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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복인 바울과 아굴라 부부 : 나는 만남의 복인가, 만남의 화인가?
최세창
- 1566
- 2022-12-07 22:15:08
<사도행전 18:1-4>
1. 시작하는 말
이 성경 본문 같은 말씀들을 보고, 바울 사도는 물질적인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급 선교를 했다고 하는 주장은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소아시아 일대를 비롯한 광대한 지역을 삼차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는데, 어느 세월에 손으로 그 비용을 다 댈 만큼 장막을 많이 만들었겠습니까? 설령 많이 만들었다고 한들, 그 많은 장막을 어떻게 짊어지고 다닐 수 있었겠습니까? 인가가 없는 산을 거치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빌립보서 4:18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교회들도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2. 고린도의 소금과 빛인 바울의 선교
바울 사도는 별 핍박도 없었고, 풍성한 결실도 없었던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 결과를 본 얼마 후에 고린도로 갔습니다.
고린도는 교통‧상업‧전략 요충지였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주전 146년에는 고린도의 역사에 중요한 분기선이 그어졌는데, 그것은 로마가 아카이아 연맹을 해체시켰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지협의 류코페트라에서 결정적인 교전이 있은 뒤, 집정관 루시우스 뭄미우스(Lucius Mummius)는 힘들이지 않고 고린도를 점령했습니다. 시민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재건은 금지되었습니다. 이 후로 고린도의 영토는 대부분이 로마의 공유지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100년간 폐허이었다가 줄리어스 씨이저(Julius Caesar)에 의해서 주전 46년에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어, 로마 제국의 군사적인 전초 기지와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아구스투스(Augustus) 황제 때에는 아가야주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의 전통에 대해 거의 아무런 의미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인 상인들과 방랑객들과 행운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쾌락을 찾는 사람들이 로마 제국의 곳곳에서 속속 이주해 왔습니다. 헬라인들도 있었고, 유대인들도 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고린도의 주민은 자유인이 20만 명에다 노예가 40만 명이었습니다.
대선교사이기도 한 바울 사도의 선교지 선택은 대개 고린도와 같은 대도시이었습니다. 장사만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 선교와 교회 부흥도 장소가 중요한 것입니다.
한 세기 전의 고린도에 대해 부도덕하다는 평판이,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도덕한지 고린도화한다는 말이, ‘바람피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의 하류 계급 사람들이, 거기에 살았다고 한 마태오즈(H. A. Mathews)의 말입니다. “자기가 살던 도시에서 위로 받을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뢰한들이 고린도로 모여들었다. 이 변화된 항구는 로마 제국의 판도 중에 제일 음탕한 곳이었다. 이 항구 도시를 지배하는, 그리스의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신전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경향은 더욱더 자극되었다.” 반즈(A. Barnes)는 “전 세계에서 매우 사치스럽고 여성적이며 허식적이고 방탕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고린도는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예배에 의해서 공개적인 음탕이 장려된 음란한 도시였습니다. 신전 음녀가 천 명이나 있었습니다.
최근에 발굴된 바에 의하면, 30.48m 길이밖에 안 되는 주랑(柱廊) 뒤에 음행을 위한 협소한 방이 33개나 있었습니다.
