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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희롱한 군병들 : 종려주일에 한 설교
최세창
- 1910
- 2023-03-31 08:18:36
<마가복음 15:16-20>
16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18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1. 시작하는 말
최대의 희롱은, 인류 구원을 위해 강림하신 주 예수님을 조롱한 것입니다. 이 희롱은 당시의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여 죄가 없으신 것을 알면서도, 유대의 지도층과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넘겨준 후에 발생했습니다. 종교적인 특권과 이권을 고수하려는 무리와 정치적인 특권과 이권을 고수하려는 무리와 우매한 일반인들이 작당하여 주 예수님을 제거하는 죄는 이사야 53:5에 예언된 바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 인간은 알든 모르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2. 예수를 희롱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간 군병들
유대를 통치하던 로마의 빌라도 총독의 명령을 복종하여 군병들이 예수님을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군병들”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치안을 담당한 안토니아 수비대이거나, 빌라도 총독이 가이사랴에서 데려온 부대이거나, 혼합된 군인들일 것입니다.
“브라이도리온”의 헬라어 프라이토리온(πραιτώριον)은 ‘사령부’, 즉 총독의 관저와 재판정으로 사용되었던 지방 총독의 본영입니다. 그 외에도 헤롯궁, 장군의 천막, 시위대의 병사, 시위대, 로마의 관청 등이 프라이토리온으로 불렸습니다.
“뜰”은 프라이토리온인 사령부 전체를 나타내는 제유법입니다. ‘궁전’, ‘왕이 사는 성’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뜰 안으로 들어갔으므로, 예수님에 대한 재판이 공개적인 실외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병들은 사령부에 근무하는, 약 600명이나 되는 모든 군인들을 뜰로 모았습니다. 그 목적은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인 십자가형에 처해질 예수님을, 한낱 놀림감으로 여겨 희롱하려는 것입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못박아 놓는 십자가형은 매우 잔인하고 끔찍하고 치욕적이며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므로, 로마에서는 자국 시민인 사형수에게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형에 처해질 예수님을 희롱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깨달을 영적 지각이 없는 유대의 권력자들이자 유대교의 권력자들, 예수님의 제자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 정치 권력자인 빌라도 총독의 영적 맹목에 이어서 로마 군인들의 영적 맹목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이신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길을 가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그토록 철저하게 모든 계층의 인간들에게서 버림받고 배척당하셨습니다.
현대에도 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으시고, 배척당하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기독교인들에게서도 버림받고 배척당하십니다.
아직도 수십억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 중에도, 예배 시간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 예수님을 배척하거나 무시해 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좀 나은 교인들은 속수무책의 환난과 풍파의 경우에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기도하며 지시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인들도 입술로는 주 예수님을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라고 하면서, 일상생활에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인생의 주권자로서 개입해 주시려는 주 예수님을 배척하거나 무시해 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디도서 1:16에는,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잠언 3:6을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1925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김 아무개 소년이 사과 서리를 하다 허시모 선교사에게 들켰습니다. 그 때에, 선교사가 열두 살밖에 안 된 소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압니까? 소년의 양쪽 뺨에, 염산으로 ‘도적’이라는 글자를 새겼습니다.
허시모 선교사의 잔인한 짓은 분명히 철저하게 자기의 주 하나님을 무시하고, 주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악행입니다. 그것은 사랑의 주 예수님께 대한 모독이요 희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철저하게 예수님을 예배의 주님으로, 특별한 경우의 주님으로, 더 나아가 모든 일상생활의 주님으로 시인하고 믿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의 마음 씀씀이, 사고방식, 강한 의지, 인내와 끈기, 행동 양식, 일하는 성실한 자세, 성결한 생활 모습 등을 듣고 보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종임을 알게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3 후반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시자 주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좇아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주하신 성령을 좇아 행해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무관한 종교인, 성령과 무관한 정치인, 성령과 무관한 군인, 성령과 무관한 민중, 심지어 성령과 무관한 기독교인들조차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영적 맹목 상태인 군병들은 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놀림감으로 여겨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당시에 잘 알려진 비참한 희롱 이야기를 흉내내면서 말입니다.
당시에는, 축제―유목민의 축제, 크로노스 신의 축제, 그리고 사트르스 신의 축제―때의 죄수를 처형하기 전에, 그에게 왕이 입는 자색 외투를 입히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특히, 아그립바 왕이 애굽에 도착했을 때, 민중은 그를 조롱하려고 카라바라는 바보에게 왕관 대신 꽃다발을 씌우고, 왕의 외투 대신 거적을 걸쳐 주고, 왕홀 대신 갈대를 쥐어준 다음에 신하로서의 경의를 표하면서 ‘주’라고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또, 주후 1세기말의 페르시아인들은, 유목민의 축제에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를 왕좌에 앉혀 놓고, 잠시 동안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통치를 하게 하며 조롱한 적이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군병들은 죄 없으신 주 예수님을 상대로, 희롱할 수 있는 최대한의 희롱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채찍질에 의해 터진 예수님의 살에 엉겨 붙은 옷을 벗긴 뒤에,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히고, 왕관을 흉내내어 가시나무 가지들을 엮어서 머리에 강제로 씌우고는,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마냥 조롱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들의 희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임금님에게 흔히 행하는 신하의 예를 흉내내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왕홀 대신에 예수님의 손에 쥐어주었던 갈대를 도로 빼앗아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고는 모든 군인들과 함께 희희낙락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 대한 그들의 희롱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 자신이 희롱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희롱하느라고 행한 짓들이, 참으로 주 예수님께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주 예수님은 죄 아래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실 영원한 사랑의 통치자이시며, 온갖 근심 걱정과 죽음의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비꼬는 난폭한 행동거지나 즐기는 사람들의 눈에, 교권욕이나 정권욕에 어두워진 사람들의 눈에, 출세욕이나 이권욕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의 주님이심과 왕이심이 알려질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실컷 조롱하며 즐긴 군병들은 예수님에게서 자색 옷을 벗기고, 채찍질에 갈기갈기 찢긴 예수님의 옷을 도로 입히고,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예루살렘의 성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대개 십자가형의 선고를 받은 죄수들은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이 모든 악행이,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인간들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악행을 당하는 것이 구원자 하나님의 뜻인 줄 아시는 주 예수님은, 줄곧 침묵하시며 견뎌내셨습니다. 이것이 성부 하나님께 대한 주 예수님의 순종의 길이었고, 또한 예언된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이 놀라운 영적 사실을 아는 기독교인이라면, 어떠한 하나님의 말씀이든 순종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기는커녕, 부인하거나 배척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아예 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예수님을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중생,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주님으로 믿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핍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복음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통해서 주 예수님을 알고 믿을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드릴 때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이 생활 속에서 주 예수님을 무시하거나, 주 예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동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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