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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감동을 통해 읽는 성경 읽기를 통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자. 그리고 순종하자
현종서
- 1627
- 2023-01-12 11:24:28
그러나 근본주의의 유래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는 아무리 역사비평학이 나와 성경의 영감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중심적 구원의 교리까지 흔들어 댄다고 해도, 우리는 예수를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사수하련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인 것이다. (내, 그들을 경험해 보고 하는 말이다.)
그들에게 너무 과격하다느니, 비타협적이라느니,폭력적이라느니,무식하다느니,하는 비판을 할지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실증주의나 역사비평학적으로 성경을 보자며, 합리적으로 이해가 잘 안되는 원죄설, 예수의 처녀탄생설, 대속의 죽음, 부활 승천, 재림과 여러기적 이야기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신학 사상의 영향을 배격하자는 것인데, 그들을 무조건 비난해서 안되는 이유는 성서를 기독교의 교리의 근거와 기준으로 믿는 종교개혁자들과 그들의 후예인 개신교도들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은 것을 믿되 보다 더 철저히 믿고자하는 것을 비판하는 격이 되는 까닭이다. 그들은 그 교리를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 작정한다고 하면, 그들을 적당히 타협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로 몰아 버릴 것인가?
당시 기독교계를 대표하며 어마무시한 권력을 휘두르던 천주교회에 대해 목숨걸고 오직 성경, 오직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루터는 천주교도들에게는 파문대상이었고, 장가가고 싶어 천주교를 배신했다는 등, 별 소리를 다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외칠 수 있었던 이면은 그가 무슨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자하는 세속적 욕망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 은혜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에 살아계신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기에 기왓장 보다 많은 마귀들이 날뒤뛰며 위협한다고 해도, 당시 주류를 이룬 천주교회의 해석에 대해서 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이들, 또는 그 방법속에 있고, 그 영향하에 학위를 받은 이들은, 그들이 부르짖고 고집하는 그 내용을 보기전에 위에서 말한 것 같은 안좋은 프레임을 씌워놓고 근본교리를 지키려는 자들에 대해 비난하면서 우리는 다르다고 하는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이 근본을 지키겠다고 고집하는 교리는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지만) 역사적인 기독교 구원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들의 고집이 고마운 것일 수도 있다.
죤 웨슬리는 자기 모교 옥스퍼드 대에 가서 한 설교중에 “ 성경적인 기독교”를 말한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경험한 성령 주도의 기독교를 찾자는 것이었다. 그당시 영국 지성인들의 집합소인 옥스퍼드 대 교수와 학생들은 성경적 기독교보다는 이신론에 입각한 기독교를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WCC 신학적 경향은 첫 회의 때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각기 분열해서 전하기 보다 하나되어 되어 전하자고 당시 선교사 협의회를 불러들여 하나의 교회 협의회를 강조하여 만들었으나, 그 이후 2차 회의때부터 이를 그들의 주장이 수직적인 구원은 배제하고 수평적인 화해, 평화만 강조하게 되었는데, 근거있는 일설에 러시아 정교회 소속 공산주의 중요간부들이 이 회의에 참여하였고 WCC 회장이 되는 듯 이 회의의 중요 직을 차지하면서 회의의 방향을 영혼구원과 회개의 복음을 변질시켜 경제및 인간 해방의 수평적 구원을 행동방향으로 설정하고 매 회기때 마다 조금씩 점점 달라지더니 평화 외치며 종교간 대화를 주장하고 급기야 호주 캔바라 대회 때, 정현경의 퍼포먼스가 있었고 그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교회간의 영적 일치보다, 모임과 행동의 일치,그리고 교회를 넘어 타종교와의 평화 이름하에 영적 혼합교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것이다. 잘 알다 시피, 성령론의 확대인데, 그리스도를 벗어난 성령의 역사를 말하여 타종교속에도 같은 성령의 영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성서중심적인 기독교의 배교행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자유주의적 신학의 진화 발전 과정은 기독교의 근본교리까지 변개 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 성령과 벨리알을 화해 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것인가?
그러므로 현종서 목사는 죤 웨슬리가 말한대로, “성서적인 기독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는 진화되지 않는 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 하신 분인 것이다.
물론 나 개인이나 그렇지 않았으면 되지 무슨 세계적 기관에 대해서 그렇게 까지 말하는가? 적당히 침묵하며, 그 기관에서 주는 직분과 명에를 적당히 받아누리는 게 더 현명한 일이 아닌가?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신학교의 학생 미달사태는 한가지 원인만은 아니다. 복합적이다. 5년간의 한 정부와 그들이 치리한 사회분위기는 교회 부흥과 발전을 저해 할뿐 아니라, 사회도 많이 불신앙의 사회로 만들어 놓았다.
구미의 신학교들도 한국 유학생들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었다. 최근 미국의 역사적인 교회들이 건물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교인들도 없지만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수백명 모이던 교회가 수십명으로, 젊은이들의 출석률이 안좋은 교회들, 오랜지 색 깃발을 교회문에 계양한 교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시대, 젠더이즘은 미국 주류교회에 휩쓸고 있고,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영적 차원과 수직차원의 구원교리을 잃어버린 교회들과 직업화한 교역자들, 그릇된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보고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함께가는 교회들이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교회 교직자는 신학교에서 기르니, 전에 성령받아 신학교 갔지만 신학교에서 교육받다 성령받으면 그 신학교는 소문나고 정원이 모자르는 일이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세대들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미국에는 여러차례 각성운동이 미국을 변화시켜 왔었다. 한국과 미국교회 다같이 집안싸움하지 말고 보다 큰 대적 마귀와 그 종자들이 만든 악한 사상과 문화와 일대 전쟁을 벌려야 한다. 자유주의 신학사상이 나타날 때, 교회를 죽이는 사상이라 했을 때 그 말을 믿는 자들이 많지 않았다. 미 주류교회,신학교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 열매를 뒤 늦게 맛보면서, 깨닫고 있기나 하는 걸까?
원인도 가까운 원인이 있고 먼 원인이 있다. 우리 교회들은 계시록의 말씀대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 교회를 예수의 몸된 교회로 회복하라.” “처음 사랑을 가지라”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 는 말씀들을 들으며 다시 어쩌면 바보스럽게 다시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가장 어두울 때가 구원의 여명일 수도 있다. 한국교회여, 네 사명이 크다. 다시 일어나라, 목회자에겐 은퇴가 없다고 봐야 한다. 현직목사나 은퇴 목사나 구분은 일하는 목사와 일 않는 목사의 구분이 아니다. 은퇴 목사들도 나름대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 살리는 일에 나서야 하고, 우리는 다시 성경적인 세계관, 가치관 가지고 살면서 사회도 그러한 가치관이 서는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것이 또 하나의 또는 근본적인 사회성화의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