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求道)의 대열에서 실족한 사람들...

오재영
  • 662
  • 2025-04-05 17:06:39
구도(求道)의 대열에서 실족한 사람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한 성경 말씀은 언제나 그 길(道)을 따르는 이들이 목적지를 향하며 수시로 자신의 현재 위치와 자기 형편을 점검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누구나 방향을 알리는 나침반과 길이와 무게를 알려주는 자(尺)와 추(錘)가 필요하듯이...

성경 말씀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시대적 역사의 기록이나 산물이 아니다.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감동(靈感)으로 기록됨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딤후3:16-17,히4:12-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의 삶의 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하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소명을 행하는 이들이라면 필히 성경을 기본으로 자기 스스로 말씀 앞에 수시로 점검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것은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오늘도 창조하시고,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기 때문이다.

사단의 올무와 덫에 걸려있는 사람들...

영혼을 교도하는 돌보며 신탁(神託)을 준행하는 목회(牧會)의 사역은 인간적인 특출한 능력이나 의지의 관함이 아닌, 허물과 죄, 멸망의 위치에서 십자가의 피로 값을 지불하신 주님으로부터 두렵고 떨림으로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불가능한 분야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이들은 언제나 과거 구원 이전에 자신을 지배하던 이땅을 떠나기까지는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단’과의 생을 건 처절한 영적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지혜다. 잊고 소홀하여 방종 하는 순간, 그가 지난 날 어떠한 과정을 겪어 왔든지, 상관없이 본인을 비롯하여 관계된 이들 모두는 한순간에 생을 망치는 것은 물론 공력이 크면 클수록 모두가 사단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역의 현장에는 신앙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마술사 시몬을 비롯하여 데마와 같은 동역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모두가 자기부인(自己否認)의 분명한 고백과 스스로 설정한 선(線)을 중심으로 자기 성찰에 게으름으로 다가오는 위험(危險)을 모른 채 영적 전쟁터에 나온 이들이다. 혹여 분명한 고백이 있다고 하여도 신앙을 빙자하여 시세(時勢)구분을 못하면 사역의 방향을 잃어 번, 아웃으로 방황한다. 이들은 이미 ‘에이미 카마이클’의 표현대로“우리는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옷이 벗겨지신 주님을 따른다.”는 두렵고 떨림으로 감당하여야 할 방향을 모르고 헛된 욕망에 휩쓸려 관종(關種)의 무리에 든 이들이다.

이들의 요설과 궤변을 듣노라면 뭐라 표현할 적당한 단어가 없다.

牧師라는 직분이 축복 기도하는 것인데, 성직자의 신분으로 퀴어 축제에 가운을 걸치고 꽃가루를 뿌리며 그들을 향해 축복 기도를 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이제는 교리와 장정을 바꾸겠다고 기염(氣焰)을 토하며 기세와 호기가 하늘을 찌른다. 한마디로 뵈는 것이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이들이 아닌가? 이들에게 듣고 싶은 내용이 있다. 신앙을 떠나 정상적 이성의 판단에서 묻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는 여러 종파를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 신앙을 쫓아 종교의 이름으로 사는 이들은 우리만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속세(俗世)와 의 인연을 끊고 출가한 승려(僧侶)의 무리도 있다. 정상적인 그들의 교리로 보면 그들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버릴 수 있는 것 모두를 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그 진리를 향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에도 일부가 불도(佛道) 정진에 실패하여 자기에게 딸린 처 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각목 들고 자리 다툼으로 순진한 불자들을 염려케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석가모니를 가리켜 동성애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이슬람교의 마호메트교주를 동성애자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가? 그러함에도 거룩과 순결을 추구하며 거듭남을 기본으로 내세분명할 명색이 聖職者라는 이들이 예수님도, 제자들도 동성애자라는 이들은 과연 정신이 온전한 이들인가?

글을 마치며...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저자인 평신도 지도자 워치만니 는 “용서 받은 罪人은 보통 죄인과 매우 다르다. 그리고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보통 그리스도인과 현저(顯著)히 다르다”했다. 지금 교단의 교단장과 각 연회 감독을 비롯한 책임 있는 이들은 이들의 준동(蠢動)을 어찌 생각하는가? 자주색 가운의 성직(聖職)을 입신양명(立身揚名)의 기회로 아는가? 지난 날 구령의 열정도 식어 패거리지어 다니든 이들이 각국 위원의 자리에 앉아 이단 사설(異端邪說)을 바로잡기 위하여 직(職)에 걸 맞는 희생 하리라 하는 기대 접은지 오래이나 너무나 하는 행동과 들리는 소문들이 염려를 넘어 두려운 마음이다.

나를 비롯한 구도의 길을 가는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죽은 자 말이 없어 그러하지, 엎드리면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증험들 차고 넘친다. 오만방자 함으로 교단을 폄훼하고 함부로 자기 혈기, 욕망과 유혹, 거절 못하고 주님의 은혜와 긍휼의 자리를 벗어나 안전의 자리를 떠나는 순간 천 길 낭떠러지의 위기를 만난다. 이를 안다면 엄위 앞에 복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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