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WCC 신학에 대한 생각들

현종서
  • 1866
  • 2023-01-03 02:01:17
원시 기독교회나
미 근본 주의나
종교개혁신학이나
웨슬리아 복음주의나
카리스마 기독교회나 그들이 믿는 성경의 구원교리는 다르지 않다.어느 장목사가 그런 교리는 미 근본주의자만 가진 듯이 표현하며, 그는 근본주의들만 반대한다했지만 실상 같은 신조와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믿는 전 개신교회를 에큐메니칼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인간의 하나님 의 계명 불순종과 원죄를 지니게 됨
죄로인해 죄의 형벌로 저주받아 죽음에 떨어지게 됨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그의 십자가 위에서의 대속의 죽음
회개 복음믿고, 예수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남, 성령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닮아감-성화
죽음후에 심판시 부활, 승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영원한 천국의 백성으로써 복락의 삶을 누리게 됨.

회개치 않고 복음을 믿지 않는 자. 죄 사함받지 못하고 죄인이 받는 영벌을 받게 됨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이나 복음주의자들과 달리 자기가 믿는 신조를 지키기 위해 그것을 반대하는 종교나 철학사상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론적으로 사상적으로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다. 다른 개신교회들은 그들과 교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WCC 의 설립정신을 기억하면서(그동안 변질되어 온 일에 대해서는 덜 관심을 두거나, 애초 좋은 설립정신 생각하며, 이상한 면이 나타나도 일시적인 것으로 보아 잠시 침묵하고 있다.)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온교회의 친교단체로서 활동하고 있는 데, 자기들의 신조와 맞지 않는 활동을 한다고 근본주의만을 적대시 한다? 다른 교단들은 같은 교리를 믿을 지라도 적대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므로 종교혼합적인 다원주의 구원론을 주장해도 잠잠하니 함께 협력한다고? 하나님의 성령이 싫어해도 타종교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혼합적 영성으로 예배도 드리고 종교인들간에 싸우지 말고 평화를 누리며 지내자?.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처럼 편협하고 투쟁적이고 실상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이다? 기독교역시 교리에 동의하여 모인단체인데, 친교단체에 불과함으로 같지 않은 교리나 다른 영을 섬기는 자도 용납하며 평화롭게 지낸다.?
이런 태도는 신구약이 증언하는 창조자 하나님, 여호와, 야웨를 섬기는 이들의 자세가 아니다. WCC가 교회의 친교단체라면 먼저 회원으로 가입한 이들이 예수의 몸된 교회의 일원들인가 기독교의 역사적인 교리를 믿고 따르는 이들인가, 한 믿음을 갖고 한 성령받은 이들인가를 먼저 분별해 내야 한다. 한 성령, 한 믿음, 한 아버지를 믿고 한 구원의 체험을 한 자인가 한 피받아 한몸 이룬 사람들인가 먼저인가 확인해야 한다. WCC는 예수 교회의 친교단체이지 타종교와의 친교단체가 아닌 까닭이다. 다른 신을 믿는 이들과도 친교하기 위한 혼합종교적 친교단체가 아닌 까닭이다.

“현대 프로테스탄트 세계,특히 서양의 역사적 교회안에서 기독교적인 절대성을 세상적인 상대성과 대채해 버리려는 황망한 경향이 짙어가고 있다.”(존 A. 메카이, 에큐메닉스,(민경배 역),CLSK,1966,) p.294

소위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가진 신앙고백이나 1세기 성도들이나 루터 및 칼빈 계열의 신앙고백이나 웨슬리안들이 가진 신앙고백이 성경을 신앙과 생활에 충분한 또는 유일한 표준이라는데 다 동의 하고 있다. 희랍정교회나, 러시안 정교회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 WCC에 가입한 교회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천주교회는 외경서도 있고, 교황의 권위를 성서위에 두고 있고, 마리아의 승천설까지 가르치고 있으니, 같은 종교라 보기 어려울 정도이나, 더 크게 보아, 예수를 구주로 인식하니 기독교회의 범주에 두기도 한다. 캐톨릭 교회는 원래 개신교 단체인 WCC의 회원이 아니며, 업저버로 참여하였을 정도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를 대속주이며 그를 통해 구원을 받는 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WCC가 외적으로 들어난 행동은 종교간의 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지 않은 타종교인들도 종교인이라는 의미에서 한통속이 될 수 있지 않느냐 하며 종교통일을 획책하는 듯 하다. 이러한 철학은 이미 성경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하고 충분한 표준이 된다고 고백하는 개신교도들에게는 WCC가 교회의 친교를 도모하는 단체라 볼 수 없게 만든다. 영은 다 같은 영이라는 인식과 행태를 보이니 말이다. 그것이 극명하게 들어 난 일이 “정현경 교수의 무당 푸닥거리 춤”이었다. 종교적으로 영은 다 같다는 사고하에 이루어진 듯 하다.
