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그너와 니이체의 결별에서 얻을 교훈

이재신
  • 3258
  • 2015-04-30 02:32:26
봐그너와 니이체의 결별에서 얻을 교훈

봐그너는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니이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로 불린다.
둘의 결별은 봐그너가 만든 파시팔(Parsifal)이란 작품에 기독교 신앙이 지나치게 스며들어 있다고 하는 니이체의 거부감때문이었다고 한다.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였던 죄렌 키에르케고르와는 달리 니이체는 철저하게 신을 거부한 무신론자였다.
니이체는 진리란 없으며 신도 없고, 해서 우리가 신을 향해서 하는 모든 행위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며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맹공했다.
그는 박사 학위가 없었음에도 바젤 대학에서 고전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고작 35세에 정신병으로 그만두어야 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다 루터교 목사였던 그에게 이토록 반 기독교적인 성향을 갖도록 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와 할머니에 의해 양육되면서 유년의 신앙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으며 성장하면서는 역사적인 예수의 문제를 다룬 스트라우스의 저작들에서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이 항상 변화한다는 개념에 자극받았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사랑은 약한 자와 범죄자에 대한 호의이며 기독교의 이타심이란 약한 자의 집단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론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의 말 대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꾸로 비진리(기독교 교리를 포함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허무주의를 말하면서도 초인 사상을 말하니 그 자체로도 이미 허무주의의 일관성이나 논리가 무너지게 마련이다.
영원회귀 사상도 나중에 추가한 옹색함은 그렇다 치고 정작 본인은 그런 낭만적인 여유는 없어 보이니 모순일 수 있지 않는가?
다만 우리가 주의를 기율여야 할 이유가 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신앙은 반드시 넘어서야 할 숙제인 것이다.
되지도 않는 저속한 논리나 탐욕적인 감정을 신앙과 동일시하여 어리석은 말을 전파하는 망발은 절대로 좌시해선 안 될 일이다.
니이체가 기독교를 두고 “가장 치명적이고 유혹적인 거짓말”이라고 퍼부었던 저주와 비판에 학문적 논리나 이념의 일관성을 뛰어넘는 실천의 위대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어느 시대에나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이었음을 감안할 때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었을 터인데, 바로 삶의 현장에서 전파되는 공감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기독교 교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과 행위로, 누가 봐도 지고지순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함부로 신앙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나부터 강한 거부감이 들게 한다. (나 또한 남들에게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서)
오직 현실안주와 타협일색으로 사는 자들!
이익에 반하는 자신의 주관은 철저하게 내일로 미룬 채 오늘의 탐욕에만 몰두하다가 그것이 그만 자기 정체성으로 굳어진 사람들!
자기 신앙도 없이 성경을 인용만 하여 혹세무민하는 기술자들!
주관도 없이 묻어가기에만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는 눈치꾼들!
두 사람l이 인간관계까지 끝내야 했던 과정 속에 우리가 얻어야 하는 교훈이 숨어 있지 않을까?
때론 속 좁은 아집이나 독선으로 오해받을지라도 자기 일관성을 최소한으로라도 유지하려고 하는 자세같은 것~!?
누가 옳은가 하는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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