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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교회 *** 강도의 방매와 갈취
민관기
- 2195
- 2023-03-24 01:42:02
때는 1945년이었고 조국은 왜의 압제로 부터 벗어나 36년 또는 50여 년만에 빛을 보았고 해방감을 만끽하였으며, 7~8년간 지속된 정신고문의 괴악한 실체인 교회안의 신도/신주단지와 교회 밖의 주로 면소재지 앞의 신사를 모조리 단 한 개도 남기지 않고 파괴했다. 전국적으로 보면 교회 안의 간이 신사 수 천개와 교회 밖의 정식 신사 2,200개였다. 단 3일만에 말이다. 이는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주님의 제지들다운 폭력이었다.
[ 아니 이런 폭력적인 교인들 같으니라구! ]
그 때 우리 감리교회의 선배들은 또 하나의 만행을 저질렀다.
행장기이며, 여기에 든 명단은 48인이었다. 함부로 남의 이름을 나불대다니?
흠흠~
아유~ 자랑스러워라. 우리 할아버진 모하신거야 33인은 커녕 48인에도 못들고..
여기에 2관왕을 차지하신 우리의 선배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정춘수' 이다.
이 분은 3.1독립선언시 민족대표로 참여하셨고, 그를 이어 48인에도 드셨다.
이는 마치, 이완용님께서 을사오적과 정미7적 그리고 경술국적에 이름을 당당히 올리신 것에 비견되는 사건이었다.
그 행장기의 이름은 친일매국매교행장기이다..
48인의 이름을 다 댈 수는 있지만 1명만 공개한다. 위의 '정춘수'
청주 출신으로 원산 목회시절 3.1 민족대표로 참여하고 투옥되었던 인물이나 민족말살정책기에 김종우 감독의 소천으로 감독이 되었고, 미국을 가 본적이 없어 그 먼나라 미국이 이 강대한 일본을 어떻게 이기겠느냐?는 정신머리를 가지고 세상믈정을 모르니 황국신민화 정책에 호응하고 왜적들의 강제 신사참배나 강제 교단통합 그리고 성경과 찬송 등의 마구잡이 어떻게 사건 등에 전혀 신앙적 대응을 할 수 없었던 최악의 '정춘수'
왜 감리교회 선배들은 콕 짚어 48인을 매국매교행장기를 작성하여 발표했을까?
그 이유는 자명하다. 우린 감리교회이기 때문이다. 이 민족을 감리하기 위해 이 땅에 전래된 감리교인의 당연한 의무였다.
정춘수의 핵심 죄악은 이렇다.
교회 39개 방매와 갈취이다.
이들은 왜적들이 국방헌금을 내라. 하자 작전을 짠다.
전국의 교회를 살펴 팔아먹을 교회를 선정하고 그 중 콘크리트로 지어져 팔았을 때 그 가치가 괜잖은 교회만 방매한다. 초가로 지어져 있어 팔아봐야 돈도 안되는 교회들은 뺏다.
그렇게 40개 교회가 정해졌고, 방매되어 20만원이 만들어졌다.
10만원은 명목이었던 국방헌금.
10만원은 정춘수 외 일당들이 나눠먹기.
최근자 나는 정춘수의 ***들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영화 기생충의 공중의 정반대 집의 젤 아래에서 부유반대생활수급자 예전 그 돈으로 지금도 부유하게 산다나? 뭐 그렇단다.
정춘수의 최대의 공적은 이 과정에서 나타난다.
그는 상동교회만 방매를 중단한 것이다. 40개에서 딱 하나 빼서 39개의 방매.
처음 방매가 결정되어 교회의 의자 등 성물이 중앙교회로 이동될 때 상동교인들은 울며불며 그 성구들을 쫒아 나섰다.
여기에서 정춘수의 빛나는 업적이 나타난 것이다.
상동교회만은 그래도 팔지 않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황도문화관으로 개조되어 하나님 신앙을 경배하는 곳이 아니라, 신도사상을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신앙하교 교육하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은 알고 있었다.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스크랜턴과 전덕기, 최병헌, 현순, 손정도, 이필주, 최성모, 김진호 등의 목회자들이나 이준, 김구, 이회영, 남궁억, 박은식, 신채호 등이 결사한 신민회의 본거지이며 헤이그 특사사건과 상하이 임정을 배태한 곳이라는 사실을..
하여, 교인들은 한편으론 안도했다. 그래 그래도 교회가 완전히 팔리진 않았으니 앞으로 소생할 수는 있겠다는 희망을 안은채 세월은 그렇게 그렇게 흘렀고 광복을 맞이 한 것이었다.
정춘수 잘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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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왜적들의 침략기 방매된 39개의 교회에 럵힌 이야기이다.
우린 광복/전쟁후 이북에 있던 400여 개의 교회, 학교, 병원 등의 기관을 잃었다.
그러나, 이는 전쟁후 대한민국에 온전히 갯수 상으로 복원이 되었으니 이를 감사히 여겨야 한다.
물론, 복구엔 미 감리교인들의 헌신의 노고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왜적 침략기 1,000여 교회, 기관은 북의 400여 개를 잃었음에도 1955년경 그대로 1,000여 개의 교회와 기관이 되었다.
이만 각설.
감리교회 선교정신과 재산의 형성과 과정 등에 대한 정보는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정확한 것이다.
갯수 딱 맞냐? 안맞냐? 말고.
당연히 추적되고 환수되고 회복되어야할 하나남의 거룩한 재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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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교회 매각 문제로 고발도 한다던데 무슨 연유일까?
*. 우리는 1935~45년으로 돌아가고 1945~55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35~45년은 팔리고 파괴되고.
45~55년은 파괴되고 다시 살리고. 의 세월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고 가고의 세월 속에 참 많은 인물들이 등장할터
송** 쓰리 스타도 있다고 한다.
나와 모두는 75년 전을 이어 지금의 의무를 다하는 감리교회를 감리한다. 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