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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목사님 2 = 정푼수를 위한 변명.
민관기
- 1608
- 2023-01-12 03:48:04
간략하게.
청오 정푼수(1874~1951)는 남감리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3.1혁명에 민족대표로 참전한 정목사는 직접 선언식장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며, 원산의 만세항쟁을 배후지도한 후 자진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한편, 선언서에 도장은 본인이 직접 날인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맡겨 대신 날인케 했으나, 후일 재판정에서 이 사실을 인정하여 실형을 살았으며, 영계 길성주 목사처럼 자신은 독립선언서에 찬성하여 날인케 한 것이 아니라고 발뺌(선언이 아니라, 청원이었다라 주장)하여 대신 날인한 남강 이승훈 장로를 비롯한 민족대표들과 교인들에게 절망적 실망+을 안겨주었고, 그 덕에 무죄로 방면이 된것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것이다.
+. [장로교회 초대 목사이자 장로교회 서명자중에서도 대표로 서명한 길목사에 대한 실망이 대단했던 교인들은 길목사가 무죄로 방면되자 주일 날 설교에서 길목사를 강단에서 끌어내려 내동이 쳤다. 하여, 이 교회는 분리되었다. 한편, 길목사는 투옥시 요한계시록을 1만번 독파하였다하며, 석방후 말세론에 입각한 종말론 설교에만 집중하여 교회/교인의 현실도피적 피안의 세계에만 교인들이 천착하게 만드는 천하의 망동을 저지르므로 교회가 민족으로부터 떠나게하고 외면받게 만든 장본인이다. 이는 장로교회의 전통으로 그대로 남아 현실적으로 교회/교인들이 이에 빠져들게 하거나 또는 실망한 청년들은 반대로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되게 만드는 결정적 역사적 우를 범한 것이었다.
이는 현실도피적인 피안의 신앙정도에 머무르게 함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이래 각종 모든 이단의 원류로 작동되었다.]
이 점에서 청오는 매우 괜찮은 인사였더 것이다. 한편, 정목사는 석방후 교역에 더욱 열중하였다. 근 20여 년을 말이다. 헌데, 청오의 삶은 마침 제3대 총리사에 당선된 김종우 목사의 한달여 만의 급서로 그의 운명은 바뀌고 만다. 그가 김종우를 대신하여 총리사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하고, 때는 왜적들의 광포한 파쇼통치가 극에 달해 민족말살 정책으로 황국식민화 정책이 노골화되던 시기였었다.
청오는 이에 맞서 싸울 정신적 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만세항쟁시의 투옥과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재차 투옥되어 옥고를 치루니 나이는 벌써 60대 중반이 되어있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온전키가 어려웠다.
더구나, 그는 감리교회의 주요한 목사중 외국물을 전혀 못먹어 본 몇 안되는 인사로 저 멀리 미국이 일본같은 세계 제 3대 정도의 군사강국을 어떻게 이기거나 말릴 수 있겟냐는 자포자기의 정보부재 상태 인사였기에 시대를 오판 할 수 밖에는 없었기에 주요 교회의 39개소 방매와 국방헌금 납부 그리고 남는 금액을 나누어 먹고, 자신을 불신임하는 류형기, 송흥국, 정일형, 전효배 목사 등의 투옥과 파면을 조장하고 방조하였으며, 더구나 가족원호조차도 하지 않았었다.
정푼수를 위한 변명 :
1. 길목사 보다는 매우 양심적으로 독립선언서 날인을 부인하지 않아 실형을 받았으며, 그 후로도 민족운동에 지속적으로 종사했다.
= 길목사는 무죄방면으로 석방되었고, 교회를 민족운동으로부터 이탈케하는 우를 범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길목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을 기리지만, 훈격을 강등하여 다른 민족대표들보다 1 또는 2등급 아래인 독립장을 민족대표들중 제일 마지막인 2005년에 추서하였다. 독립선언에 참여 안했는데 왜 훈장을 추서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물론, 정푼수. 박희동, 최림은 친일행적으로 김상준은 친북행적으로 무훈이다. 즉, 33인중 29인만 훈장 추서를 받았다.
2. 자발적 변절이 없었다. 김종우의 급서로 억지로 총리사에 오른 측면이 강하며, 강제 산사참배나 강제 교단통합 등에 맞설 빛의 힘이 고갈되어 있었다.
= 우리민족 2,000여 만명중 강제 신사참배 거부 투옥자는 30여 명?(감리교회 20여 명, 장로교회 정확히 모름?)에 불과하고, 순교자는 5명이며, 그중 성직자는 4명이며, 평신도는 1명이고, 감리교회는 성직자가 3명, 평신도가 1명이고, 장로교회는 성직자가 순교자 1명 평신도는 순교자 전무하다.
한편, 감리교회 성직자와 평신도는 순교/순국자이나 장로교회의 주기* 목사는 강제 창씨개명에 응하였기 때문에 순국선열의 반열에는 들 수없다. 주*철 목사는 그냥 종교인으로서 신앙상의 이유로 순교된 것이다. 하니, 주기* 목사가 대한민국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에 추서된 것은 일정하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3. 대한민국 본토 이 외에는 본적이 없던 인생임을 우리는 가만해야 한다. 오판의 근거가 된다. 알면 몰 알겠어요.
4. 그래도, 얼마나 양심적인가? 민족운동에 전혀 복무하지 않은 천주교회로 개종하므로써 더 이상의 감리교회 망신을 덜어주었다. 고맙다, 정춘수!
5. 교회를 방매하여 남은 10만원은 박연선, 걸홍기 등과 나누어 가졌던바 푼수의 가*들은 현재 기*수급자로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반지하에 산단다. 물론, 정부로부터의 독립유공자 예우는 없다.
[내가 바라는 정춘순에 대한 감리교회의 처결은 감리교회 안에 있게 하는 제명이며, 개종 등을 허락하지 않는다.
종교재판으로 망실재산 회수를 청구하며 안 갚으면 영원히 그 집안의 빚으로 남겨놓는다]
이상 전푼수를 위한 변명 끝.
박희도와 갈홍기는 담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