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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5강 아브라함의 예[3:6-9]:예수 탄생 전(예수 모르는 사람)의 구원
최세창
- 1822
- 2023-02-27 02:59:34
경험적인 사실에 의해 갈라디아 교인들을 논박해 온 바울은, 이제는 복음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예와 성경으로부터 증거하고 있다.❶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복음의 진리를 증거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이란 더 이상 논쟁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이며(W. T. Dayton), 그의 권위는 결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어드만(C. R. Erdman)도 “아브라함은 유대 민족의 조상이며 영적 축복의 근원이었으므로, 유대 교사들이 그에 대하여는 크나큰 자랑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을 수 있도록 모세 율법에 복종한다고 말하였던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율법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선행이었고, 그를 구원한 것은 그의 순종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5:6(LXX)에서 인용한 것이며, 또한 로마서 4:3-5에도 인용되어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경우에 근거해서 그의 믿음은 그를 구원한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이 선행 곧 순종의 근거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❷ 또한, 아브라함의 할례는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방편이 아니라, 그 이전에 믿음을 통해 얻은 의의 표적이요 봉인이었다(롬 4:9-11). 아브라함의 의가 할례를 받기 이전이요, 율법이 있기 전 430년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율법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결국 바울의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인격의 변화가 아니라, 오히려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비록 의롭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믿는 그를 의로운 존재로 간주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R. C. H. Lenski). 이것이 바로 칭의이다.
칭의의 사상적 배경은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법적인 의미를 갖는다(사 5:23, 출 23:7). 다이스만(A. Deissmann)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소를 당한 인간이 고소가 취하된다. 그는 정죄가 아니라 자유로 판정된다. 이러한 무죄 석방이 바울의 칭의이다.”❸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칭의란 죄가 없는 자에 대한 무죄 석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이다”(M. Luther).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이다(롬 3:12, 22, 26, 빌 3:9). “이 은혜에 의해서 인간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즉 생명에의 참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J. S. Stewart).❹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의 혹은 선포된 의란,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❺ 이 선물은 과거에 주어지는 것이거나 미래에 주어질 것이 아니라 현재에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 의롭다는 무죄 선포도 현재적인 것이다.❻
그러나 그 칭의의 완전한 소유는 미래의 영역에 놓여진다. 이 점에 대해, 다이스만(A. Deissmann)은 “우리는 칭의에 관한 바울의 사상에서 현재적 소유의 의식과 미래의 충분한 소유의 기대 사이의 역동적 긴장을 본다.”❼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아브라함의 경우에서 본 것처럼, “칭의란 하나님의 용서가 내포된 것으로”(H. A. A. Kennedy),❽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 완전한 소유는 미래에 성취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주장한 바울은,【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강경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알지어다]는 명령형인(AV) 기노스케테(γινώσκετε)로서, 원문에는 첫머리에 있다.
이 낱말은 기노스코(γινώσκω)로서 단순히 ‘초경험적으로 안다’, ‘영감으로 안다’, ‘관념적으로 안다’ 등을 뜻하는 오이다(οἶδα)와 달리, ‘체험적으로 안다’, ‘체득하다’ 등을 뜻하는 말이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는 구원받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 성령을 좇아 사는 생활을 통하여 얻는 영적 진리나 영적 사실을 아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믿음에서 난 자(黑崎幸吉, 이상근), 또는 믿음의 사람들이며,❾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10절 전반)과 대조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자손)이라고 자칭하였고,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유업으로 받는다고 생각하였다(黑崎幸吉).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천국행 여권과 같은 것이었으며”(R. T. Stamm), 대단한 자랑거리이었다(요 8:39. 참조: 마 3:8).
그런데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아들]은 그의 혈통인 유대인이 아니라, 영적 자손인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사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것이며, 자신의 자손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여기셨다는 것이다(창 15:4-6).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아브라함을 믿는 자들의 조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원리 위에 그들의 표준을 취하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다. 즉, 믿음의 생명의 계승자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같은 영적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M. C. Tenney).
이와 관련해서 루터(M. Luther)는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하고 있다. “모든 과거의 약속은 오신 그리스도 안에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족장들의 믿음도 그분 안에 포함되므로 족장들의 믿음은 우리의 것과 같다(행 15:10-11, 고전 10:4). 차이가 있다면 족장들의 믿음은 오실 그리스도(요 8:56, 58)를 믿는 믿음인데 비해, 우리의 믿음은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오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에 있어서 단순한 주인공으로 존재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서 존재하시며 하나님의 종들 속에서 역사하고 계셨다(벧전 1:10-12, 엡 1:4).
