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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로 감독님의 출소까지 홍보해야 하는 교회의 비애
이재신
- 2997
- 2015-05-02 22:15:10
며칠 전에 한 문자를 받았다.
어느 원로 감독님께서 집행유예로 출소하셨다고~기도해 주신 덕이라고~.
문자를 받고서 조금 당황했다.
사실은 그렇게 자세히는 몰랐는데 액수까지 죄목까지 자세히 기록해서 보내주신 것이다.
어느정도 이해도 되는 것은 일말의 오해를 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세상엔 우호적인 사람들만 있는것은 아니다.
때론 아주 악의적인 생각으로 남의 약점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음을 ~
차라리 은인자중하여 조용히 지내다 보면 세간의 오해 정도는 정리되게 마련이다.
물론 참으로 잘 된 일이다.
무죄는 아닐망정 집행유예로 라도 출소하게 되셨으니...
더 오래 거기?에 묶여있지 않고 나오셨으니 노구에 속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탈무드에 보면 참지혜와 잔꾀를 이렇게 구분한다.
빠지면 안 되는 구렁텅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겨우 빠져 나온 것을 두고는 잔꾀라 하나 참지혜는 그 구렁텅이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라고.
오늘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홍보거리가 없어서 겨우 하는 것이 세상의 따가운 시선이나 비난 또는 비판에 대해서 “우리는 이런저런 잘못을 하지 않았노라”고, “우리의 잘못은 아주 조금 있다”고 하는 옹색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정도의 모습이라면 어찌 세상을 선도하는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할 것이겠는가?
바울도 옥중생활을 꽤 많이 한 것을 안다.
그러나 바울의 옥중 생활은 그야말로 역설 그 자체였다.
그 분은 오직 복음을 전하다가 그 곳에 가게 되었으며 거기서도 그리 궁색한 태도와는 전혀 다른 의연함과 여유와 기쁨과 은혜를 잃지 않았다.
찬송하고 기도하여 성령의 역사로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렸을 때도 감사하여 나간 것이 아니라 자결하려고 하는 간수를 위해 “나 아직 여기 있다”고, “도망가지 않았다”고 하여 간수의 목숨을 건져냈다.
뿐만 아니라 간수의 집에 초대받아 그 온 하속들까지 세례를 주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영적으로도 생명을 주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아싸~! 내가 기도했더니 기적이 일어났구나” 하고 홍보했을 일을 두고도 오히려 나가지 않고 또 잡힐지도 모를 상황에 “내가 여기 있다”고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어찌 생각해야 할는지~!
뿐만인가?
바울도 고후 11장에 자기 자랑(홍보)을 늘어놓는다.
내용은 어떤가?
복음 전하기 위해 배고프고 주리고 매맞고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고 강과 산의 위험을 만나기를 수없이 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오늘 목사들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교회 큰 것, 돈 많이 받아 부자 된 것, 좋은 차를 타는 것, 좋은 집에 사는 것, 부동산 많이 가진 것...
기가 막힐 노릇을 보고 살아야 하는 어떤 사람들은 슬프다.
십자가의 증인이 아니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일이다.
물론 나도 결코 예외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