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의 문제 (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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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5-06 03:51:59
그 이유에 대해(원문의 29절 첫 부분에 가르, γὰρ가 있다.)서, 바울은 【11: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은사(카리스마타, χαρίσματα: 5:15의 주석을 보라.)와 ‘부르심’](클레시스, κλήσις: 1:1의 주석을 보라.)에 대해 (1) 두 낱말을 분리하여 [은사]는 유대인에 대한 것이고, [부르심]은 이방인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 설(J. A. Bengel, J. Wesley), (2) 같은 사실로 보아 ‘부르심을 입은 은사’라고 하는 설,① (3) 두 낱말을 분리하여 이해하되 둘 다 유대인에 대한 것이라고 하는 설② 등이 있다.
(2)설을 주장하는 학자들 중에 케제만(E. Ksemann)은 “은사 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선교의 요구와 더불어 등장한다. 하나님은 소명 없이 은사를 내리지 않고, 또 은사 없이 소명을 내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넓은 의미에서는 타당한 주장이지만, 문맥상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여기의 [은사]들은 구체적으로 9:4-5에 열거된 이스라엘 민족의 특권들을 가리키고, [부르심]은 복음을 통한 메시아 왕국에서의 초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3)설이 가장 적합하다.
바르트(K. Barth)는 선택의 거절이란 하나님의 은사들과 부르심을 파기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는 아메타멜레타(ἀμεταμέλητα)로서 ‘후회하지 않는다’(고후 7:10), ‘후회할 수 없다’, ‘취소할 수 없다’, ‘변경하지 않는다’ 등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이나 역사에 대해 후회하여 취소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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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나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을 밝혔음.
1) J. Calvin, E. F. Harrison, W. M. Greathouse, E. Ksemann, 泉田 昭.
2) H. Alford, A. Clarke, J. Knox, W. T. Dayton, A. B. Mickelsen, W. Sanday & A. C. Headlam, A. Barnes, J. Barmby, K. Barth, C. R. Erdman, 黑崎幸吉, 전경연, 이상근, 조선출, 김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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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결정적 이유는 그분의 사랑과 전지전능 그리고 성실성 때문이다(롬 3:3).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조상 적부터 받은 언약대로 결국에는 반드시 복음을 믿어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 되고야 말 것이다.
이제 바울은 구원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30】[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과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했던 이방인들이, 이제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τῇ τούτων ἀπειθείᾳ: 개역 한글판 성경에는 적절하게 번역되지 못했다.) [긍휼을 입]어 믿고 구원받았다(엡 2:8). [이와 같이] 복음을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도 구원받은 이방인들에 대해 시기심이 생겨서 믿고 구원받게 되는 [긍휼을 얻게 하]시리라는 것이다.
바울은 좁게는 11:30-31, 넓게는 11장에 대한 결론으로,【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 대해 (1) 택함받은 모든 사람이라는 설(Olshausen),③ (2)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유대인 전부라는 설(Zahn),④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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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n 黑崎幸吉.
4) 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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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이방인을 합친 모든 사람 곧 인류라는 설⑤ 등이 있다.
문맥상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인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인류를 의미하는 것이지, 단 하나의 예외도 없는 개개인으로서의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의 [가두어 두심]은 쉬네클레이센(συνέκλεισεν)으로서 ‘함께 가두어 두셨다’, ‘함께 넘겨주셨다’ 등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복음을 믿지 못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다(갈 3:22). 또한, 갇혔기 때문에 인간의 죄와 불신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도 아니다”(A. Barnes). “하나님의 행위는 인간으로 하여금 불신앙 가운데 남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런 상태에 있다고 선언하신 것이다”(J. Calvin, A. Barnes).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불순종하는 인간들을 불순종하는 대로 내버려두신 것이다(참조: 롬 1:24, 28).
그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다. 이 말은 모든 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구원하신다(만인 구원설: De Wette, Farrar)⑥는 뜻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 웨슬리(J. Wesley)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반역의 대가이다. 애당초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반역을 감수하셨으며, 아브라함의 가족을 자신의 자손으로 삼으셨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버리셨으며, 반면에 신앙적인 이방인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런데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질투심을 일으켜 결국 신앙으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신비스런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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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J. Calvin, “Vincent, Denny”(in 이상근), “Godet, H. A. W. Meyer”(in 黑崎幸吉), A. Barnes, W. M. Greathouse, J. Wesley, R. C. H. Lenski, J. A. Bengel, “Muller”(in E. Ksemann), C. R. Erdman, J. Barmby, E. Best, W. T. Dayton, M. Henry, W. M. Kroll, A. B. Mickelsen, W. Sanday & A. C. Headlam, 黑崎幸吉, 전경연, 이상근, 박윤선.
6) in 이상근.

# 출처: 최세창, 로마서(서울: 글벗사, 2000년 2판 1쇄), pp.433-436.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3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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