결과적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바로 그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이방인들의 구원 문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유대주의자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의)을 얻으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주장을 일축하고,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라고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이방]은 타 에트네(τὰ ἔθνη)로서 ‘이방’(RSV), ‘이교도’(KJV), ‘민족 또는 국민’(마 25:32)의 뜻인데, 여기서는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의 말은 유대인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율법 또는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 곧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구원의 진리는 새삼스럽게 대두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의인법으로 사용된 [성경](이외에도 요 7:38)은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E. H. Perowne, 윤성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셨다. 이 [복음]을 가리켜, 벵겔(J. A. Bengel)은 “복음의 시대 이전의 복음”이라고 일컫는다. 그 복음의 내용에 대해, 바울은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라고 창세기 12:3과 18:18(LXX)을 표현만 약간 바꾸어 인용하고 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 안에서,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 안에서”(M. Henry)나 아브라함으로 인하여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하여”❿ 모든 인간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자세하게 말하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점은 바울의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라는 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할례를 받기 전에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었으며,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은 [복]⓫ 곧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창 15: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루터(M. Luther)의 말대로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참조: 요 8;56).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물론 그분의 성육 이전에, 그분 안에서 복 곧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고전 2:7, 엡 1:4, 3:11, 벧전 1:10-11)을 믿음으로 구원(의)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삼위일체 신관에 근거해 볼 때, 영원부터 선재하신 그리스도⓬(엡 1:4, 빌 2:6, 골 1:26, 요 1:1-3, 8:38 등)를 믿은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성령을 믿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 것은, 영원부터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구원 효력에 근거해서 성취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 효력의 영원성 안에서 이루어진 의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원한 구원 효력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근거하는 것이다.
약속의 의미는 약속이 맺어진 순간도 약속이 성취된 순간도 아니다. 약속이 맺어진 순간은 약속이 성립된 것이고, 약속이 성취된 순간이란 그 약속이 폐기된 것이다. 약속의 의미는 약속이 맺어진 이후부터 약속이 성취되기 전까지의 모든 기간에 있다. 즉, 그 기간 내내 약속의 효력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인과 손님이 그 달 말일에 백만 원 어치의 물건 값을 주고받기로 약속이 되면, 그때부터 말일 전까지는 그 돈을 내지 않고도 그 돈을 준 것과 똑같이 물건을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선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복(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이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효력을 똑같이 얻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이전에 살던 사람들, 또는 그분의 십자가에 의한 구원의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도 영원부터 선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예정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받을 수 있다.
설사 그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몰랐다 해도, 하나님을 알고 믿었다면 실제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아브라함과 같이 축복 곧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성부와 성자가 한 실체로서 영원한 관계성을 가진 관계 존재이기 때문이다(고전 1:24, 엡 1:4, 빌 2:6, 골 1:15, 요 1:1-3, 18, 8:19, 10:30, 14:9, 16:15).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믿음과 축복의 근원이 아니라, “믿음과 축복의 전형이요 표본이라 할 수 있다”(J. Calvin, E. Huxtable).
3:6-9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유대인에게 있어서 더 이상 논쟁할 수 없는 증거이며 결정적인 권위를 가진 아브라함을 들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진리를 입증한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또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선재하신 그리스도, 곧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며 그와 같이 복, 즉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이 진리가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하신 복음의 시대 이전의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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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참조: M. Luther, J. Calvin, R. T. Stamm, 이상근.
2) 참조: 최세창, 야고보서, 2:23의 주석.
3) A. Deissmann, op. cit., pp. 168-169. 참조: C. H. Dodd., op. cit., p. 119.
4) J. S. Stewart, op. cit., p. 249.
5) Ibid., pp. 243-244. H. A. A. Kennedy, op. cit., p.136. J. Knox, op. cit., p. 157.
6) 참조: R. Bultmann, op. cit., p. 274.
7) A. Deissmann, op. cit., p. 170.
8) H. A. A. Kennedy, op. cit., p. 137.
9) M. Luther, R. T. Stamm, E. D. Burton, S. J. Mikolaski, E. H. Perowne,
10) M. Luther, J. Calvin, E. H. Perowne, 黑崎幸吉, 윤성범.
11) J. Calvin: 성경에서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영원한 생명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2) J. S. Stewart, op. cit., p. 316.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선재에 관한 교리는 형이상학적 명상이라기보다는 구속의 평범한 사실들로부터 얻어진 자기 확증적 추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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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3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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