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7강 C. 율법의 저주와 믿음의 복[3:10-14] Ⓑ 3:13-14

최세창
  • 1734
  • 2023-03-14 17:13:21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율법이 인간을 의롭게 하는 대신에, 오히려 인간에게 저주가 되었다고 단정한 바울은 상대적으로 복음의 축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바울은 복음의 내용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에 대해 유대인이라는 설❶과 전 인류라는 설❷이 있으나,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는 말이, 쓰여진 율법을 따라 사는 유대인과 심비에 새겨진 율법 곧 양심을 따라 사는 이방인들 모두가 저주 아래 있음을 의미하는 것(3:10의 주석을 보라.)으로 미루어 후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죄 가운데 있는 인류를 위해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저주]’(카타라스, κατάρας: 3:10의 주석을 보라.)가 되심으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속량하셨으니]는 엑세고라센(ἐξηγόρασεν)이며, 당시의 노예 제도에서 취해진 용어이다.❸

헬라 세계에서 노예는 자기가 벌어들인 돈을 어떤 신전에 맡겼다. 오랜 세월이 지나 맡긴 돈이 자기의 자유권을 살 만큼 많아지게 되면, 그 노예는 주인을 데리고 그 신전으로 간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돈을 주인에게 치러 주고, 그 결과로 노예는 신의 소유가 되고 모든 인간들로부터 자유로워진다.❹

바울에 의하면, 율법의 종으로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사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십자가의 구속이다(고전 6:20, 7:25, 엡 1:7, 딤전 2:6, 딛 2:14, 벧후 2:5, 계 15:9). 이제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가로 얻어진 고귀한 자유를 가진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이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존재에 대한 최대의 가치 평가의 근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양식이란, 율법이나 양심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피로 값을 주고 사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저주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신명기 21:23(LXX)을 인용하여 증거하고 있다. 원래 70인역(LXX)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로 기록되어 있지만, 바울은 이를 생략하여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저주일 리 없다는 바울의 본능적인 생각 때문이다”(J. B. Lightfoot).

끝으로,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이 지닌 두 가지 목적을 말하고 있다(E. D. Burton, F. Rendall, 이상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참조: 3:9).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1:22의 주석을 보라.

[아브라함의 복]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란 이방인들도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믿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인 의롭다 하심(구원)을 얻게 한다는 뜻이다(3:9의 주석을 보라).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는 두 번째 목적이다(참조: 3:2, 5).

[성령의 약속]은 동격으로, 약속된 성령을 의미하며(욜 2:28-32, 눅 24:49, 요 14:16-18, 행 1:4, 2:33, 39, 히 11:39), 이 약속된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속죄의 양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받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믿음의 결단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자(엡 2:8, 마 16:17),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고전 12:3. 참조: 고전 12:9).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실 때(고전 3:16, 6:19, 고후 1:22, 딤후 1:14), 비로소 “우리는 율법, 죄, 죽음, 저주, 지옥,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등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M. Luther). 또한, 적극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성령에 의해 기도하며(롬 8:26, 엡 6:18),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고전 2:10, 고전 12:8, 요 15:26, 16:13), 능력(롬 15:18, 고전 2:4, 12:10)과 사랑을 받아(롬 5:5, 15:30, 고전 13장, 갈 5:22) 새로운 생을 살 수 있다(3:3의 주석을 보라). 한 마디로 말해, 성령을 좇아 사는 삶이다(갈 5:16).

3:10-14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율법을 준행함으로 의 곧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저주 아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자신의 육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힘 때문에 율법의 모든 조항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성경(합 2:4)이 이미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율법의 저주인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복인 구원을 얻으며, 약속된 성령을 받아 모든 속박에서 자유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좇아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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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B. Lightfoot, H. Alford, “Meyer, Vincent”(in 이상근), 이상근.
2) E. Huxtable, R. T. Stamm, R. C. H. Lenski, “Ramm”(in 이상근), 黑崎幸吉.
3) W. Barclay, 바울의 인간과 사상, 서기산 역(서울: 기독교서회, 1970), p. 34.
4) 참조: Ibid., p. 95. A. Deissmann, op. cit., p. 173. J. 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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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42-145.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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