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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랭글러
이경남
- 1524
- 2023-02-16 00:08:10
-이경남
은퇴를 하게 되면
지프 랭글러를 살 거야
굳이 새 차가 아니어도 좋아
맨 먼저 강릉엘 갈 거야
경포대가 좋아서가 아냐
35번 국도를 타고
강릉에서 부산까지 350km를 달릴 거야
왼편으로 우뚝 솟은
한반도의 등줄기
태백산맥을 내리 달리면서
쪼그라진 기도 다시 펴고
구비구비 맑은 계곡물이나
바위들을 바라보며
더럽혀진 마음도 씻어내고
자꾸 약해지는 마음도 굳게 세울 거야
마침내 부산에 이르면
그 유명한 자갈치 시장에 들려
회도 한 접시 배불리 먹고
다시 남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며
한려수도 그 청정한 바다를 볼 거야
아니 이 바다는
제주도를 넘어
마라도를 넘어
이어도를 넘어
남지나로 이어지고
그 너머 호주와 인도양
그리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으면
아메리카 동부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바다
그 무한한 세계를 마주하면 내 가슴도 활짝 펴질 거야
그러다가 목포에 도착하면
다시 회 한 접시 배불리 먹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강화도에도 가고
판문점에도 가고
판문점에 이르면 호통을 칠 거야
당장 문 열으라고
북녘에 있는 조카들이
굶주리고 있지 않으냐고
몸이 아파 누워있지 않느냐고
추위에 떨고 있지 않느냐고
그래 쌀을 가져오고
소고기 돼지고기도 가져오고
아스피린 영양제도 가져오고
두툼한 잠바도 이불도 가져 왔다고
노쇠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린 조카들이 얼마나
남쪽에 있는 손자손녀들을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를
삼촌 외삼촌을 기다리고 있는지 아느냐고
그래 문이 열리면
황해도 신천 구월산 밑 박달리
이곳이 장당경
고조선 세번째 수도였을 만큼 명당이라는데
그 부친의 고향 집터도 찾아보고
용천수가 샘 솟는 30정보 넓은 우리 산도 밟아보고
그리고는 다시 판문점을 지나 돌아올 거야
은퇴를 하게 되면
지프 랭글러를 살 거야
새차가 아니라 중고차라도 사서
그렇게 내 사랑하는 조국의 구석구석을
할 수만 있다면
금강산을 지나
묘향산을 지나
개마고원을 지나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을 지나
윤동주의 명동촌까지 다
밟으며 살 거야
2023.2.15.수요일 오후 부친의 묘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