고린도가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간에, 부패를 막고 정결케 할 소금이 절실했습니다. 사단의 영역인 어둠을 밝힐 빛이 절실했습니다. 마태복음 5:13 이하를 보면, 주 예수님이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나 빛은 자기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부패를 막든지 음식에 맛을 내든지 간에, 소금이 소금 역할을 하려면 다른 것 속에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 빛이 어둠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하려면 태워 없어져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 때문에, 부패한 사람들이 성결해져서 살맛나게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 때문에 사리 분별을 못하고, 죄악이 죄악인 줄조차 모르는 어둠의 인생들이 빛을 보게 되어야 합니다. 고통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빛을 보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실력, 경험과 재물, 지위와 벼슬이 소금이나 빛으로 쓰이고 있습니까, 부패와 어둠에 쓰이고 있습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와 복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있습니까, 사단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도 사단이 기뻐하는 곡해와 왜곡을 하고, 반 성경적인 사상을 만들거나 추종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집약인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딴청 부리느라 하나님을 무시하며 사단을 기쁘게 하다가 악령에게 평생 휘둘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위해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며 행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심령에 영접했다고 하는 우리는 어느 정도의 소금이며, 어느 정도의 빛입니까? 맛 잃은 소금 같고, 어둠 같은 함량 미달이거나, 성령이 아닌 영들에 지배당하는 신학자들과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있습니다. 유일한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부인하거나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또, 주 예수님을 유일한 주가 아니라, 많은 주들 중에 한 주로 폄하하기도 합니다. 또한, 주 예수님을 구주가 아닌, 단순한 인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요한일서 4:1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기막힌 일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시아버지도 목사이고, 유학까지 한 남편도 목사인 사모가 신들려서 무당이 시키는 대로 하느라 이런 명목 저런 명목으로 40여 억 원이나 뜯겼습니다. 영에 휘둘린 어린 자녀들까지 거짓말로 아버지가 시킨 많은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엄마도 당했다고 했습니다. 교역자인 남편은 제명되어 음식 배달을 한다는 것입니다. 영들 곧 귀신들에 휘둘리면 망하는 겁니다.
만남의 복이 아니라, 만남의 화인 부부와 가정이 급속히 늘어가고, 만남의 복이 아니라 만남의 재앙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변화되고, 복음을 깨닫고,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며 선교의 삶을 산 바울의 사도직과 영력, 지식과 지혜, 영적 체험과 재물 등 모든 것은 소금과 빛으로 쓰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는 전도하여 설립한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 밝혔습니다. 고린도전서 8:5 이하를 보면,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서도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값진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 선물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이었습니다.
로마의 행정 구역인 본도에서 난 유대인인 아굴라(Ἀκύλαν)와 그 아내 브리스길라(Πρίσκιλλαν)는,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매우 아름다운 기독교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과 연합한 믿음의 부부였습니다. 그 부부는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49년에 정치적인 이유로 모든 유대인들에게 로마에서 떠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고린도에 왔고, 바울 사도가 그들에게 갔습니다. 추방당한 불행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자 사람들의 목자인 바울 사도를 만나는 복이 되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갔을 때에도 동행하였고,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자세하게 해석하여 가르치게 하는 등의 유용한 일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집도 하나님의 교회(가정 교회)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서로 만남의 복이었고, 바울 사도에게도 만남의 복이었습니다. 가죽이나 염소 털로 짠 천으로 천막을 만드는 업이 같았으므로 동업했습니다. 천막을 만들어 복음 선교를 한 바울 사도는, 교회들의 재정적인 후원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와 같은 주님의 사자들을 도운 것에 대한 영적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빌립보서 4:18 후반을 보면,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부부는 복음 선교에 동참했고, 바울 사도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율법을 인용하면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에게 주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영생의 주 예수님을 전한 바울 사도는, 듣고 믿어 죄 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만남의 복이 되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남들에게 만남의 복입니까, 만남의 화입니까? 온갖 죄악과 우상 숭배와 음행과 종교적 죄악으로 부패하고, 어둠 속에서 멸망의 길을 가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만남의 복이었습니다. 주님과 연합한 소금과 빛 같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 믿어 구원받도록, 바울에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선물했습니다.
현대의 부패와 어둠도 고린도와 별다를 게 없습니다. 세계 교회의 강단까지 오염되고 있습니다. 말씀의 혼잡과 영적 혼란이 극심한 이때는, 믿는 우리가 더욱더 주님 안에서 남들에게 만남의 복이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는 목사를, 목사는 평신도를 잘 만나는 만남의 복만한 것이 없습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