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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평신도 33명을 소개합니다/1월22일주/강단초록/설날.
박영규
- 1765
- 2023-01-21 22:48:29
blog.naver.com/amenpark
성경-로마서16장1-27
제목-평신도 33명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평신도 33명을 소개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하려면 평신도 사역자들의 기도와 도움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1.뵈뵈 집사(롬16:1-2)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로서 여러 성도와 바울 사도에게 보호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보호자는 의, 식, 주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을 의미합니다.
2.브리스가와 아굴라(롬16:4)
바울 사도와 복음 전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부부였고 동역자였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집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고전16;19절)
3.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16:7)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 사도와 같이 옥에 갇혔었습니다.
4.루포의 어머니(롬16:13)
바울 사도는 "루포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라 함으로 어머니 같은 분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어머니 같이 자상하게 주의 종을 도우면 주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뇨 사람 시몬의 부인이며 루포는 구레뇨 사람 시몬의 아들입니다.
5.디모데(롬16:21)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동역자요, 믿음의 아들입니다. 디모데는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행16:2)
6.더디오(롬16:22)
바울 사도의 대서 역할을 하여 편지와 성경을 대필 하는 비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7.가이오(롬16:23)
바울 사도와 성도들의 식사를 제공하여 주었습니다.
8.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롬16:23)
재무를 맡아서 바울 사도의 선교비를 후원하고 재정적으로 도왔습니다.
9.갈라디아교회 성도들(갈4:15)
바울 사도와 복음을 위해서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의 성도들이었습니다.
10.의사 누가(딤후4:11)
의사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바울 사도의 의료선교 담당 동역자로서 로마에서 바울 사도의 옥바라지도 하였습니다.
11.마가.(딤후4:11)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바울 사도의 복음 전도사역에 [유익한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마가복음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마가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거행하실 때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도우며 예수님의 모습을 뵙고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마가의 집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때 마가도 성령을 받은 120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마가의 집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마가네 집이 베드로 사도가 옥에서 나와 사도들과 목회한 예루살렘교회 입니다(행12:1-19)
베드로 사도가 마가를 아들이라고 했습니다(벧전5:13)
마가가 이집트의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교회를 세웠습니다.
마가는 레위 지파입니다.
마가는 바울 사도를 옥바라지를 하는 좋은 협력자 였습니다(몬 1:24, 딤후 4:11)
마가복음을 기록 후(A.D. 67-70년경)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순교자입니다.
마가와 같이 교회와 목회에 도움이 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처녀 마리아에 대해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예언이 되었습니다(사7:14)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고 마리아가 생명을 걸고 메시야 예수님의 잉태를 받아들였습니다(눅1:25-35)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예수님을 움직여 메시야의 때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습니다(요한2장)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요19:25)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강림을 기다려 주님의 모친 마리아도 성령을 받았습니다(행1:14)
13.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요19:25)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요19:25)
14.막달라 마리아
갈릴리 해변 마을 [막달라] 출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귀신 들린 마리아를 고쳐주셨습니다(눅8:2)
예수님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마27:55-56)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에 까지 갔습니다(마27:61) 부활 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뵈었습니다(막16:9) 마리아는 자신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눅8:2-3)
15.예루살렘 베다니의 마리아
마르다의 동생이며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 입니다(요11:15)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듣기를 선택하였습니다(눅10:42)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열고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어 드렸습니다(요12:3)
16.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마가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성만찬을 거행하셨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만찬을 준비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집에서 사도 맛디아를 가룟유다 대신 보선하였습니다.
마리아의집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집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헤롯왕의 핍박이 시작되어 야고보 사도가 순교를 당하고 베드로 사도는 옥에 갇혀 군사들이 겹겹이 지키는데 베드로 사도가 옥중에서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자는데 군사들이 옥 밖에서도 지키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 사도를 깨워 일어나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천사의 안내를 따라나서니 옥문이 저절로 열려 거리로 나오게 되어 정신을 가다듬고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 보니 여러 성도들이 모여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성도들이 기도를 드리는 장소로 제공이 되었습니다(행12:12) 행12:5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헤롯의 명령으로 옥에 갇히게 되었고 교회는 베드로 사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옥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헤롯이 유월절 후에 베드로 사도를 백성들 앞에 끌어내어 야고보처럼 처형하려고 했으나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통해 옥에서 구출을 받게 되었고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행12:1-12) 성도들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17.로마의 마리아
로마의 마리아가 성도들을 위해 많이 수고했다고 바울 사도가 칭찬하였으며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었습니다(롬16:6)
18.빌레몬(몬1:2)
빌레몬은 빌레몬 집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집을 교회로 사용토록 내놓았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레몬 때문에 기쁨과 위로를 얻었습니다.(몬1:7) 바울 사도의 말 보다 빌레몬은 더 행하는 성도였습니다(몬1:21)
19.오네시모(몬1:10-12)
옥중에서 전도하여 믿게 된 오네시모는 바울 사도에게 유익 되고, 바울 사도의 심복이라 하였습니다. 심복 같은 성도가 필요합니다.
