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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이의 회고록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본격 한국진출기-
이효성
- 2530
- 2015-07-15 00:11:34
* 이 글은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 8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근본이의 회고록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의 본격 한국진출기-
이효성
안녕? 난 근본이라고 해. 태어난 곳은 미국, 종교는 당연히 개신교야. 사람들은 나를 보며 개신교 근본주의, 반공주의, 우익세력이라고 하지. 요즘 뭣도 모르고 떠드는 애들은 나를 개독이라고도 부르더라. 하지만 상관없어. 천하의 근본이가 근본도 없는 빨갱이들에게 흔들린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어? 너희 이라크 전쟁 유발자 부시알지? 걔 전쟁 한 것도, 그러고서 재선에 성공한 것도 다 내가 도와줘서 가능했던 거야.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는 빨갱이들, 예~쑤 이름으로 싹쓸어버릴까보다!
아시다시피 난 국제적인 사람이야. 세계 이곳저곳의 우파세력들, 군부독재 세력들은 나와 손잡으려고 안달이지.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권력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 해 주거든. 내 유행어가 하나 있는데, 너희도 많이 들어봤을 거야. 전쟁하기 전에 쓰면 딱 좋아. “신의 이름으로!”
근본주의의 태동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내 살아온 얘기를 해줄게. 내가 얼마나 근본 있는 사람인지, 코리아에 얼마나 혁혁한 공을 세웠는지 알게 되면 너희들도 곧 나와 함께하리라 확신한다. 난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태어났어. 너희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이라고 알지? 우리 땅 미국은 18세기부터 100년간 잘 나갔어. 그러나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남북전쟁 나고 계급갈등 생기고 범죄도 늘고, 유럽 이민자들이 들어와 자유분방하게 행동해서 나를 만든 정통 미국 백인 보수 개신교 윤리주의자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독일에서 성서비평학을 공부해 들어온 신학자들이 미국 대학 강단을 차지하면서 위기의식은 더욱 커졌어. 아니 어디 감히 성서를 비평해? 말이 되냐고. 게다가 1859년에는 찰스다윈이 마귀책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출간했잖아?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안팎에서 위협하니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어? 조상님들은 재빨리 프린스턴신학교를 통해 ‘성서무오설’ 교리를 완성했어. 성서무오설은 성경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절대 오류 없는 문자라는 거야. 비평할 것도, 해석할 것도 없지. 쓰인 게 진리니까 쓰인 대로 믿어야해. 남녀차별도 전쟁 정당화도, 성소수자 차별도 정당화되지. 너 혹시 개신교인이니? 아니라면 얼른 믿고, 믿고 있다면 해석같은 거 하지말고 무작정 믿기를! 한글자라도 해석하면 너도 빨갱이야!
얘기를 계속하지. 성서무오설과 더불어 영국의 존 달비(John N. Darbi)를 통해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미국에 퍼졌어.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이 세대가 너무 악해서 다 끝났다고 보는거야. 비관적 역사관이지. 이게 심해지면 예수님이 어느 날 어느 때에 재림한다는 휴거로도 나타나. 암튼 미국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위기의식 속에서 나를 탄생시켰어. 나는 존 달비의 제자인 스타 목사 무디(D.L.Moody)를 통해 미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어. 이후 1815년 성서예언대회, 1910~1915년까지 발행된 학술잡지 『근본적인 것들』(Fundamentals), '무디성서학원', ‘달라스신학교’ 등 50여개의 신학교들과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확산되었지. 교단도 세워졌어. ‘미국 북장로교회’, 프린스턴에서 근본주의자들이 나와 세운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정통장로교회’, ‘침례교성서연합’, ‘근본주의침례교단’, ‘미국침례교협회’, ‘그레이스형제단’ 등등…….
아, 그런데 말이지. 이렇게 잘나가던 나에게도 아픔이 하나 있어. 1925년에 벌어진 ‘스코프스 재판’이야. 창조론만 가르쳐야 하는 테네시 주에서 존 스코프스(John Scopes)라는 선생이 감히 진화론을 가르쳤지 뭐야? 당장 법정에 세웠지. 그런데 오히려 개망신을 당했지 뭐야. 당분간 조용히 지냈어. 물론 얼마 안 갔지만…….
