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에 쓴 물인 마라

최세창
  • 1438
  • 2023-02-26 00:28:52
https://youtu.be/6SlC3pcHpYg

<출애굽기 15:22-27>
22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 새 26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7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1. 시작하는 말

모든 인간은 정처 없이 떠돌면서 쓰라리고 괴롭고 외로운 생활을 하다가, 정처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나그네입니다. 그런 인생을 면하고 싶어서, 혹은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욕심껏 성공과 출세에 목을 매기도 하지만, 반드시 늙고 병들고 죽게 되어 있는 한 별로 다를 것은 없습니다.

나그네의 특징은 떨어지는 것입니다. 돈도 떨어지고, 신발도 떨어지고, 기력도 떨어지고, 숨도 떨어지고,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베드로전서 2:11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라고 했습니다. 교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정처를 향해 가다가, 사후엔 영원한 정처인 천국으로 가는 나그네입니다.

2. 마라 때문에 원망한 백성과 기도한 모세

출애굽 후에,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이스라엘은, 뒤쫓던 애굽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에 경탄을 금치 못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개선가를 부르며 승전 잔치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를 세상에 없는 지도자요 영웅으로 여겼고, 모세가 죽으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모세를 향해 존경과 환호와 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정착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처인 가나안 땅에 이르는 경유지일 뿐이었습니다. 모세는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수르 광야 곧 에담으로 들어간 후에, 거기서 사흘 길을 행했지만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그네들이 장정만 약 60만 명이니, 딸린 식구까지 치면 약 240만 명이 아닙니까? 노인으로부터 갓난아이에 이르는 그 엄청난 나그네들의 여행길이 광야인데, 수르 광야에서 사흘 길을 가면서도 물을 얻지 못했으니 괴로움과 고통과 고민이 오죽했겠습니까? 먹을 것인들 충분했겠습니까? 아이들과 가축들이 울고불고하다가 탈진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병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쉴 만한 푸른 숲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그들의 험난한 나그넷길의 책임자인 모세의 고통은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모세 자신의 고통은 물론, 백성들의 고통을 하릴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괴롭고 아픈 마음, 게다가 그새 돌변한 백성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와 불평과 원망의 화살을 받는 고통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요 영적 지도자답게 백성들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와 불평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사흘 길을 인도하다가 ‘쓴’이라는 뜻의 마라라는 오아시스에 이르렀습니다.

누군가가 “오아시스다!”라고 외쳤을 때, 약 24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의 환호성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노인으로부터 갓난아이에 이르는 그 엄청난 수의 나그네들과 가축들이 광야에서 마실 물조차 없어서 얼마나 고생을 해 왔습니까? 그 끔찍한 고생 끝에 만난 마라의 물을 배가 터지도록 마셔야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모금도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펼쳐진 물, 극심한 갈증을 해소할 물을 보면서도, 써서 마실 수가 없는 백성들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나 감정적 사고와 판단으로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신앙적 사고와 판단이나 신학적 사고와 판단으로는, 그야말로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생긴 대로 논다’고, 400년이 넘는 애굽의 종살이를 통해 만들어진 백성들은, 영도자인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했고, 모친의 믿음과 애굽의 왕족 교육으로 만들어진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사람이란 다 생긴 대로 하게 마련입니다. 위기를 만났다고 나 아닌 게 어디서 나옵니까? 내 속 생긴 대로 대처하게 마련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내 인격이 아닌 게 어디서 나오며, 내 실력이 아닌 게 어떻게 나옵니까? 온갖 죄악 수단과 방법을 다해 감투를 쓴 사람은, 그 감투를 온갖 죄악 수단과 방법을 위해 남용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현재의 생긴 대로 처신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중요한 것은 성공도 출세도 아니고, 자기의 속사람을 잘생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사람은 현재만을 민감하게 느끼며 반응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일 년 전에, 백 가지 도움을 준 사람이 오늘 필요한 한 가지 도움을 안 주면, 섭섭해 하거나 원망합니다. 어제까지 아무리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어도, 오늘 소원을 안 들어 주면 섭섭해 하고 원망하는 게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어제까지의 하나님의 열 번도 넘는 기사와 이적의 은혜는 망각하고, 오늘의 갈증과 굶주림의 고통만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과 감정을 뛰어넘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며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 하나님의 사랑으로 남들을 사랑하고 도운 후에, 그들이 몰라라 한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성적 사고와 판단이나 감정적 사고와 판단에 의거해서,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며 원망을 해 대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받아 주지 않으셨습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똑같은 위기와 똑같은 고난을 겪는 백성들의 원망 소리가 아니라, 모세의 기도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순종하여 한 나무를 쓴 물에 던지매, 물이 달게 변하는 또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쓴 물에 나무 하나를 던져 넣으라는 것이 납득이 안 되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듣고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기적의 은혜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나무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용되자, 모세를 비롯해서 약 24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과 가축들이 해갈하는 놀라운 사랑의 역사가 이뤄졌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무엇을 따라 사용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힘은 무엇을 따라 사용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돈은 무엇을 따라 사용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지식과 힘과 돈을 비롯한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통장 속에 잠자고 있는 단돈 만 원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용되면, 빈민국의 어린이들이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의 쓴 인생이 단 인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1916년 캐나다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의료‧교육 활동을 펼쳤던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가, 경기중학교에 합격하고도 입학금이 없어서 학업을 포기하려는 한 어린 학생에게 입학금을 대 주었고, 그 후에도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학생이 나중에 서울대학교 총장이 되었고,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서전 등에서, “스코필드 박사는 일찍 아버지를 여윈 나에게 친아버지나 다름없었고, 약자에겐 자애로움으로, 강자에게는 엄격함으로 대하라던 가르침은 철학적 신념으로 뿌리내렸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갈증에 쓴 물을 만난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그로 인한 중생과 자유와 평화와 말씀을 순종하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지 않았습니까? 우리 자신과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쓴 인생들 속에 던져 넣으시기 바랍니다. 단 한 번밖에 살 기회가 없는 이 세상의 삶을, 보다 많은 쓴 인생들을 달게 해 주는 것으로 장식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쓰디쓴 종노릇하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한 나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죄 사함과 천국 시민의 다디단 삶을 선물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쓴 인생을 달게 해 주어야 할 모든 종단의 쓰디쓴 사태는, 일부 성직자들이나 일부 유력한 신도들이 자신이나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쓰는 대신에, 야망이나 물욕이나 집단 이기주의를 따라 쓴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 말씀인 복음을 따라서, 자신이나 소유를 쓰디쓴 종단에 던져 넣으면 얼마든지 달게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 24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과 무수한 가축들의 갈증을 나무 하나로 해결해 주신 것을 계기로, 그들을 위해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시험하셨습니다. 치료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종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를 행하면 애굽에 내린 질병의 하나도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모세와 백성들을 위해 쓴 물을 달게 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로 인도하셨습니다. 엘림이 어떤 곳입니까? 물샘이 열둘이나 있고, 종려나무가 칠십주나 있는 곳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인간은 정처 없이 떠돌면서 쓰라리고 괴롭고 외로운 생활을 하다가, 정처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나그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든지 초라하든지 간에, 챵조주요 섭리자요 구원자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쓰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외롭고,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나그넷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의 종살이라는 쓴 인생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말씀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자신과 소유를 복음을 따라 쓰디쓴 인생들 속에 던져 넣어 달게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인생을 더욱더 달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남의 쓴 인생을 달게 하면, 내 인생이 달콤해집니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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