20.오네시보로(딤후1:16-18)
바울 사도를 자주 유쾌하게 해 주고 바울 사도가 로마와 에베소에 있을 때에 부지런히 바울 사도를 찾아 만나고 섬겼습니다.
21.스데바나.(고전16:15-18)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하였고, 성도들과 바울 사도를 시원케 해 주는 이 사람들을 알아주라고 하였습니다.
22.빌립보 성도들(빌4:1-3)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 사도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글레멘드와 부녀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 12진주 문에 들어갑니다(계21:27)
23.알렉산더(딤후4:14-15)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 사도에게 해를 많이 끼치고, 바울 사도를 많이 대적하였습니다.
24.아볼로(행18:27-28)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25.루디아(행16:13-15)
소아시아의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옷감 무역상) 루디아를 빌립보 강가에 기도처가 있는가? 바울 사도가 일행과 함께 기도하러 강가에 나가서 만나게 된 귀부인 입니다. 강가에서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주님을 더욱 잘 믿게 된 여성입니다. 유럽 최초의 교회가 루디아의 저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디아 같은 성도가 있으면 교회가 빨리 세워집니다.
26.실라(행16:25)
바울사도의 선교에 동역하고 옥에도 같이 들어감.
27.유스도(골4:11)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며 바울 사도에게 위로자였습니다.
28.마리아.(롬16:6)
성도들을 위해 많이 수고한 마리아.
29.아벨레.(롬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은 성도입니다. 인정받는 성도가 됩시다.
30.스데반 집사
스데반 집사는 성경에 능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하기 전에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순교를 했습니다(행7:55-60) 스데반의 순교하는 모습이 사울이라고 하는 바울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31.빌립 집사
빌립 집사님이 성령의 지시대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수레를 타고 귀국하며 이사야서를 읽는데 빌립이 성령의 지시대로 수레에 올라 이사야서와 예수님에 대해서 복음을 전하니 내시가 세례를 받고 기쁘게 귀국하였습니다(행8:26-39) 내시를 통해 에디오피아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32.무디 선생의 어머니 [벳시] 여사
19세기가 낳은 세계적인 대 부흥사 무디 선생의 이면에 위대한 어머니 벳시 여사가 있었습니다.
무디를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서 그의 확신과 겸손과 덕망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록 학교 교육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했으나 그는 영력이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일에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덕을 베풀 줄 알았습니다.
무디 선생의 이면에는 어린 아들의 마음속에 보다 높은 차원의 신앙을 심어주시고 길러준 어머니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극도로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7남 2녀를 정성과 사랑을 아끼지 않고 길렀던 무디의 어머니 뱃시 여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841년 5월. 41세의 젊은 나이에 무디의 아버지는 결혼 생활 12년 6개월 만에 노동에 지쳐서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늘 밝은 희망이 서린 눈길로 내일을 기대하며 아이들 교육에 성의를 다하라고 말하던 남편, 빈곤과 많은 자녀들 때문에 걱정하는 아내를 다정하게 위로해 주던 남편을 생각하면서 뱃시 여사는 자녀들이 없는 때면 한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에 지필 장작을 구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다행히도 불쌍한 이들에게 동정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나타나서 이들은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땔감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벳시 여사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저희들을 돌보아 주시니 앞으로도 영원히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들은 어린 무디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엇이나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어머니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서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이와같이 무디는 어머니의 기도로 힘을 얻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갔습니다.
