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의 말씀과 행간의 말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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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4-08 04:21:05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있노라면 까만 글씨가 있고 그 사이에 여백이 있습니다.
까만 글씨를 행이라 하고 그 사이에 흰 여백을 행간이라 부릅니다.

성경 중 행이 많을까 행간이 많을까?
그것은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읽어야 할 것으로 기준을 삼는다면 당연히 까만 행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여지는 공간의 양으로 기준 삼아 본다면 행간이 더 많습니다.

보통 우리는 행은 보이지만 행간은 비어 있는 여백으로 보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여백으로 보일 뿐입니다.

행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면 여백은 성령의 감동입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행이 많이 보이면 율법적인 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여백이 많이 보인다면 자칫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씌여진 말씀에 집착하면 문자주의에 빠지기 쉽고
비어있는 공간에 집착하면 신비적 영지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행은 서양화와 같습니다.
빈 캔버스를 최대한 채워 화가의 사상이나 영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행간은 동양화와 같습니다.
빈 화선지에 최대한 많은 여백을 주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화가의 사상이나 영감을 보게 합니다.
어떤 그림이 진짜 그림이냐고 묻는 다면 이것은 호불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득채워진 서양화가 진짜 그림이라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여백의 미를 살리는 동양화만이 진짜 그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화가들은 동양화도 서양화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해 줍니다.
즉 켄버스를 가득 채운 서양화도 그림이고 여백을 최대한 살려 그린 동양화도 그림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화가들은 정작 그림의 호불호로 편을 가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도리어 자신의 호불호를 따라 편을 가르고 파를 만들고 주의를 말합니다.

성경은 행과 행간을 통하여 성경 전체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 있음인데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행과 행간을 두고 호불호를 통하여 행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하고 행간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씌여진 행으로 된 말씀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아직 빈 공간처럼 보이는 행간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성령의 감동도 하나님의 말씀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며 무엇인 진짜 성령의 감동하심일까?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면 행이라 할 것이며 성령의 감동이라 하면 행간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행과 행간이 함께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온전해 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행의 말씀은 눈에 보이니 읽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행간의 말씀은 보이지 아니함으로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행의 말씀이 눈에 보인다고 읽기는 쉽다 할찌라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긴 어렵고
행간의 말씀이 눈에 보이지 아니함으로 읽기는 어렵더라도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는 더 쉽다 할 것입니다.

결국 행이든 행간이든 성령의 감동이 없다면 행을 읽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며
행간을 보아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무엇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따르지 않고 다른 그 누군가의 글과 가르침으로 행을 읽어 내려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령의 감동을 따르지 않고 다른 그 누군가의 글과 가르침을 통해 행간을 읽어 내려 합니다.

나름데로 의미가 아주 없다 할수는 없겠지만 성령의 감동이 아닌 사람의 뜻을 좇아 읽는 것이기에 진정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했다 할 지라도
현재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죽어 있는 의문을 통해 읽어 내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시공간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과거에 활동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뿐이니 곧 죽은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세상의 가르침과 글을 통해 읽는 행이라면 그것은 들은 것을 행하게 될 뿐 입니다.

행간을 통해 사람의 글과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역시 성령의 감동을 따라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글과 가르침을 따라 상상해 놓은 행간의 말씀이니 그 또한 나름 의미는 있는 것이라 할 것이나 그 역시 현재의 시공간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과거의 말씀으로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이미 죽은 말씀이라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없이 세상의 가르침과 글을 통해 상상하는 행간이라면 그것도 들은 것을 행하게 될 뿐입니다.

성령의 감동은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행에게도 생기를 불어 넣고 행간에도 생기를 불어 넣습니다.

그러므로 생기가 가득한 행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또 그와 같이 생기로 가득한 행간의 말씀 또한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생명을 살린다는 것은 우선 자기 자신의 생명을 살림이며
자기 자신의 생명의 살림은 또 다른 성령의 감동의 공명을 통해 또 다른 누구가를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설교이어야 합니다.

먼저 설교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 가운데 생기를 얻어 살아나고 그 생기가 차고 넘쳐 다른 이들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율법사와 대제사장의 생명을 살리지 못함과 같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타나는 설교자의 영성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행간의 말씀에 생기를 불어 넣음에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또 이것이 설교이어야 합니다.
이 또한 자기 자신을 살리며 그 성령 감동의 공명을 통해 다른 이들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은 아닙니다.

사도들의 설교가 이방인들에겐 자신들의 관습을 어지럽히고 받아 들일 수 없는 괴변처럼 보여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행의 말씀과 행간의 말씀, 이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성령의 감동 안에서 하나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하나가 되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중 하나는 취하고 하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둘을 다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취한다 하니 사람이 구하고 찾음으로 얻을 수 있는 그 어떠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겠으나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령의 감동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되어지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의 선물을 통해 진정 세상 그 누구의 글이나 가르침에서 배우지 않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하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해 행과 행간을 읽어 내려간다면 그것은 세상의 그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들은 것이 아니라 본 것이 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해 본 것은 서로 간의 공명이 있습니다.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사도들의 공명이며 이 공명은 세상으로 부터 들은 것을 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통해 본 것을 말함이었습니다.
그것이 환상이며 그것이 꿈이며 계시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은 행간을 보게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행간은 또한 행을 보게 합니다.
행과 행간은 서로 흑과 백의 흑백논리처럼 보일진 모르지만 결국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이루고 있음입니다.

행은 행간의 봄에 있어서 더욱 분명하게 하고 행간은 행의 봄에 있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즉 행은 행간이 있기 때문에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며 행간은 행이 있기 때문에 흐트려지지 않고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성령의 감동 안에서 행과 행간은 하나입니다.

주님은 들은 것을 말하지 않고 본 것만을 말하신다 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요8:38)

성령, 주님은 그 자체가 이미 세상이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거룩한 영이라 하셨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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