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0강 2:1-10 예루살렘 회의(2:6-10)

최세창
  • 1635
  • 2023-01-18 05:13:46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예루살렘 회의에서 있었던 일들을 진술한 바울은 이어서 그 결과에 대해, 【6】[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저 유명한 이들]을 가리켜, 칼빈(J. Calvin)은 “거짓 사도(교사)들”이라고 하고, 스탐(R. T. Stamm)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이라고 하지만, “열두 사도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E. Huxtable, C. R. Erdman, W. T. Dayton).

초대 교회에서 명성을 떨치던 사도들은 복음의 진리에 관한 한, 사실상 바울에게 더하여 준 것이 없었다. 즉, 그들은 바울이 계시로 알고 있는 사실 이외에 어떤 새로운 교훈을 덧붙여 줄 것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정해 줄 것도 없었다. 이 말은 바울의 사도직이 그들과 상관없는 것이며, 또한 그의 복음이 다른 사도들의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음을 의미해 주는 것이다.

특히, 바울은 “사도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기를 공박하는 거짓 교사들”(M. Luther)을 의식해서, 그들이 내세우는 유명한 사도들을 가리켜,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한다.

[외모]는 프로소폰(πρόσωπον: 신 1:17, 10:17, 16:19, 삼상 16:7, 마 21:16, 막 12:14, 20:2, 눅 20:21, 고후 5:12, 10:7, 갈 2:6, 약 2:1)이며, 인간의 영혼이나 인격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외적 조건들인 재산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 지식의 유무, 혈통, 인종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라이트푸트(J. B. Lightfoot)는 “구약 성경에서 프로소폰 람바네인(πρόσωπον λαμβάνειν: ‘외모로 취하다’)은 필수적으로 불공평의 관념을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중성적이며 나쁜 의미에서보다는 좋은 의미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독립적으로 그리스적인 표현이 될 때에 나쁜 의미가 덧붙여졌다. 즉, πρόσωπον의 두 번째 의미인 ‘탈’이다. 그래서 프로소폰 람바네인은 실제적인 인격에 반대되는 것으로, 인간의 외적 조건들인 지위나 부로 사람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약 2:1의 주석).

인간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보편적인 죄란, 바로 인간을 그 자신으로가 아닌 외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데 있다. 이러한 세상적 판단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영적 문제에 소홀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며, 또한 자신의 성장보다는 자신의 것들을 갖추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인간의 외적 조건이 아니라 속 중심에 있다(삼상 16:7). 시편 기자는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51:6)라고 하였고,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였다(빌 2:5).

인간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인격의 외적 면인 행위로 판단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의 대상이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된다는 사상은 바울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롬 14:10-12, 고전 3:13-17, 고후 5:10, 겔 9:3-8).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어(고전 12:3)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내주하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게 마련이다(갈 5:16, 18, 25).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엡 2:10). 이런 그리스도인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롬 8:1, 34), 오히려 이제까지 받아 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벧전 1:13).

바울의 취지는, 거짓 교사들은 사람(사도들)의 외모를 취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에(행 10:34, 롬 2:11, 엡 6:9, 골 2:25) 하나님을 따라 사는 자신에게는 인간의 지위나 명성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람을 그 중심이 아닌 외모로 취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실수와 잘못을 범하는지 알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중심의 진실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의 외모를 내세우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때가 많이 있다.

다음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에 대해, 【7】[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라고 한다.

[무할례자]는 이방인을 가리키고, [할례자]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다(행 10:45, 11:2, 롬 3:30, 4:9, 5:8, 엡 2:11, 골 3:11, 4:11, 딛 1:10 등). 따라서 바울의 말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은 것이나, 베드로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은 것을 똑같은 것으로 인정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르, γὰρ: ‘왜냐하면’이란 말로 다음 절을 시작한다.)에 대해 바울은,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역사하사]는 에네르게오(ἐνεργέω)로서 ‘행하다’, ‘작용하다’, ‘능력을 주다’, ‘효과적으로 행하다’ 등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유대인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은 베드로나 바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작용하셔서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었다. 결국 초대 교회는 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공동 번역 성서:······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을 나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바울은 더욱 주목할 만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9】[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내게 주신 은혜](고전 3:10, 롬 12:3, 15:15)란 말은 예수를 핍박했던 자신을 사도로 삼아 주신 것과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과 지혜 등을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바울의 선교 활동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M. Luther, W. T. Dayton).

이러한 [은혜](카린, χάριν: 1:3의 주석을 보라.)를 알았으므로 초대 교회의 기둥이었던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❶까지도 바울과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한 것이다.

이 [악수]에 대해, 훅스타블(E. Huxtable)은 “서로가 공통적인 업무에 있어서 우정 어린 동역자로서 간주하는 태도를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헨리(M. Henry)는 더욱 자세하게 “그들이 바울을 자기들과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도로 인정했으며, 또한 그들이 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증표.”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의 선교 분할은 “결정적이고도 확정적인 것이 아니다”(E. Huxtable). 단지 복음 선교에 있어서 주된 역할의 차이를 뜻할 뿐이다. 실제로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 등(행 10:23-48. 참조: 행 15:7, 벧전 1:1)에게 전도했고, 바울도 선교할 때에 우선적으로 회당에서 유대인에게 증거하였다.

끝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총회의 부수적 결과에 대해,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라고 하였다.

[다만](모논, μόνον)에 강조점이 있다. 즉,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의 사도직이나 복음에 대해 문제삼을 것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았다. 따라서 그들의 유일한 부탁은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이란 “당시의 빈번한 기근 때문에 심한 빈궁에 처해 있던 예루살렘 성도들이다”(黑崎幸吉). 구제 사업은 바울이 “만일 이방인들이 유대로부터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롬 15:27)는 심정을 가지고, 부탁을 듣기 전부터 [본래 힘써 행하]는 일이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이 구제 사업에 얼마나 열심이었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고전 16:1). 그리고 고린도후서 8:9과 로마서 15:25-28은 그가 이 구호 기금을 모금하는 일을 얼마나 중요시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구제를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와 은혜의 표현 수단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이방인과 유대인을 성령의 교제 속에 함께 엮는 수단으로서 취급하였다.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자는 그리스도처럼,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2:1-10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베드로를 방문한 지 십사년 후에, 바나바와 할례를 받지 않고도 주님을 영접한 이방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가 그 곳에 간 것은 자신의 복음에 대한 회의나 사도들의 소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말은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확증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 선교의 열매인 이방인 성도들이 다시금 율법의 종이 될까 염려하여 자신의 복음을 예루살렘 교회(사도들)에 설명하였다.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의 복음에 전혀 잘못된 것도 추가해 줄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유대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신 것과 똑같이,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신 것을 인정하였다. 또한, 그들은 바울에게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힘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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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세창, 요한일·이·삼서, 제1부, Ⅰ. 저자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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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01-106.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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