한국, 한국으로
한국 사람들 앞에 두고 미국생활만 얘기하니까 시간이 좀 아깝네. 한국에서도 난 할 얘기 많은데 말이야. 뭐 너희들도 알겠지만 난 한국을 꽉 잡고 있어.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내 손길을 거쳤다고 볼 수 있지. 지금부터는 나 근본이의 본격 한국진출기, 성공신화를 공개하지. 요즘 나처럼 잘나가기가 쉽지 않으니 성공하고 싶은 애들은 하나하나 수첩에 적으면서 듣기를.
19세기 말 조선 항구에 외국 배들이 슬금슬금 들어왔어. 1875년 운요호 사건을 의도적으로 일으킨 일본인들은 강화도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계속 침입하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어. 미국도 1866년 군함 제너럴셔먼호로 통상을 요구하고, 1871년 신미양요를 일으키면서 조선에 개입하다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게끔 적극 도왔지. 외세의 발바닥이 조선땅을 밟을 때 미국 선교사들도 그 흐름을 타고 함께 들어왔어. 대표적인 선교사는 1885년 들어온 장로교인 언더우드, 감리교인 아펜젤러야. 그런데 이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아까 말했던 목사 무디의 영향, 또한 나의 영향을 받았지. 그래서 한국의 신학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근본주의적으로 출발했어. 그렇다고 내가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야. 근본주의자들 중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일본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어. 물론 그게 민족적 저항정신에 입각해서 한 행동인가 아니면 단지 우상숭배 거부 때문인가에 대한 판단은 남겨져 있겠지만. 오히려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잘 통제하기 위해 정부와 민중 사이에 있던 선교사들을 잘 구슬린 것, 그리고 좀 배웠다 하는 조선 개신교인들이 자기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해 친일적인 행동을 하고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 한몫 톡톡히 했지. 내가 신학적으로 개혁, 혁명 같은 걸 싫어하니까 자리보전하는데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겠어? 뭐? 박근혜처럼 삼자화법 쓰면서 발 빼지 말라고? 나한테 딴지 걸면 빨갱이로 찍힌다는 거 알고 있을텐데~.
나는 193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교회의 주류신앙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하였지. 한국 교회는 나를 무비판적으로 엄청나게 번역해댔어. 이 시기에 장로교와 성결교는 성경무오류를 천명했지. 한편으로는 진보적 신학의 입장을 탄압했어. 하나만 예로 들면, 1934년 ‘여권문제사건’이 있어. 장로교 함경남도노회 22명의 여성이 장로가 되게 해달라고 장로교단에 청원하고, 장로교 김춘배목사가 이를 도왔어. 그런데 장로교단은 김목사가 성경에 반하는 얘기를 한다고 제명하려고 했지. 결국 김목사가 한발 물러나서 제명은 안 되었지만 말이야. 여자는 조용히 하라는 문자가 성경에 써 있는데 어디 감히 여자가 장로가 된다는 거야! 이게 바로 성경무오설의 힘이지. 어, 잠깐 해, 해석하지마! 토 달면 알지?
반공주의와의 만남
승승장구하던 내게 좋은 친구가 찾아왔어. 바로 ‘반공’이야. 사실 한국 개신교는 1920년대부터 공산주의와 갈등이 있었지. 1925년에 창설된 조선공산당과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공격했어. 예수도 모르는 유물론자들! 곧이어 소련은 북한을 점령하고 김일성을 앞세워 북에 있는 개신교인들을 못살게 굴었어. 당시 개신교인들 중에는 지주들이 많았지. 그런데 토지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한다지 뭐야? 독한 빨갱이들. 일단 후퇴다! 한국 개신교인 중 7~80%가 서북(평안도와 황해도)에 살았었는데, 남한으로 다 내려왔어. 선민의식, 그러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생각을 가진 내 신분 상 공산당 놈들은 성스러운 전쟁으로 없애버려야 할 마귀세력이 된 거지. 제주 4.3사건에 투입된 서북청년회 알지? 땅 뺏기고 고향에서 쫓겨나면 이렇게 무서워지는 거야!
내 여기서 한마디만 하지. 하나님 안 믿으면 지옥 가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공산주의 유물론자들을 가만두었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 가면 어쩌려고? 게다가 내 돈 내 땅 빼앗아간 놈들인데 말이야.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존중하라고! 또 남녀차별, 가부장제, 다 성경에 써 있는데 그거 아니라고? 그거 거부하면 하나님이 틀린거라는 건데, 해석 어쩌구 들먹이면서 하나님을 부정하겠다는거야? 천하의 대한민국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형님국가 미국의 도움으로 경제발전해서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는데, 미국을 부정하는 놈들은 또 뭐고! 미국의 원조는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했을 때 하나님이 내려주셨던 양식 만나와 메추라기임을 정녕 모른단 말이오! 공산당은 마귀니께 반공은 퇴마여. 마귀를 없애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여. 정신 똑바로들 차리라고!