그러나 신구약에 나타난 성령의 이야기, 구약에도 야웨의 신과 이방인들이 신들(바알,아세라, 가나안의 신들)은 다르며, 신약에 성령의 역사와 아불로온과 귀신들의 역사는 구별된다.
그런데, 그 정현경은 이대 기독교학과 출신이다. 감리교회를 사실상 법적으로 이탈하여 독립적인 재단을 이용하는 이화 대학에 속한 자요, 중앙위원이었던 장상 교수 같은 이도 장로교 소속 신자이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독립재단을 운영한다 해도 그 뿌리가 한국 기독교 대한감리회임을 부인할 수 없고 이제는 그 이대는 교단의 보호가 필요했던 아이의 시절을 다 보내고 스스로 성장하다 보니 독립적인 성인이 되어 부모격인 교단에는 자발적을 효도를 해야 하는 처지라고 본다.
한 기감은 교파가 다르므로 독자의 신앙을 가졌으므로 근본주의 신앙인들이 신조로 믿고 받아들이는 신조들과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 그런데 그들이 믿는 있는 신앙고백과 98프로 이상이 같고, 선택 교리가 이중예정이냐, 예지예정이냐에 따라 차이를 낼 뿐 하나님의 예정을 다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에정설이 다 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웨슬리는 죠지 휫필드의 장례시, 동지 목사로서 깊이 애도하였던 것이다.
소위 신학학문에 있어 이성중시와 우위의 자유주의 신학이 독일교계를 주도 하고 있을 때, 미 장로교회 프리스턴대를 나온 그레샴 메이쳔이 독일 유학을 하여 공부하다 보니, 미국에서 성서중심의 경건주의 영향에서 자랐는데, 성서의 역사비평학등,자유주의 사상에 의한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경건주의적 신앙(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어온) 에 용납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에서 유학해 온 이들중에는 그들의 학풍에 적당히 받아들이며 신학을 한 이들이 있다. 미 게렛신학교의 롤 교수는 슐라이마허와 알브레히트 리출(Albrecht)을 공부한 그는. 체험신앙과 함께 예수의 윤리에 초점을 두어 예수는 윤리적으로도 인류의 모범이 되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의 진리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메이쳔은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기독교는 이미 다른 종교라고 강하게 인식하였다. 이성중심의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키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까지 부인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미리 간파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유학을 중단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종래의 성서중심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우리 감리교회는 당시 유럽세계에서 발전되어 영 미 신학계에 까지 흘러 들어온 첨단의 성경 비평학을 최신의 학문으로 받아들였다. 감리교회의 유형기, 장로교회의 한경직,김재준등이었다. 구라파에서부터 이 자유주의 신학사상에 문제를 느끼면서 성서역사비평학에 의해 성서에 권위가 많이 손상되었음에도 기독교이 기본 교리를 그들의 학문의 성과도인정하면서 변증하려고 애쓴 이가 칼 바르트라 볼 수 있고, 위기의 신학자들, 신정통 신학자들이었다.
