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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쟁변
최세창
- 1269
- 2024-09-14 03:50:54
<미가 6:1-8>
1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쟁변하여 작은 산으로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2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쟁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쟁변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3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 4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종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네 앞에 행하게 하였었느니라 5내 백성아 너는 모압 왕 발락의 꾀한 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추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6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 시작하는 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요 자연 법칙인데, 콩을 심고 팥이 안 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도 않고, 열매가 없다고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행의 씨를 뿌리고, 행복의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그렇게 해 주신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안 됐을 때,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가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주전 701년에 아시리아가 침략했을 때, 예루살렘을 제외한 전국이 짓밟히자 하나님을 탓하는 원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쟁변하시고 구하시는 것
이스라엘은 망한 원인이 우상 숭배와 죄악 때문이라는 것이 충분히 입증됐는데도, 뻔뻔스럽게 하나님께 대항하는 고집을 부렸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훈계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일어나서 판사에게 하는 것처럼, 산 앞에서 작은 산이 듣게끔 얼마나 잘났고 무얼 잘했는지 쟁변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원망하며 투덜거리는데 할 말이 무엇이 있느냐는 겁니다. 망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고집만 내세우는 선민 이스라엘보다 산과 작은 산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미가 예언자는 산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쟁변을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해 쟁변하시고 변론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영도자로 내세워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속량하신 사건을 상기시키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보내어 지도하게 하신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상 하나님의 최고 최대의 사랑과 권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 즉 갖가지 종교의 우상 신들과 바로까지 신으로 믿으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국강병의 애굽에는 속수무책의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종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모세를 통해 경고의 말씀을 주시곤 하셨는데, 그 때마다 바로 곧 왕이 거역했기 때문에 애굽은 각종 재앙을 당했습니다. 바로는 도중에 거짓말까지 하면서 거역하기도 했습니다. 도중에 부국강병인 애굽의 술객이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밝혀 주었고, 신하들이 애굽이 망한 줄 모르시냐고 진언도 했지만 바로는 번번이 거역했습니다.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을 그 모든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거국적인 재앙들을 면할 모든 기회도 날려 버렸습니다. 아홉 번에 걸친 다양한 하나님의 경고대로 그때그때 재앙을 겪었으면서도, 번번이 거역한 강퍅한 바로는 자신과 애굽에 전무후무한 대재앙을 내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출애굽기 11:5 이하를 보면,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로는 이 엄청난 재앙까지 당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내보냈습니다. 본래 강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거역할 때마다 하나님에 의해 더 강퍅해지곤 하던 바로는,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막강한 전차병과 기마병과 보병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추격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길을 내어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겁낼 줄 모르고, 감히 홍해의 갈라진 길로 추격해 들어간, 애굽의 막강한 전차병들과 기마병들과 보병은 모조리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겁낼 것을 겁낼 줄 모르는 만용과 탐욕은, 반드시 재앙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는 신축 아파트가 무너지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중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는 국민들에게 돈을 마구 퍼 주면서 어마어마한 부정축재를 했다가 자신과 가족을 망치고, 나라도 망친 권력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미가 예언자뿐만 아니라, 많은 예언자들이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을 가리켜, 마귀의 덫인 죄의 종이 되어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길을 가는 인류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구원 사건의 모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광야를 여행할 때에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켜 동행하셨고, 만나를 먹게 하셨으며,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시내는 그칠 줄 모르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 예언자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민수기 22장 이하를 보면, 모압 왕 발락이 발람 예언자에게 많은 뇌물을 주면서 심히 존귀케 해 줄 테니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청탁을 했습니다. 나귀를 타고 불의한 재물에 대한 탐욕의 길을 가던 발람은, 그 나귀를 통해 하나님의 질책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민수기 24:10입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민수기 25장에는, 싯딤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인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하고, 게다가 모압의 신전에서 먹고 마시며 우상들에게 절한 죄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한 책임이 발람에게 있다고 믿었고,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려고 들어갔을 때에 발람을 칼로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싯딤에서부터 약속의 땅인 가나안의 첫 지역인 길갈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추억하면, 하나님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언자가 된 발람의 배은망덕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 물욕을 좇는 행위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와 자기중심의 지도의 비참한 결과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상기시킨 두 번째 사건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또 계속 알게 모르게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면서 배은망덕하며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와 자기중심의 언행을 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유다서 1:4에는,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의의 진노를 상기시킨 미가 예언자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번제물인 일 년 된 송아지도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제물들도 아닙니다. 물론, 많은 헌물도 아니고, 많은 헌금도 아닙니다. 자기 허물을 위하여 이교도들처럼, 맏아들이나 자식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끔찍한 짓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이 다르기도 하고, 상반되기도 하는 인간의 도덕적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에게 보이신 선한 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뜻과 기쁨인 공의를 행하며, 인간을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공의와 사랑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다르거나 상반되는 인간의 공의와 사랑이 아니라, 선악의 제재를 공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품성인 공의이고,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거짓말과 음해와 가짜 뉴스와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동성 간이나 이성 간의 음란한 합성 사진과 음란한 합성 동영상으로 돈벌이를 하거나, 권력을 쥐는 죄악을 범하지 않습니까? 어린 학생들까지 별 죄의식 없이 그런 끔찍한 죄악을 범하면서 돌려보거나,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에 포스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앞장서서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고,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나눠 주는 사랑을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해야 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지만, 심은 것과 다른 결실을 거두려는 이들이 있고,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불행에 대해 남 탓을 하거나, 환경 탓을 하거나, 하나님을 탓합니다. 물론, 남 탓일 수도 있고, 내 탓과 남 탓일 수도 있고, 환경 탓일 수도 있습니다. 설사 남 탓이나 환경 탓이 내 탓보다 클지라도, 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나 전화위복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내 탓을 더 문제 삼는 것입니다. 이유는, 불행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 탓을 해결하지 않으면, 또 불행을 겪게 됩니다. 나 자신부터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구하시는바 공의를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함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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