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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2강 2:15-21 믿음의 개요Ⓐ(2:15-19): 율법(양심) 행위 구원 아님
최세창
- 1514
- 2023-02-06 03:28:12
F. 믿음의 개요[2:15-21]
바울은 베드로를 면책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복음의 개요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는 이방인에 대한 유대인의 특권을 의식해서, 【15】[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라고 말한다.
[우리] 곧 “바울과 베드로”(E. Huxtable)는 날 때부터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이 표현은 그들의 특권, 즉 하나님께서 선민으로 삼아 주신 것, 율법을 주신 것, 그리스도를 유대인으로 나게 하신 것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방인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이다(롬 1:18-32).
여기서 “바울은 유대인의 특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권이 구원의 복음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J. B. Lightfoot).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 무가치성에 대한 고백이다”(J. Dow).
바울은 단정적으로, 【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주장한다.
[의롭게 되는]은 디카이우타이(δικαιούται)로서 바울 신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이 말은 법정 용어로서 “의롭다고 선포한다는 뜻이지, 결코 의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R. C. H. Lenski, R. T. Stamm).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디카이우타이는 “죄인이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무죄로 선포되고 용납되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구원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R. T. Stamm).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윤성범 박사는 “여기의 율법은 십계명이 아니라 의식적 율법이다.”라고 하나, 실상 바울이 뜻하는 것은 루터(M. Luther)나 스탐(R. T. Stamm)의 말대로 전체로서의 율법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율법을 주셨다고 하는데, 그것은 마음에 쓰여진 양심의 법이다(롬 2:14-15).
[율법]은 인간의 범법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갈 3:19),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롬 7:12). 그러나 이 율법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다(롬 3:20, 7:7, 13). 따라서 율법은 인간에게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를 찾도록 해 주기는 하나(갈 3:24),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이 인간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해 줄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게다가 율법은 죄인의 범죄를 막을 힘이 없으며(롬 7:22-23), 오히려 죄를 짓도록 충동질한다(롬 7:7). 또한, 율법은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것으로(롬 7:13), 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죄를 증가시키며(롬 5:20), 심지어 죄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롬 7:9-10). 이러한 율법의 역기능은 인간의 육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힘 때문이다. 바로 이 인간의 육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힘 때문에 율법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롬 7:11, 18, 23).
죄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으며, 또한 죄로 인한 자아의 분리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여 내적 갈등과 분쟁으로 무력해지며, 죄로 인한 인간 상호간의 분리는 관계 존재인 인간의 관계성의 파괴로 자기 파멸에 빠진다. 따라서 인간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한 바울은,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라고 하였다.
인간은 믿는 사람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신(롬 10:4)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1:23의 주석을 보라.)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믿음에 의해 구원(의)를 받았다고 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다”(R. T. Stamm).
바울 자신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고 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구원을 얻는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라고 하였다.
다시금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라고 못박는다.
[육체]는 사룩스(σάρξ)로서, ‘물질로 구성된 육체’(롬 2:28, 고전 7:28, 12:7, 15:39, 골 1:24), ‘성령과 대립되는 인간 자신에 의한 삶’(롬 8:9, 갈 3:3, 4:29, 5:17), ‘자연인’(롬 4:1, 9:5, 8, 고전 1:26, 29, 10:18, 고후 4:11, 5:16, 7:25, 10:3, 11:18, 갈 2:16, 4:23, 5:11, 24, 6:8, 12, 13, 엡 2:3, 11, 6:5, 빌 3:3, 4, 골 1:18, 3:22, 딤전 3:16, 몬 16), ‘인간의 나약성 및 한계성’(롬 6:19, 8:3, 갈 4:13), ‘인간적 조건’(빌 3:3, 4) 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성을 지닌 나약한 인간으로서는 율법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바울은 율법의 의를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17】[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1:22의 주석을 보라.
이 구절은 베드로의 잘못된 태도를 염두에 두고 비판한 것 같다(R. C. H. Lenski, E. D. Burton, R. T. Stamm). 즉,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자유로이 먹고 지내다가 다시금 율법주의로 돌아가 그들과의 공동 식사(애찬)를 끊었다.