그래서 장로교회는 칼빈에 칼바르트, 감리교회에서는 웨슬리에 칼바르트의 해석을 주류로 받아들여 그들의 교리를 지켜 나가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칼 바르트의 아류 신학자들이 구라파와 미국에 그 주도 세력을 이루고 있고, 한국신학자들은 유학하러 가서 그들의 신학을 배워 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20세기 후반) 유럽교회들이 쇠퇴하고 미국의 교회들이 마찬가지로 그 세력이 날로 약화되어가고 있다.미 주류교단들이( 자유주의 신학내지는 신정통신학을 받아들여 교육해온) 날로 쇠퇴해 가고 있다. 그런데, 성경적 신앙을 강조해 온 남 침례교회나, 오순절 교단들은 그 교세를 지킬뿐 아니라, 성장해 가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WCC가 처음 설립될 때, 신학적으로 주도했던 이가 칼 바르트였다. 그는 정통교리를 지키되, 자유주의 신학사상의 성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려 하다보니, 사실상 재해석된 정통주의 신학마져, 순수 성서적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 들어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물론 신구약의 가르침과 더불어 성령의 역사가 그 경전들의 예언이나 계시들을 진리로 증거함으로서, 세워진 교회들이었고, 세상문화속에 그 기독교진리를 해설하려다 보니, 당시의 계시체험이나 이해,성경과 더불어 철학적 설명들을 차용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설명해 온 것이 오늘 날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었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도 초자연적 계시 활동을 통해 성서적 진리를 입증하고 보강해 주는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인간의 교육적 설득, 신학을 아무리 말해 본들 그 감화력이 적고 그런 설명을 이해함으로서 일반 불신앙인들이 믿음을 갖도록 만든다는게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다. 그것들과 병행하여 항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경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기독교회가 존재해 왔던 것이고 성경적 신학이 실제 교회의 신학이었고, 그런 진리들은 주로 성령체험을 한 부흥사들의 낮 사경회를 통해 성경에 대해 신학의 체계중, 말씀론, 구원론들을 통해 신자들이 생겨 나고 성령체험을 통해, 확고한 신앙인들로 교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 교회를 이끌어 오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흥사들의 신앙체계라는 신학과 신학교에서 학문적으로 하는 신학간에 괴리가 있으며, 부흥사들, 목회자들의 신앙체계는 자가 건설 개인집이라면, 신학교 학자들이 가르치는 기독교는 전문설계자와 전문 건축인들을 통해 짓는 대형 건물들이라는 이해를 하면서 학교에서 개혁자들의 역사신학, 그리고, 조직신학으로는 현대신학들을 하면서 신앙체계를 세워 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신학체계속에는 성경이 그 근본이라 하면서도 성경자체는 소홀히 하고 현재에 발전되어가는 각종 철학 사상들을 열심히 배우면서 그것들과 조화를 이루는 신앙체계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현대신학을 공부하는 자세 였다. 그런데 신학사상은 실제 목회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목회자들의 철학적 정신훈련을 덤으로 한 정도 였다. 교회 목회를 하려면 역시 성서로 돌아가 성경 자체가 이 시대의 문화가 어찌 돌아가든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충분한 표준이라는 것을 믿고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일반 지성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문화속에서 신앙인으로산다는 것이 신학자들, 특히 윤리학자들의 말을 참고하면서 신앙생활 하고자 하나, 늘 성경으 가치와 세속의 가치의 충돌속에(정경옥은 신학은 자유, 신앙은 보수라 하며) 어정쩡한 신앙생활을 해 왔던 것이다.
지금은 윤리문제에 있어서도 성경의 가르침이 분명히 있는 데, 인본주의 철학의 영향과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해 그런 인본주의적인 철학에 동조하는 성경해석을 하며 본래의 성경적 가르침에 도전 하는 모양세를 보이는 신학자들도 있다. / 그런데 성경해석의 최고 선생은 그 성경을 쓰도록 감화를 해 주신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 편지의 구절까지고 여려가지 해석들을 해 보지만 그 저자가 그 글을 보며 사실 이러한 뜻으로 이 글을 쓴 것이라고 증언하다고 하면 여러 가능성을 말하는 해석자들은(일반 문학에 대한 역사비평학적 고찰을 통해) 저자의 본래의 뜻과 전혀 상관이 없는 기발한 상상을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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