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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인지 회개인지.. 역사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현석
- 1682
- 2023-04-07 20:21:31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1989년, 구속된 해직교사 석방을 위해 법원시위를 이끌었다.
1994년, 쌀개방반대 운동에 목원대 대표로 참가하여, 과기대, 충남의대와 함께 대전 서부권역 투쟁을 이끌었다.
나는 그것이, 농촌교회와 농민과 나의 부모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말씀하시기를, 우리 아들은 교회를 다녀서, 인생을 망쳤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은, <배신을 당할 때>이다.
그러나, 나는 과연 배신한 적이 없는가?
요즘 내가 사는 동네, 아산 배방에서는, 한국전쟁中에 학살된 양민들에 대한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지역 신문을 보니,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가, 지역주민 800명을, 부역자로 몰아 살해한 사건이다.
두만강의 소설가 이기형씨는, 배방 출신인데, 천안 유량동 향굣말(향교마을)에 가서 살았고, 월북했다.
나의 아버지는 신의주가 고향이시다. 유량동 향굣말은 나의 고향이다.
그리고 2023년, 나는 지금 배방에 살고 있다.
역사란 무엇일까?
여기 아산에는 맹사성의 후손들이 많이 산다.
나의 本은 安城이씨이고, 충숙공 이숙번의 후손인데, 맹사성의 목숨을 구한 이가, 충숙공이시다.
수천년 수만년의 역사속에서,
도둑놈과 살인자를 모두 잡아 죽였다면, 우리가 존재할수 있었을까?!
친일파든, 빨갱이든, 우리가 모두 잡아 죽였다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나의 아들이, ‘친일파’에 대해서 물었을 때,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고모님 두분이 평양에서 유치원을 다녔고, 집안이 몰락하여 월남했다는데, 우리는 과연 깨끗했을까?
친일파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이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돌보고, 예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양병원에 계셨던 권사님.. 권사님은 한국전쟁中에 남편을 잃고, 시모를 모시고, 딸 하나를 키웠다.
그분, 그 가족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나와 형도, 고모할머니의 묘를 돌봤다. 아들이 학도군으로 전사했기 때문이다.
국가유공자 老권사님의 마지막 시간이, 쓸쓸해지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故이규호兄은 충남대 74학번이고, 신대원에서 공부했다.
兄은 한울회 사건의 피해자이다.
1992년, 형의 정신은, 이미 고문으로 망가져 있었고, 고통스러워했다.
형은 신비주의에 몰입해 있었고, 그런 연유로 나를 아껴주었다.
음대 앞 잔디밭에서, 형이 나에게 한 말은, (데모가 아닌) “영어로 생각하라”였다.
그 兄은, 왜 고문을 받아야 했을까? 왜 사람들은 兄의 정신과 인생을 망가뜨려야 했을까?
작년 겨울에야, 형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인생은.. 원래 이런 모양인가 보다.. 참 슬펐다.
사람들은, 변명하고, 변명한다. 그리고, 변해간다.
예수는 고난을 받고, 해를 받으시고, 부활하셨다.
사실,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은, 죄인이요, 부끄러운 자들이다.
아마, 내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부유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의 최후 승리와 몸의 부활을 믿는다.
여기서 의는, 내가 생각하는 의가 아니라, 주님께 속한 의이다.
좌와 우의 대립속에서, 형제와 형제의 살해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