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1:3-5(설교: 감사거리, 기쁨거리로...)의 주경신학적 연구
최세창
- 341
- 2025-05-01 09:17:27
간구(데에세신, δεήσεσίν)는 디모데전서 2:1의 주석을 보라.
생각하여는 뮈네이안(μνείαν)으로서 ‘말하다’(몬 1:4), ‘생각하다’, ‘기억하다’, ‘회상하다’를 의미한다.
바울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디모데를 기억하였다. 하나님의 사자의 간구 속에 끊임없이 생각 또는 기억되는 성도들은 그 자체로서 큰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간구 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디모데에 대한 기억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직결되고 있다. 아마도 하나님과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관계는 없을 것이다.
디모데로 말미암은 바울의 감사는 디모데가 청결한 양심(딤전 1:5의 주석을 보라.)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참조: 빌 3:4-6).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과 유대교 신앙의 실제적인 연속성의 의미가 바울에게서는 불변의 것임”(W. Lock)을 알 수 있다(1:5). 문제는 유대교가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4】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의 눈물에 대해 (1) 신앙의 여정 속에서 본 디모데의 눈물들(행 20:36, 37, 21:13, 30-32, 33)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J. Wesley, 채필근), (2) 서신적 눈물, 즉 디모데가 보낸 편지에 바울의 갇힌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 글이라는 설(Hofmann)① (3) 디모데의 경건한 자비의 감정에서 흐른 눈물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J. A. Bengel), (4) 바울과 헤어질 때에 디모데가 흘렸던 눈물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② 등이 있다.
어느 설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의 견해인 (4)설이 가장 무난하다. 이 견해는 곧 이어 나오는,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는 표현을 보아 더욱 그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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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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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카라스(χαράς)이며, 세상적인 기쁨이나 값싼 승리에 의한 기쁨이 아니라, 대체로 종교적 근거에 의한 기쁨,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근거한 기쁨을 뜻하는 것이다(시 30:11, 잠 29:6, 롬 14:17, 15:13, 갈 5:22 등).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한 받고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기쁨이요, 사랑을 행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참된 의미에서 인간 사회의 기쁨도 주님 안에서 서로 신적 사랑을 주고받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디모데는 항상 기쁨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감금 중인 바울이 마음에 기쁨을 가득하게 하는 길은 바로 디모데를 만나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만나서 기쁜 인간관계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 안에서 신령한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은 누구에게나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는 것이 자신의 기쁨을 가득하게 하는 이유에 대해, 【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디모데전서 1:5의 주석을 보라.
생각함이라는 휘폼네신 라본(ὑπόμνησιν λαβὼν)으로서 글자 그대로 ‘생각나게 하는 것을 가졌다’는 뜻이다. 버나드(Bernard)는 “이 명사(ὑπόμνησις: 이곳과 베드로후서 1:13, 3:1에만 나온다.)는 외부로부터 유발된 기억 행위”③라고 말하고 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는, 디모데의 진실한 믿음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다.
로이스스(Λωίς)라는 이름의 뜻은 ‘유쾌하다’ 또는 ‘믿음직하다’이다.
유니게(Εὐνείκῃ)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16:1에도 있으며, 그녀의 이름은 ‘선한 승리’ 또는 ‘승리로 축하되다’라는 뜻이다(디모데의 가족 관계에 관한 것은 디모데전서 제1부, Ⅲ. 대상을 보라).
바울은 디모데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진실한 믿음이 디모데의 마음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한다고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대망의 믿음과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믿는 믿음 사이의 연속성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대망하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인정하는가 함이다(자세한 것은 갈 3:8-9의 주석을 보라).
아무튼, 디모데는 가정을 통해서 가장 위대한 유산인 진실한 믿음을 물려받았다. “실로 디모데의 믿음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보이는 좋은 실증이라 하겠다”(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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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hrysostom, White, Vincent”(in 이상근), M. Henry, A. Barnes, R. Earle, p. 409, J. G. Gould, A. T. Hanson, W. J. Lowstuter, W. Hendriksen, R. S. Nicholson, A. J. B. Higgins, L. Morris, 黑崎幸吉, 박윤선.
3) in R. Earle, p. 409-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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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출처: 최세창, 디모데전·후서·디도서·빌레몬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3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