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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사랑의 일환인 인간 사랑
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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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28 17:18:27
<요한일서 4:19-21>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 시작하는 말
사람이 망하는 것은 탐욕 때문이지, 사랑 때문이 아닙니다. 사랑보다 더 값진 것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같은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6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 중에 잉태되고 죄 아래 출생한 인간이 본래적인 이기심을 좇아 살아가므로 사랑을 하기는커녕, 사랑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방도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9을 보면,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일환인 인간 사랑
인간은 사랑의 근원이나 사랑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이며 방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마음껏 사랑하고도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또한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속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모든 인간이 누리고 있는 대자연과 천하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인간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자기 생명을 만든 인간도 없고, 우주 만물의 한 조각조차 만든 인간도 없지 않습니까? 그 놀라운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입니다. 로마서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안 믿는 죄와 갖가지 죄악과 사망과 멸망의 종노릇을 하며 살던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화목제물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류 곧 모든 죄인들에게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깨달은 바울 사도의 고백이 로마서 8:38 이하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붙잡지 않거나,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만들지 않은 만물을 누리는 사랑을 받고도 타락했던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받고 있으니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요한일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각종 헌금을 드리고, 그 헌금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교회 운영이나 복음 선교나 구제나 장학 사업 등에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고 질문했습니다. 알려고 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마태복음 22:37 이하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면, 인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마련입니다. 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속에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일환이라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4:20 이하를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사랑이 필요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안타까운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하며 사는 성도라면 같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형제는 물론, 하나님의 피조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2 이하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에 대한 주 예수님의 사랑이 나옵니다. 주 예수님이 앉으셔서 백성을 가르치실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고 한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으려고 시험한 질문입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죽이라고 하면 사랑을 가르치는 당신의 교훈에 모순되고, 용서하라고 하면 국법인 모세의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는 곤혹한 상황 속에 몰아넣는 교묘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고, 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묻기를 마지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셔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제삼의 답변을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이 한마디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떠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가운데 선 간음한 여자만 남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랑의 주 예수님과 간음한 여자와 간음죄가 남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라고 물으셨고, 여자는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사랑의 용서는 잘못이나 허물이나 죄를 일깨워 주고, 반복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잠언 10:12에는,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허물에 대해 참거나 묵과하거나, 덮거나, 치유하거나,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히브리서 12:6 이하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허물이나 죄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각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사정과 형편에 적합한 도움을 주거나, 유익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궁핍한 사람에게는 물질을 주는 것이고, 무지한 사람에게는 지식을 주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과 지식이나 권력 때문에 교만해지거나 망가지는 사람들에게는 지혜를 주는 것입니다. 때로 말 사랑은 어두운 인생을 밝은 인생으로 바꾸어 주기도 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사랑 중 사랑은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영생의 주 하나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들어 크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만 원어치의 사랑을 하면, 만 원어치의 결과만 초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들어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만 원이면, 아프리카의 어린이 한 명이 한 달 동안 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떤 위대한 일을 해 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보다 더 값진 것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같은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4 이하를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며 살다 보면, 사랑은 사랑 스스로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은혜와 복을 주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는 유익이 되는 사랑을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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