무디는 같은 동네에 사는 에베랫 목사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으며, 이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에베랫 목사는 무디의 가정을 위해 많은 관심과 염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불친절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과부 혼자서 여러 남매를 기르려면 힘이 들 터이니 어린 자식들을 남의 집 양자나 양녀로 보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뱃시 여사는 남의 집 양자로 보내면 허기진 배를 채울 수는 있겠으나 인간을 기르고 신앙심을 심어주는 교육은 어려울 것으로 알고, 귀중한 어린 생명들을 위해서 어떠한 고난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자녀들을 함부로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자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하는 거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다. 그렇지만 너희들은 모두 나를 도와야 한다.”
이 말을 들은 자녀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을 깊이 깨닫고 힘써서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아이들이 때로 말썽을 일으키면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본 아이들은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 가정의 변함없는 일과의 하나는 식구들이 난로 둘레에 모여 앉아 어머니의 성경 이야기, 옛날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정신적인 양식이 무디의 영혼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실수나 장난을 꾸중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타일러도 순종하지 않고 고집을 피울 땐 엄하게 벌을 주거나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이 자랄수록 관대하고 따뜻하게 대했으므로 집안은 항상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만은 한결같이 엄격하게 지키게 했습니다. 책임감과 약속을 강조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훌륭한 일임을 거듭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궁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집에 얻으려고 오는 사람에게 관대하게 나누어 주어 자녀들에게 남을 돕는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녀의 이 같은 행동에 주위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주일엔 자녀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교회학교에 출석하도록 했고, 교회 갈 때는 늘 하얀 깃이 달린 깨끗한 웃옷을 입혀서 보냈습니다. 온 식구가 하루 종일 예배당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찬송가를 배우고 저녁예배 후에 집으로 돌아오는 주일은 가족들에게 대단히 즐겁고 보람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한 절씩 외웠습니다.
열일곱 살이 되자, 무디는 판에 박힌 듯한 가정생활에서 더 넓은 사회에 뛰어드는 모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도끼로 쪼개고, 톱으로 켜는 나무패는 일을 그만두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도시로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등지고 맨손으로 나온 무디는 외롭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학벌도 기술도 없었고 나이도 어려서 취직할 곳도 없었습니다. 거리를 헤매던 끝에 그는 신문사에 배달부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그마한 실수로 실직당하고 구둣방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을 해 보아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사의 질시와 사회의 냉대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좌절을 경험하는 가운데 그의 어머니로부터 기도에 힘쓰라는 간곡한 부탁과 자신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드린다는 편지를 받고, 무디는 다시금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겸손해야 하고 저급한 자존심을 버려야 함을 깨닫고, 착실히 교회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애쓴 무디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차츰 함께하기 시작했고 많은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날이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디는 거리에서 노방 전도를 하는 한편, 교회가 없는 벽촌에 교회학교를 세워서 많은 아동들을 교육시켰습니다. 마침내는 링컨 대통령이 와서 축복해 줄 정도로 그의 사역은 규모가 커졌습니다. 그는 이제 구둣방 일을 그만두고 갈급한 영혼들을 먹이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전도자의 생애를 시작하였고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가난과 냉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자신의 연약한 손으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 낸 어머니 벳시 여사의 신앙교육과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무디 선생이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을 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네이버 성돌네의 블로그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D.L. 무디는 1850년대 후반에 거칠기만한 시카고 거리의 사람들을 상대로 큰 성공을 거둔 구두 세일즈맨이었다. 그의 능숙한 구두 판매술은 마침내 미국의 가장 위대한 부흥사가 되는 능력으로 승화되었다. 무디는 아이러 쌩키를 자신의 찬양 동역자로 영입하여 2년간 영국 제도를 순회했다. 그들의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수백만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미국의 도시들을 향해 복음의 말씀을 전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도 없이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무디의 사역에 영향을 받았다. 무디 자신은 비록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오늘날까지 명문으로 남아 있는 세 개의 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신학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으면서, 빅토리아 시대의 기독교를 새롭게 했고, 두 개의 기독교 출판사를 설립했다.
