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수를 좇되 철저히 좇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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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20 21:34:04
1. 시작하는 말

2014년 4월 19일,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바라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이들이 속수무책인 죽음 앞에서 신(하나님)을 만났기를 바랄 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끔찍한 재앙을 이용해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정치적 성향에 맞춰 친정부, 혹은 반정부 발언을 하는 사람들과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들과 사기 치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자성해야 할 것입니다.
70을 바라보도록 살아오면서 우파 정권 때에나 군사 정권 때에나 좌파 정권 때에나 중도파 정권 때에나 기타 정권 때에나 비슷한 원인의 비슷한 재앙이 발생하고, 엉성한 대처를 할 때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답답했는데 이번에 또 끔찍한 재앙이 발생해서……언제나 이런 재앙이 없는 세월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평소에 맡은 임무에 철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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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을 좇되 철저히 좇자

민, 관, 군 할 것 없이 수사하는 대로 속속 드러나는 구조적 부실과 구조악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상,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구조악이요 구조적 부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란 어떤 일이나 어떤 자리에 필요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물욕과 출세욕과 명예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세상과 우리 사회가 위태위태하게나마 굴러가는 것은 25일 현재 185명이나 죽고, 침몰선에 갇힌 실종자가 117명이나 되는 세월호 사건에서 본 것처럼, 목숨을 걸고 구조한 사람들과 남들을 구조하다가 목숨을 잃은 의사자들과 같이 일과 임무에 철저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황금만능주의와 과학의 발달과 탐욕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구조적 부실과 구조악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지식이 많아지고, 과학이 발달하고, 정보가 풍성해지는 것으로 세상이 밝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수완이 좋아 출세한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직과 관련된 탐욕과 부정부패와 뇌물수수와 아부아첨과 거짓과 위선과 음란과 우상숭배와 추잡한 행티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부국강병의 문명국들이 약소국들을 도둑질하는 침략으로 인한 대량 살상과 끔찍한 생체 실험과 노예 매매 등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단의 하수인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하는 지성인, 정치인,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지식의 다소와 재물의 다소와 권력의 유무와 상관없이 심령에 하나님의 형상인 사랑과 의와 진리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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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얼마나 갖췄는가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직무를 수행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구 문화의 이대 주류인 헬라 사상을 이룬 종교와 철학과 문화, 그리고 히브리 사상을 이룬 율법과 여러 유대교 종파와 관습에 능통했을 때, 주 예수님이 머리이신 교회를 철저히 핍박했습니다. 그런 바울이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철저하게 회개하고, 철저하게 주 예수님을 좇으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순교하기까지 철저히 복음에 합당하게 살면서 문서로, 혹은 입으로, 혹은 신유와 축귀의 은사로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무수한 영혼을 구원받게 했고, 복음의 진리를 확립했고, 신약성경 중에 13서신을 썼고, 서구 기독교 문화의 토대를 이루었고, 세계사적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 바울 사도는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권했습니다.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교인다운 교인이 적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좇되 철저히 좇는 교인들이 적다는 겁니다.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의 가버나움에 계시던 예수님은 당신의 기적의 치유와 축귀를 본 사람들과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그 호수의 동편으로 건너가자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에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서기관”이란 바벨론 포로 후기의 율법의 전문적 해설자요 교사들이었습니다. 서기관 중에 또 다른 계급이 있었는데, 이는 제사장 계급이었으며, 율법의 보호자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 중 최고의 칭호가 랍비 곧 율법 박사이었습니다.
초기 헬라 시대에 영향력 있는 평신도 서기관들이 백성들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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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지지자들을 모아 대중적인 평민 정당을 형성하는 데 성과를 거두었는데,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뛰어난 계급을 대표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함께 공회를 구성하고 있었으며, 유대 관료 제도에서 대제사장과 그 가족들 다음가는 지도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서기관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선생님 곧 놀라운 능력이 있는 지도자로 여겨 어디로 가시든지 좇겠다고 한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근무하다가 퇴근해서 남는 시간을 스승으로 여겨 좇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 삶을 바쳐 좇는 직제자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좇으리이다”의 헬라어 아코루테소(ἀκολουθήσω)는 대개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서기관은 예수님을 고난의 메시아로 알고 믿고 따르는 직제자가 되겠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명성과 편안하게 잘 사는 등의 세상적인 유익을 위해 직제자가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직제자가 되겠다는 각오는 좋았으나, 예수님의 제자직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실천력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가난해서 집 없는 노숙자의 생활을 하신다는 뜻으로 곡해하거나 왜곡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능하셔서 열두 제자를 굶기셨거나, 친히 제자들의 재산을 보증삼아 융자를 받으셨거나, 제자들에게 돈을 꿔 오게 하시거나, 양식을 구걸해 오라고 명령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하는 사람들은 유숙이나 대접이나 사례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나그네라도 영접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단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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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부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가복음 6:10을 보면, 예수님이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말고 선교 실습을 나가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예수님은 복음을 가르치시고, 놀라운 기사와 이적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더욱이 주 예수님은 만유의 주 곧 모든 인간과 만물의 주이시자 창조의 중보자이십니다. 주 예수님은 필요하시면 나귀 새끼도 보내게 하셔서 타시고, 물고기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풍성히 잡히게 하시고, 오병 이어의 기적도 행하셨습니다. 그런 주 예수님을 가난하셨다거나 노숙자이셨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하신 것은 동물도 쉴 집이 있지만, 인자 곧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편히 쉴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과 멸망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주 예수님은 선교 활동, 그리고 사람들의 배척과 핍박 때문에 편히 쉴 곳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나를 좇으라”라는 명령을 들은 한 추종자가,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장사하는 일은 다른 일보다 우선권을 가진 종교적 의무이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종족 어느 종교나 공통적인 것입니다.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하는 제사장들도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친자매의 시체는 만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연고자가 없이 죽은 사람을 묻어 주는 일은 이생과 내생에 하나님의 보상이 약속된 사랑의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종교적 의무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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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을 믿지 않는바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부친의 장례를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먼저’ 하는 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영생의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보다 우선적인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3. 맺음말

예수님의 직제자가 되는 것은 최우선적인 것이며, 그 어떤 중요한 인생사하고도 비교될 수 없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주이시고, 그의 제자직이란 부귀영화는커녕, 언제라도 순교할 각오로 수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주 예수님의 직제자가 되는 것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철저한 각오와 철저한 임무 수행은, 믿는 우리들에게 맡겨 주신 교회 안팎의 일이나 임무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세상엔 직과 임무를 성폭행이나 도둑질 등의 범죄의 방편으로 삼는 악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을 증인삼아 철저히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2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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