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을 만한 믿음

최세창
  • 500
  • 2025-04-07 03:54:30
https://youtu.be/5g2-M9q46qo

<사도행전 14:8-18>

8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11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12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13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14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15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1. 시작하는 말

성경의 기적의 치유와 축귀를 부정하기 전에, 자신에게 그런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열두 해 동안 많은 의원에게 괴로움을 받고, 재산을 다 허비하고도 병만 더 중해지던 혈루병자가,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나을 줄 믿고 만지자마자 치유됐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하셨습니다. 귀신들린 딸이 있는 여인이 예수님의 모욕적인 거절의 말씀을 듣고도 지혜롭게 대답했을 때,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셨고, 딸이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어 드린, 죄 많은 여인에게 예수님은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라고 하셨습니다.

2. 구원받을 믿음이 있는 자를 고친 두 사도를 오해한 무리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세상살이에 정말 중요한 것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갖가지 우상 숭배가 범람하는 애굽에서, 오직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믿음으로 행하던 요셉은 억울한 옥살이 중에도 하는 일이 형통하더니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 선교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는 바람에 루스드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포기하지 않고, 루스드라에서도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 루스드라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서, 걸어 본 적이 없는 불쌍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체나 재물에 있어서는 보잘것없었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복음 설교를 하는 바울 사도 사이에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영적 교감이 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울 사도의 복음 설교를 귀나 가슴으로만 듣지 않고, 온 영을 기울여 듣고 받아들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온 영을 다해 설교하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아 온 영을 다해 듣는 곳에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교감에 의해서 바울 사도는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는 그 앉은뱅이를 주목했고,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영안으로 식별한 것은, 그 사람에게 영혼과 육체의 병으로부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는 사람도 붙잡고 안수할 판인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본 바울 사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그 앉은뱅이에게 큰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라고 하였고, 이미 바울 사도와 영적으로 통한 그 사람이 뛰어 걷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치유는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바울 사도는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주님의 놀라운 기적의 은혜는 주님의 사자의 영과 말씀을 듣는 사람의 영이 통할 때에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천광역시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영이 맑거나 영이 강한 교인들이, 아픈 교인들을 데리고 앞자리에 앉곤 했습니다. 이유는 설교 중에 아픈 부위가 뜨거워지면서 치유되는 일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하던 강의가 신약성경 주석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강의를 듣다가 병이 나았다고 하거나,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됐다고 신기해하는 제자들의 말을 듣곤 했습니다.

환자들에게 안수기도를 하다 보면, 막상 안수기도를 받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없는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성령의 불을 받으면서 회개하거나 치유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성령의 불기둥이나 성령의 불꽃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영안이 밝은 교인들도 있습니다. 다 같은 믿음 같아도 실은 천차만별입니다.

복음 설교나 성경 강해나 안수기도를 통해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병고에서, 가난에서, 고통에서, 죄에서, 그 밖의 모든 인생 문제에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로마서 10:17을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23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선천적인 앉은뱅이로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어 뛰어 걷는 것을 본 무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나 루가오니아의 언어를 몰랐던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오해를 즉시 풀어 주지 못했습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나바를 가리켜, 최고신인 쓰스라고 했습니다. 쓰스는 헬라의 주신인 제우스와 같고, 로마의 최고신인 쥬피터와 같습니다. 그들은 설교하는 자인 바울을 가리켜, 쓰스의 막내아들이자 웅변의 신인 허메라고 했습니다.

바나바를 쓰스의 화신으로, 바울을 허메의 화신으로 착각한 무리와 루스드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쓰스에게 바칠 제물인 소와 소의 목에 걸 화관들을 가지고 와서 두 사도가 있는 대문 앞에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려고 했습니다.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바나바를 사람의 형체로 온 쓰스로, 바울을 사람의 형체로 온 허메로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렇게 믿는 무리의 뜻을 거스르기보다는, 그들의 신앙심을 고취하는 것이 제사장인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 무리와 함께 제사하려고 한 것입니다.

졸지에 신으로 오인되어 예배를 받게 된 바울과 바나바는, 그런 제사장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무리의 헛소리와 제사하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기가 막혀서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렀습니다.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는 신처럼 숭배받는 이단자들과 달리, 사람들의 예배를 받지 않았고, 무리가 신들로 오인한 점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두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답게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해도,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그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적에 대해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헛된 일인 우상 숭배를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임을 밝혔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선포했고, 이방인들에게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유일한 하나님을 믿도록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전도 대상에 따라 유효적절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두 사도는 이런 말로 무리를 말려서,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떠난 생활에 대해 하나님과 관련지어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의 강림 전의 세대에는,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의 길을,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의 길을 다니게 묵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디까지나 주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을 변호하는 해명이지, 율법주의의 생활이나 우상 숭배의 생활을 옳거나 구원받는 방도로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행위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증거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셔서 음식과 기쁨으로 그들의 마음에 만족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자연의 복을 가리켜,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라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하나님의 특수 계시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알 수 있도록 계시하셨습니다. 로마서 1:20을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하여금 율법주의나 우상 숭배를 비롯한 그들 나름의 길을 가도록 묵인하신 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그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역할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24을 보면,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역사를 좇아 온 영을 기울여 바울 사도의 복음 설교를 듣던 앉은뱅이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의 능력으로 기적의 치유를 체험했습니다. 다 같은 믿음 같아도, 믿음의 수준은 천차만별입니다. 병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세상살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우리 모두 병고에서, 가난에서, 고통에서, 죄에서, 그 밖의 모든 인생 문제에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요한일서 5:4 후반을 보면,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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