무디의 사역 파트너는 음악 사역자 아이러 쌩키! 두 사람은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로 한 사람은 감동적인 노래로, 또 한 사람은 열정과 확신에 찬 설교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했다. 만일 쌩키가 없었다면, 무디의 전도 열매는 그렇게 크지 못했을 것이다. 쌩키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했고, 열려진 마음속으로 무디의 설교가 파고 들어간 것이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하나님이 한 시대의 복음화를 위해 맺어준 다윗과 요나단이요, 바울과 실라였다. 무디는 인간적으로 볼때, 투박한 시골 출신의 무학력자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미천한 그를 기거이 사용하셨다. 독자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식을 무디의 생애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출처-기독신문사,
저자:데이비드 베네트 2001-12-28
33.록펠러가의 믿음-록펠러와 어머니 엘리자 데이비슨 여사.
록펠러가의 믿음
록펠러 어머니의 십계명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아무도 원수로 삼지 말아라.
4. 예배시간에는 항상 맨 앞자리에 가서 앉아라.
5.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만들어라.
6.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7. 새벽마다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8.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9. 아침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10.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록펠러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생활을 잘 했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어머니께서 축복을 받으려면 교회를 세우라고 해서 리버사이드 교회를 세웠습니다.
록펠러가
미국 명문 시카고 대학을 설립하였는데 시카고 대학에서만 52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록펠러는 백만평이 넘는 12개의 종합대학을 설립했으며, 수십 개의 연구소와 교육재단, 병원, 의료협력기구를 세우고 자연사 박물관과 문화 관련 사업 등을 하고 4,982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가 죽을 때 남긴 돈이 14억 달러로, 이를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266억 6천 9백만 달러(26,669,027,777달러)로 현재 한국 돈으로는 31조 5,361억원이나 됩니다.
록펠러는 이 돈을 그가 세운 록펠러 재단, 일반교육재단, 록펠러 의학연구소 등에 모두 기부하였는데, 지금도 그가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이러한 재단들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록펠러는 자신의 자서전에, "나는 모든 사람이 정직하게 돈을 벌도록 돕는 것과 되도록 모든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나의 종교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한때 의사들은 록펠러가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그는 98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록펠러는 "나의 어머니는 가난하게 사는 농부였지만 나에게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믿음의 유산 물려 주셨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설명하기를,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물려 주신 것은 십일조 신앙이었습니다. 내 나이 8살 때 어머니는, "이제 너 혼자 주일학교에 가라."고 교회에 보내시면서 일주일 쓸 용돈 20센트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그중 2센트는 너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십일조를 바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록펠러는 그 말씀에 따라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어머니의 당부를 어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기자에게 말하기를, "그렇게 살아 보니 내 나이 50이 되자 어느새 부자가 되어 있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록펠러는 나중에는 십일조만 관리하는 직원을 40명이나 별도로 두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믿음이 록펠러에게 유전이 되었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는 신앙의 바른 자세 10가지를 록펠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 사는 삶이 우리의 삶을 복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출처]말씀을 따라 살면 |작성자 나이스데이
록펠러가 헌금해서 세운 리버사이드 교회는 에머슨 포비딕 이라는 목사님이 설립 계획하고 록펠러 주니어 가 경제적인 지원을 하여 1930년에 완공된 교회입니다.‘리버사이드교회(Riverside Church)는 이름처럼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자리한 리버사이드 교회는 흑인 인권을 위해 힘쓴 마틴 루터킹 목사, 넬슨 만델라 등이 연설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출처] 록펠러가 세운 리버사이드 교회|작성자 하늘문
제가 속한 서울남연회 영등포지방 00교회 0장로님 부부는 부부가 장로이신데 목회와 선교를 위해 재정의 십일조를 10년 이상하십니다. 그 교회 재정은 년 5억-7억정도 됩니다. 저의 아내와 우리교회 최권사님은 주님의 교회와 목회를 위해 40일 금식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방1칸에 전세를 살며 올해 70세가 되며 파출부로 다니시는 0권사님은 매월 첫 주 성찬식을 위해 성찬을 10년 이상 준비하고 교회 청소와 교회 주일 식사를 10년 이상 맡아서 충성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도생활, 선교헌금, 십일조생활, 매주 감사생활, 매월 옥합헌금을 드리고 있습니다. 0권사님의 자녀가 선교사님의 사모가 되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훌륭하고 모범된 성도들과 동역자가 있으면 목회자는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선교와 영혼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영혼 구원을 위하여, 목회자와 선교사를 위해서 아론과 훌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충성하시고 좋은 역할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서울제자교회 전 담임목사, 동대문교회 협동목사
*위안부소녀 기념교회 목사 박 영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