내가 잠시 흥분했군. 다시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지. 공산주의에 극도의 반감을 갖게 된 근본주의자들은 반공을 외쳐야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정치권력과 손을 잡았어. 군부독재를 묵인하고, 오히려 조장했지. 빨갱이를 소탕하는 북진통일의 위업을 누가 이룰 수 있겠어?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재산 잘 지켜주고 30배, 60배, 100배로 불려준다는데 누가 거부하겠냐고.
군부세력에 협력한 이들이 많지만 한명만 예를 들지. 국가 조찬기도회 알지? 돈 많고 유명한 개신교 목사들과 정치권 주요인사들이 참여하는 그 기도회. 그 기도회를 있게 한 사람이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김준곤목사야. 김목사는 미국 풀러신학교 수학 중 국제 CCC 총재 빌 브라이트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CCC를 전파하고 총재가 되지. 한국전쟁 당시 아내가 북한 공산군에게 살해당하고 자신은 스물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김목사는 대표적인 반공 기독교인이야. 김목사가 잘나가자 박정희가 그를 찾아와서는 대학생들의 관심을 북한 공산군에게 돌리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이때 김준곤은 협력의 대가로 서울 중심부에 CCC를 지을 수 있는 부지를 달라고 하고, 박정희는 전(前) 러시아대사관 부지를 주어 거기에 CCC전국본부가 자리 잡게 돼. 후에 김준곤은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고려할 때, ‘삼선개헌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어. 이 일 뿐이겠어?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교회 등 한국사회 대부분의 개신교단과 종교지도자들이 군부독재에 협력했어.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금까지 그 교세들을 유지해 나가겠어? 나를 좋아하는 교인은 반공을 만나 친정부, 친자본적인 성격까지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지.
뜬금없는 얘기지만 원래 나는 성격상 정치에 무관심해. 상당히 비관적인 미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걸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미국에서도, 그리고 한국에서도 나는 반공을 해야 하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어. 뭐? 나조차도 반공을 핑계 삼아 기득권 유지하려는 것 같다고? 아니, 이미 더한 기득권이라고? 나한테는 기득권도, 무기도 다하나님이 주신거야!
1989년 12월 28일, 나를 좋아하는 먹사, 아 아니 목사들이 모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창립했어. 이후 지금까지 교회 보수화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지. 여당애들을 자꾸 밀어주다 보니 나도 이제는 좀 직접 정치를 하고 싶어서 2004년 한국기독당, 2007년 기독민주당, 이후 기독사랑실천당으로 총선에 참여하기도 했어(결과는 묻지 마라). 아, 2004년 총선 이후에는 열린우리당에 반대하며 ‘뉴라이트운동’을 벌이고도 있지. 내 힘은 막강해. 대선에서 우리 소망교회 이명박 장로를 탄생시킨 거 다들 알지? 반공의 추억 박정희를 떠올리며 박근혜를 당선시킨 것도 나라고!
한국사회는 근본적으로 우익의 땅이야. 한국 전체 인구 중 개신교인이 2012년 기준 22.5%이고, 19대 국회의원 중 개신교인이 94명, 38%라는 말이지. 물론 모든 교인이 다 나 같진 않겠지만 말이야.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쭉 오른쪽으로 갈 것이며, 될수 있는데로 우회로를 선택할거야. 난 하나님이 택하신 자랑스런 우익이니까. 노동당 너희들은 당도 조그맣고 돈도 별로 없으면서 왜 자꾸 험난한 왼쪽길로 가려고 하니? 너희들 자꾸 깃발 펄럭이고 촛불 켜고 공산당같은 공약 내걸면서 선거 나오려고 하는데...
조심하길! 그러다 나한테 빨갱이취급당하는 수가 있어!
[참고자료]
배덕만. “한국 개신교회와 근본주의.” 『韓國宗敎硏究』 제 10호 (2008) : 1-23.
김성건. “한국개신교회의 정치참여 : 사회학적 비판.” 『敎會와 神學』 제 58호 (2004) : 26-32.
최택진. “한국 개신교회의 정치이데올로기와 보수주의적 성격 연구.” 서강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서울 :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