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금지법, 어느 선까지 적용할 것인가?

주병환
  • 3846
  • 2016-01-05 23:18:35
세습금지법, 어느 선까지 적용할 것인가?

우리 한국감리교회에서는 <목사인 아버지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은퇴하고 그 자리를 아들인 목사가 승계하여 담임목사가 되어 목회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이 결정을 두고 우리 한국사회는 대체적으로 환영했다.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할 법이 세워졌으니, 이제 그 법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 이 법을 어느 선까지 적용할 것인가?> 공개적으로 질문한다.



사례1 :
어느 지방에서 여러 해 전에 있었던 관련사례를 소개한다.
그 지방에 한 교회가 개척되었다. 아마도 50후반의 나이에 한 목사님이 개척한 걸로 아는데, 목사님이 지병이 있으셔서, 조심하셨지만, 60대 중반전후쯤에 그만 지병으로 소천하셨다.
교회는 여전히 미자립개척교회 상태였고, 담임목사님 소천 후에 새로 담임목사님을 초빙하고 그럴 형편이 못되었다, 해서 교회는 신학교를 졸업한 아들 전도사를 담임자로 세우기를 원했다. 아들전도사님이 동의만하면, 혼자된 (노)사모님의 거처문제로 교회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인원이 얼마 안 되지만) 교인들도 아들전도사님과 함께 교회를 다시 세워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 교회는 지방감리사께 인사구역회를 요청했고, 지방 감리사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들은 지방 내 모든 목사님들은 아무도 그 인사구역회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아무도 그 교회의 인사구역회 요청시점이 세습금지법 결의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에 대해서도 계산해 보는 이가 없었다. 모두들 그 교회의 결의를 흔쾌히 수용했고, 그 아들전도사의 목회사역을 격려했다.
이 사례에 대한 내 개인의 평가 : 교회와 지방이 바람직한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한다.


사례 2 :
역시 어느 지방의 사례이다.
지금 현재 60대중반의 목사님이 담임하고 계신 교회인데, 근 30년 가까이 성실하게 목회해오고 계신다. 교회는 자립교회이나 작은 (규모의) 교회이다. 중간에 예배당을 건축하셨고, 사택은 별도로 있지 않고, 2층으로 지은 예배당의 1층 뒤쪽을 사택으로 꾸며 사용하고 계신다. 자제들도 신앙이 반듯하여 아버지의 대를 이어 신학공부를 하고 아마 지금 수련목을 하고 있거나 최근에 마쳤는지, 아무튼 그런 상황으로 알고 있다.

그 목사님은 (소위 말하는 성골이나 진골출신이 못되어) 그냥 시골지역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개척과 다름없는 목회를 시작해서 그냥 한 교회에서만 목회하셨는데, 그 교회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다. 당연히 건축과정에서도 사재를 털어넣었고, 이제 60대 중반이 되었는데, 노후대책이란 당연히 없는 걸로 안다. 교회는... (지금 현재 감리교회의 기준으로) 미자립교회는 아니나, 그 목사님 은퇴하시면 뭘 하나 제대로 해드릴 형편이 못된다. 교회를 떠나가서 사실 전셋집을 장만해드리거나 노후생활비를 다달이 얼마라도 해드릴 처지가 못된다.
들리는 이야기는, 교회는 아들목사님이 담임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모양이다. 성장과정에서부터 지켜보았으니, 목회자로서의 자질은 이미 검증된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은퇴하시는 목사님 노후대책문제로 교회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데, 교단이 세습금지법을 제정하고 결의했다는 소식에 당사자들이 고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사례 3 :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어느 지방의 모 교회의 사연이다.
사례2와 비슷한 경우인데, 이 교회의 경우는 (지금 60대 후반에 들어선) 목사님의 자제분들 중에 신학 공부한 이는 없다. 그러므로 현 담임목사님의 은퇴 이후에는 다른 목사님을 모셔와야 하는데, 교회가 자립교회이긴 해도 건축부채도 제법 있고, 규모도 작아 재정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어서, 지난 30년 가까이 고생하며 헌신해온 목사님이 은퇴를 하셔도 교회가 뭘 해드릴 수가 없는 처지이다. 노후거처도 마련해드리지 못하고,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다달이 드리기도 어렵다.
교단이 뭐 은퇴하시는 목사님 대책 마련해주는 것도 없고 교회도 손을 쓸 형편이 못되니,
그 교회중직들이 이리저리 물어보면서 대책을 궁리하는듯한데, 결국은 부목사을 개척해서 독립시키려는 큰교회를 물색해서, 그 두 당사자교회들이 비공식적으로 의논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인적·물적 규모가 큰 교회야 담임목사님이 은퇴하면, 노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다 부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재정이 넉넉하니, 아예 돌아가실 때까지 살 수 있는 원로목사사택을 마련해드리고,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매달 생활비를 은퇴 전 담임목사사례비의 70% 정도 드리는 교회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처우가 미자립교회나 작은 자립교회에서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일뿐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일반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신앙하는 신앙공동체로 자리매김되는 한국감리교회 내에서도 (여타 교단도 비슷하리라) 계층양극화는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지는 듯해서 입안이 쓰다.

교단이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각자 알아서 하라는 현실 속에서 미자립교회나 작은 자립교회에서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이 당신들의 최후의 생존의 길로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된 아들에게 목회를 승계시키는 길을 생각하더라도 이제는 세습금지법이 제정되어서 그 길마저 막혔다고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결론 :
교단본부 역시 이 문제로 골머리 앓고 있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감리교회는... 교회의 중심과 같은 목사들의 목회의 시작과 끝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1) 목사들의 목회의 시작과 관련해서 이렇게 의견을 피력해 본다.

교단본부는 신학교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신학교도 별로 의지할 게 못되는 교단과의 관계 속에서 생존을 외치며 버티다보니, 실제로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인원보다 지나치게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해 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문제가 누적되어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 교단은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이라는 카드를 묘수라며 손에 쥐고 있는데... 내 판단에,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이라는 패는, 묘수가 아니라 향후 <한국감리교회라는 거대한 배를 집어삼키는 너울성파도>가 되어 우리 모두를 옥죄리라 본다. <목회자의 이중직 허용>이라는 패가 아니라, <신학교 입학정원의 신축성 있는 운용>이라는 패가 필요한 것이었다.


2) 다음으로, 목사들의 목회의 끝과 관련해서도 내 의견을 피력해 본다.

별다른 노후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대다수(? 상당수?) 은퇴목사님들을 길거리로 밀어낼 수는 없지 않는가? 교단본부에서도 손쓰지 못하고 개체교회에서도 최소한의 노후대책을 마련해줄 수 없는 형편이라면, 그러면서 세습금지법을 지켜나가려면...
은퇴하는 목사님들의 최소한의 노후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지금처럼) 음성적으로 각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지말고 양성화시켜야할 것이라 본다.
해당교회의 실상은 해당 지방회에서 잘 알 수 있는 법이니, 해당지방 실행부위원회와 연회본부가 연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상설기구를 만들어서 일을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시켜 <준>제도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작은 교회에서 은퇴하는 목사님들이 떳떳하게 은퇴할 수 있고, 교회세습에의 유혹을 끊어낼 수 있고, 해드리는 게 없는 교회공동체도 건강하게 새출발할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 큰 교회의 세습은
욕심 -은퇴하고서도 놓지 않으려는 노욕- 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작은 교회에서의 세습은
생존에의 본능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욕심보다는 본능이 다스리기가 더 쉬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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