도라 하셨습니다.
도적과 강도는 양을 훔치러 온 자이며 양을 해하는 자이며 양을 통하여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도적과 강도는 절대로 양의 문을 통하지 아니하고 울타리를 넘어 들어 올 것이라 하셨습니다.(요10:1~6)
주님은 도적과 강도에 이어 삯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삯꾼은 선한 목자의 상대적인 개념의 존재가 아닌 제 3의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삯꾼은 어떤 존재인가? 한마디로 선한 목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자의 행세를 하는 그 누군가를 뜻합니다.
삯꾼은 선한 목자가 아니기에 거짓 목자라할 수 있습니다.
거짓 목자는 이리(어려움-환란-핍박-위기)가 나타날 때 양을 버리고 달아나며 양을 진심으로 돌보지 아니함으로 양들을 흩어지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자의 행세를 하는 삯꾼은 누구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목양터의 주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그 누군가입니다.
그렇다면 목양터(교회)에서 선한 목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한 목자인냥 행세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기 싫을 진 모르지만 분명 그것은 목회자를 뜻합니다.
목회자는 목양터(교회)에서 삯(유급)을 받습니다.
만약 삯을 받는 장로가 있다면 그 장로도 삯꾼입니다.
만약 목양터(교회)에서 삯(유급)을 받는 이가 있다면 그 또한 모두가 삯꾼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삯꾼이 있다면 역시 목회자들 입니다.
이 말에 발끈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발끈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보십시요.
발끈하시는 분은 목양터(교회)에서 삯을(유급) 받지 않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삯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목양터(교회)에서 삯(유급 사례비)을 받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제 아무리 부정하고 부정하려 할 지라도 당신은 삯꾼입니다.
그 삯꾼의 증거는 매월 당신의 통장으로 들어오는 그 삯(사례비)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당신은 이 삯(사례비)을 받는 이상 더이상 아니라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삯꾼이란 사실을 인정 할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선한 목자에 관하여 주목해 보십시요.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하였습니다. 진정 당신은 양(성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실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절대로 선한 목자일 수 없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버리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진정 당신은 양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목양터(교회)를 옮기거나 못된(?)양이 목양터(교회)에서 나가길 바란 적이 없습니까?
삯꾼은 자신의 양이 아니기에 돌보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13) 진정 모든 양(성도)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돌보셨습니까?
성경 말씀의 선한 목자의 비유는 목회자를 뜻합니까? 아니면 주님을 뜻합니까?
주님이면서 목회자라 생각하시나요?
물론 삯꾼이었지만 선한 목자처럼 양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며 선한 청지기들이며 선한 삯꾼들 입니다.
이제 목회자가 선한 목자라고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아야 하며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보여지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 또한 믿음입니다.
목회자는 선한 목자가 아니며 도적과 강도와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성실하게 삯꾼(종)의 모습에 충실한 착하고 충성된 종(삯꾼)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삯꾼(종)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이 선한 목자(주님)라 주장한다면 자칫 잘못하면 삯꾼(종)도 되지 못하고 도적이나 강도로 돌변하기 쉽습니다.
그러한 도적과 강도로 돌변한 삯꾼들이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목자의 자리를 내려 놓고 삯꾼으로서 그 직임에 충실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 선한 목자이신 주님에게 받은 달란트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놓는 어리석은 종이 아니라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주인이신 선한 목자(주님)께서 맡기실 것입니다.
끝까지 선한 목사라 주장하려 하신다면
주님과 같이 성도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십시요.
성도를 위하여 희생하십시요.
성도를 위하여 자비량으로 봉사하십시요.
성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십시요.
그렇지 못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선한 목자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책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삯꾼이라 인정하신다면
주님은 절대로 성도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못했다 책망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성도를 위하여 희생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도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며
성도들이 드린 헌물로 사례비를 받았다고 도적이나 강도라 하지 않으실 것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지 못했다 하여도 꾸짖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목회자를 선한 목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삯꾼으로 부르시고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선한 목자의 삯꾼(종)이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스스로 자신을 삯꾼이라 인정한다고 속되거나 반드시 거짓된 것이 아니며 창피한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정직성과 믿음입니다.
진실로 목회자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삯꾼(종)만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스스로를 '나는 삯꾼'이라 할 것이지만
성도들과 후대 사람들은 그 분을 삯꾼이라 부르지 않고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같았던 분이라 칭송할 것이며
주님도 선한 목자가 되지 못한 것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착하고 충성된 내 종'이라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