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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의 방해로 얻은 유익
최세창
- 1461
- 2023-01-16 19:53:54
<데살로니가전서 2:17-20>
17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1. 시작하는 말
안 될 일이 안 되면, 그러려니 하며 견딜 만한데, 다 될 것 같던 일이 결정적인 순간에 막혀 버리면 정말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 충격 때문에 심각한 정신적 손상을 입는 사람도 있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믿는 우리도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에, 그런 충격이 있을 것을 대비하는 굳센 믿음을 갖춰야 합니다.
한때, 실라와 디모데를 동반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선교에 큰 수확을 보았습니다.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으면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죄 사함으로 인한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많은 사람들이 듣고 회개하고 믿음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2. 사단이 막은 바울 사도의 염원과 시도
데살로니가 선교에 큰 수확을 본 바울 사도 일행은,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는 율법주의적인 선입견과 고정 관념으로 영의 눈과 영의 귀가 어두워진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까지 선동하여 함께 힘을 합쳐서, 바울 사도의 선교 팀을 습격하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다른 곳에 있는 바람에 위기를 넘긴 바울 사도와 실라는, 믿음의 형제들의 강권에 못 이겨서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 교인들을 잠시 떠나게 된 바울 사도는, 자식처럼 사랑하는 교인들을 더욱 보고 싶어하는 강렬한 염원이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단순히 염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실라와 더불어 열정적으로 반복해서 방문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에 걸친 바울 사도의 간절한 염원과 시도는, 사단의 다양한 방해로 번번이 막혀 버리곤 했습니다.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그것도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염려로 애태우며 심방하고 싶어하는 바울 사도의 염원은, 목자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일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이 바람직한 염원이라고 해서 쉽게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와 같이 바람직한 염원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기 때문에 사단의 방해가 따른다는 것을 유념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자연히 ‘왜 하나님께서 사단이 바울의 아름다운 염원과 반복된 시도를 막는데도 그냥 내버려두셨을까? 하나님의 전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바울 사도는 왜 하나님께 이런 문제를 의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다양한 방해를 막아 주심으로써, 바울 사도의 염원과 시도대로 되는 것이 정말 유익하고 좋았을까?’ 얼핏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심방하러 가는 길은 더욱 심해진 핍박과 환난의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죽음의 길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초대 교회 전체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지도자 중 지도자이었습니다.
영적 지혜가 충만했던 바울 사도는, 자신의 간절한 염원과 집요한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을 때에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거나 하나님께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믿음의 일꾼들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둘째, 바울 사도의 염원과 시도를 사단이 막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바울 사도를 통해서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바울 사도는 집념이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또한 체념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집념이 강하나 체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집념이 막히면 아무것도 못하거나, 무리하게 감행하다가 재기불능이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거나, 강한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사람이란 집념이 막히면 자존심이 상하고, 속이 상하겠지만,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하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체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체념할 줄을 알아야만 새로운 것에 대해 집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고자 하는 집념이 막히자, 새로운 지역에서 복음 선교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일은, 데살로니가 방문길이 막혔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받아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까지 남겨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방문길이 열려서 데살로니가에 갔었더라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라는 두 편지를 보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방문길이 막혔기 때문에, 데살로니가에 가는 대신에 써 보낸 이 두 편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1900여 년을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깨우쳤고, 특히 올바른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올바로 살게 했습니다. 또, 환난과 핍박을 당하던 교인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었고,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전화위복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기와 미움 때문에 사단에게 미혹되어 요셉을 죽이려다가 팔아 버린 형들이, 먼 훗날에 기근을 맞아 애굽을 찾아갔다가 총리인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형들이 한 짓이 있어서 꼼짝 없이 죽었다고 체념하고 있을 때, 요셉이 한 말이 창세기 45:5에 나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에 보내셨나이다” 또, 창세기 45:7 이하를 보면,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바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우리의 염원과 염원을 이루려는 반복되는 시도가 사단에 의해 막힐 때가 있고, 믿던 하나님조차도 손을 써 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방해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더 크게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이 있는 교인들에게는, 염원과 시도를 막는 사단의 방해란 사단까지도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체험할 기회입니다. 사단의 방해란 포기해야 할 걸림돌이 아니라, 보다 더 큰일을 위한 디딤돌입니다.
3. 바울 사도의 면류관이요 영광이요 기쁨인 교인들
바울 사도는 목회자로서의 염원과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사명에 대해 조금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명감을 불태웠습니다. 교회나 사회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염원이나 시도를 몰라주면, ‘내가 이 직분을 맡아서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데 이럴 수가 있냐?’라고 생각하면서 직분을 팽개쳐 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실을 미루어 보아, 바울 사도의 변함없는 사명 의식은 정말로 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 이하를 보면, 바울 사도는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보다 더 철저한 목자 의식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목회자들의 소망이며, 기쁨이며, 영광이며, 면류관입니다. 재림 때뿐만 아니라, 현재도 교인들은 목자의 소망이며, 기쁨이며, 영광이며, 자랑스러운 면류관입니다.
한 엄마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말했습니다. “너는 엄마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영광이고, 자랑스러운 면류관이란다. 그러니까 건강도 100점, 시험도 100점을 받아야 한단다.” 엄마의 말을 귀담아 들은 아들이 어느 날, 신바람이 나서 대문을 열고 뛰어들어오면서 “엄마,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입이 함지박만 해진 엄마가 “어디 좀 보자.”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꺼내 준 시험지를 본 엄마가 깜짝 놀랐습니다. 국어 20점, 산수 30점, 사회 25점, 자연 25점, 합 100점이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자기 목자를 실망시키거나, 괴롭히거나, 부끄럽게 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목자가 먼저 주 예수님을 본받는 신앙생활로 교인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1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라고 했습니다. 목자와 교인들 모두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자랑스러운 면류관이 되어야 합니다.
4. 맺음말
목자와 교인들 중에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므로, 만사가 다 자기들의 염원과 뜻대로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의 생각이, 하나님 위주와 하나님 본위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과 끈질긴 시도를 사단이 막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도와주시지도 않으시고, 돌보아 주시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사단의 방해까지도 이용해서 우리에게 더 놀라운 유익을 주시고, 더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체득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소망과 기쁨과 영광과 자랑스러운 면류관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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