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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교회 존치 서명=경기연회원들에게 알립니다.
민관기
- 2624
- 2015-04-13 20:05:14
훌륭한 연회로 기록되는 연회이길 소망해봅니다.
10 여년 전부터인가?
동대문교회를 두고 무성한 소문에 안좋은 구설에 여기로 저기로 떠나느니 마니 궁금도하고 실망도 하셧을겁니다.
130 여년의 교회. 중세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
근대개화 독립운동의 기지엿으며 민족에게 한없는 사랑의 의술을 베푼곳이고 동학의 지도자 전봉준조차도 인정한 교회이며 병원입니다.
여기에서 알아야할 중대한 역사적 비밀이 잇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19세기는 민란의 세기라합니다. 해마다 방방곡곡에서 민란이 그친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정치가 썩었엇다는 말이되겟죠. 보통 동학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맞서 일어난것이고 또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웟으니 이를 반제 반봉건 혁명이라 합니다.
이 말은 진실로 진실일까요?
3/2는 맞는 말일겁니다.
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이 피체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한 말중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합니다.
"나의 오판으로 큰 실수를 햇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대장부가 되어 세상을 바꾸겟다고 나섯다가 오판이니 실수라니??
실상은 이러합니다.
영정조기의 문화적 융성기는 순헌철종 시대로 들어오며 끝이나고 고종집권 전까지 거의 70 여년은 나라 망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국운도 쇠해가고 국력도 쇠해졋습니다. 바로 그 때 민족의 선지적 선각자들인 선빛들은 나라의 국운을 바꿀 준비를 하게되는데 그것은 실학자들 양명학자, 북학파, 개화파라고 부르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주로 근기지방을 기반으로 활동햇고 향후 감리교회의 주 선교무대입니다.
각설.
물론, 정치 썩엇습니다. 하여, 왜는 프락치를 동학에 침투시킵니다. 정부가 썩엇다. 엎어야해. 맞아. 썩엇어. 가만둘 수 없어.
*. 조선내에서 제일 반정부적인 성향을 보이는 집단이 동학임을 알아챈 왜.
조무래기 조병갑 땜에 반봉건 혁명이 일어낫을까요? 썩은 정치 엎으라고 선동한건 왜입니다. 왜일까요? 조선을 먹긴해야겟는데 아직은 조선의 국력이 완전히 꽝은 아니다. 그렇습니다.
동학혁명은 왜(조선어를 잘하는 왜인 프락치=간첩)의 선동과 사주 그리고 이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난리를 일으킨걸 녹두는 자신이 체포되고 나서야 깨달앗던겁니다.
120년전 상황을 설명하려니 말이 길어집니다. 용서하시고 조금 더 갑니다.
전녹두는 1차 봉기때는 탐관오리 숙청에 매진합니다. 정부 전복의 수준은 아니엇습니다.
2차 봉기에선 척양척왜의 기치를 듭니다. 그러나, 정작 실제 봉기에선 척양은 뺍니다. 양이들과 왜놈들은 다르다는걸 확인한 겁니다.
사실 동학은 전국적 종교입니다. 나라의 어디에나 동학도들이 잇엇고 이들은 교조의 신원운동을 결연히 벌일 정도로 열렬한 신자입니다.
당연히 전녹두의 정보원으로 활동합니다. 부산의 왜인지구 병원. 조선인 치료 거부. 한양, 평양, 원산 등의 양이병원 조선인 무료 민중치료.
이중에서 전녹두에겐 어떤 병원의 정보가 알려졋을까요? 당연히 상동병원과 동대문병원입니다. 모두 스크랜톤 목사의 사역지임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전녹두는 척양은 잘못된 판단이엇군하며 척왜의 깃발만 드는 것이죠.
그런데, 왜 이것이 오판인가?
결국 조선의 국력을 결정적으로 갉아먹고 국론의 분열을 결정적으로 가져왓으며 혁명의 본거지 호남일대 민족 아비들의 빛을 거두는 결론이 낫다는 겁니다. 하니, 당연 31 혁명시 미약한 운동이 일어날 밖에. 이미 역량 소진.
결론, 동학혁명은 국력쇠잔계략에 넘어간 전녹두의 오판 혁명이니 이는 혁명이 아니고 난이다.
1. 정부 썩었다.
2. 외세중 왜를 물리쳐야 하는데 왜의 계략에 말렷다. 나라 말아먹은 종교가 동학이다. 세계 종교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무엇을 반대하여 생긴 종교명이 동학이다. 서학.
3. 감리교회의 의료선교의 공이 돋보인다.
4. 감리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나라의 국력을 갉아먹는 선교행위를 하지 않앗다. 이것이 동학과 장로교와 대비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사실 이 말에는 100페이지 정도의 수사가 필요하다)
5. 국력을 갉어막진 않앗지만 국체를 바꾸는 준비는 이미 동학난때부터 햇다. 공화제와 군주제의 차이 독립신문에 게제. 1907년 반임금 군주 공화제 채택 비밀결사 신민회 강령. 31혁명후 임정 수립시의 성원들이 신민회의 구성원이기에 공화제에 대한 반대 없음(단, 구 황실은 우대)
*. 이것의 씨앗이 전덕기 목사와 현순 목사이다.
*. 임금이 엄연히 생존하던 시기 황제의 명으로 헤이그 특사 사명 감당하던 중의 감리교회는 새정부 수립시 공화제 채택이라는 무시무시한 국체 국법위반 전략가들의 집단이다.
하여, 각설하고 경기연회시 그 동대문 교회를 그 자리에 존치하기 위한 서명을 합니다.
하고, 연회원만 서명 아닌 연회원들의 교회 교인들의 서명도 받아 지정된 장소로 우편 발송해 주시길 원합니다.
서명용지는 현장에서 드릴 수도 잇고 메일로도 발송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