결국 그의 행동은 공공연히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임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복음)은 자연히 율법을 버리게 하기 때문에 율법주의적 입장에서 본다면, 결국 믿음의 대상인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죄(율법 위반)를 짓게 하는 자가 되고 만다. 이런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❶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죗값을 치러 주신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18】[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라고 말한다.
바울이 [헐었던 것]을 가리켜, 스탐(R. T. Stamm)은 “단순히 의식적 율법의 어떤 규칙이 아니라, 전 율법 곧 믿음과 공로에 의한 구원의 도에 있어서 필수적인 토대로 생각된 율법 전체이다.”라고 잘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 이들로 미코라스키(S. J. Mikolaski), 드월프(L. H. Dewolf), 페로운(E. H. Perowne)이 있다.
어드만(C. R. Erdman)은 “만일 율법을 내던져 버렸던 것이 옳다면 이제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헨리(M. Henry)는 더욱 자세하게 “만일 모세 율법의 준행이 의롭게 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 온 내가 (또는 다른 사람이), 이제 와서 말이나 행위로 율법이 필요하다고 가르치거나 그렇게 암시를 한다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불결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요 죄의 징벌 아래 거하는 것이 된다. 달리 말하면, 나는 남을 기만하고 거짓말한 자로서 또한 자신과 일치하지 않게 행동한 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바울의 진리를 위한 배타적 태도를 배워야만 한다. 오늘의 교회와 신학은 자칫하면 잘못된 아량으로 진리 아닌 것을 용납하거나, 묵인하며 혹은 진리와 혼합해 버리는 위험성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임을 주장해온 바울은, 이제 그의 체험을 통해 얻은 복음의 오의(奧義)를 설명하고 있다.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여기의 [율법]을 가리켜, 의식적 율법이라고 하는 학자들❷이 있으나, 다음 구절들을 미루어 보아 모든 율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율법 종교에서 복음의 종교로 전환되었던 인생의 체험❸에 대해,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들어 있다.
바울 자신에 의하면, 율법이 없을 때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범법 때문에 율법을 주셨고(갈 3:19), 그 율법을 통해 모든 인간이 죄를 알게 하셨다(롬 3:20, 7:3). 그러나 율법은 범죄를 막을 힘이 없으며 오히려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그 법이 죄의 법에 끌려가는 자신을 막지 못하는 것을 경험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롬 7:22-23). 또한, 그는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탐심을 갖게 한다고 하여 율법이 죄를 짓도록 충동질하는 것을 말하였다(롬 7:7). 율법은 죄로 심히 죄되게 하는 것으로(롬 7:13), 죄를 드러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죄를 증가시킨다(롬 5:20). 그리고 죄는 기회를 얻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죽게 만든다(롬 7:11).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인간에게 저주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갈 3:10, 13).
칼빈(J. Calvin) 역시 “율법 자체가 그 추종자들을 죽인다.······율법 그 자체 안에 우리를 죽이는 저주가 있다.”라고 하였다.
결국 바울은 율법 때문에 율법을 향해 죽었다는 것이다.
[율법을 향해 죽었나니]란 율법에 대한 복종을 하나님께 용납(의)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을 포기했음을 의미하는(R. T. Stamm) 동시에, 율법과 관계없는 새 영역(S. J. Mikolaski)인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을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양심의 법)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다”(J. B. Lightfoot).
바울은 율법을 향해 죽은 이유에 대해,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라고 하였다. 거짓 사도(교사)들은 “율법을 따라 살지 않는 한, 너희는 하나님을 향해 살지 못한다. 즉, 너희는 하나님의 눈에는 죽은 것이라”고 하나, 바울은 정반대로 하나님을 향해 살기를 원하면 너희는 율법을 향해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다(M. Luther).
하나님을 향해 사는, 인간의 기본적인 의무 이행을 위해 우리는 율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일이 가능해지는 길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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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J. Calvin, M. Henry, R. C. H. Lenski, 黑崎幸吉, 윤성범, 이상근.
2) 참조: J. Calvin, M. Henry, R. C. H. Lenski, 黑崎幸吉, 윤성범, 이상근.
3) M. Henry, E. Huxtable, W. Barclay, C. R. Er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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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11-117.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