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2강 F. 믿음의 도래[3:23-29]Ⓑ 3:27-29

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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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4-07 19:58:11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상태에 대해, 바울은 또 다른 말로 설명하고 있다.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헨리(M. Henry)는 “유대인들에게는 할례가 유대교에 들어가는 증표가 되듯이,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교로 받아들이는 의식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클레이(W. Barclay)는 실제로 유대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의식을 거쳐야만 한다고 하였다. 즉, 유대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할례를 받고, 희생 제사를 드리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기 위한 정결 의식은 유대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레 11, 15장). 이 유대교적인 세례 의식은 다음과 같다.

세례 받을 사람은 머리칼과 손톱을 자르고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다. 세례를 위한 통에는 물이 부어지는데, 그 물 속에 온몸이 잠겨야 한다. 그는 세 명의 세례 아버지(fathers of baptism)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직 물속에 있을 때, 그에게 율법서의 한 부분이 낭독되고, 격려의 말씀과 축복의 말씀이 주어진다. 그가 물에서 나오면 비로소 유대교의 신앙을 가진 회원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결국 그가 유대교의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세례를 통해서이며, 신앙에 들어가기 위해 세례를 받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자는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분 안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롬 6:3-, 골 2:12). 그리스도교의 세례, 즉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란 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M. Henry, R. T. Stamm). 따라서 여기서의 세례는 물 세례를 뜻한다기보다는, 세례 요한이 예언한 성령의 세례(막 1:8)를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바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고전 12:13).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례를 받은 자는 현실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 사람이므로(롬 6:3-8, 2:20의 주석을 보라.), 그의 옛 인간성은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새 사람이 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이요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 인간이다”(R. T. Stamm).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세례 받은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고 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헬라 세계에서 나서 자란 그가 그 세계의 관습을 따라 비유적으로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 로마나 헬라에서는 아이들이 자라 성년이 되면 그 표로 성인복을 입었다.❶ (2) 당시의 신비종교에서는 신입자에게 그의 신의 성격과 존엄성과 능력을 부여한다는 뜻에서 신성의 상징인 겉옷을 입혔다(R. T. Stamm, J. Dow). 이 옷 입음이란 곧 신과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3) 고대 사회에서 친구의 옷을 입는다고 하면 더할 수 없는 사랑과 단절될 수 없는 우정을 표시하였다(Chrysostom).❷

여기서는 어느 한 견해를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세례 받은 자는 누구든지 이제는 몽학 선생 아래 있던 아동기의 상태에서 영적 성년기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개성을 취하고, 매일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임무를 지속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5:24, 고후 5:17-18, 롬 6:1-14, 8:1-13).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참조: 사 61:10)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동등성에 대한 바울의 사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당시의 불평등한 사회 질서에 대한 혁명적 선언이었다. 당시에 유대인과 헬라인 곧 이방인 사이에는 엄격한 차별이 있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들’이라고 불렀으며,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을 경멸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차별과 경멸은 민족과 민족뿐만 아니라, 그들 민족 자체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점에 대해 바클레이(W. Barclay)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헬라 세계에는 세 가지 커다란 차별이 있었다.

(1) 헬라인과 야만인 사이의 차별이 있었다. 헬라인들은 사람들이 자랑할 만큼 아름답고 융통성이 있으며 의미 있는 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바바’(bar bar)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이상한 말씨로 괴상한 소리를 발하였다. 헬라인들은 이들, 즉 헬라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2) 노예와 자유인 사이에 차별이 있었다. 이 차별은 고대 그리스에서 단순히 경제적이며 사회적인 차별보다 더 심각한 것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인 차별이었다. 아리스토틀은 나무를 베는 사람과 물을 긷는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남녀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문화층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판에 박힌 생활과 과제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위치를 개선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유인으로 태어난 헬라인들은 노예들을 경멸하였다.

(3) 현명한 사람과 무지한 사람 사이의 차별이 있었다. 플라토는 아카데미(Academy)의 문 위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썼다. 고대 그리스에는 신들과 인간들에 관한 일에 정통하기 위해 일생을 보낸 철학자들이 있었으며, 반면에 단순한 생각을 가진 단순한 무리들이 있었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들과 단순한 사람들을 경멸하였다.

로마 세계에서는 로마인들과 그 밖의 종족 사이의 차별이 있었다.······로마인들은 세상을 로마 시민의 안락과 위안을 위해 이용되어야 할 장소로 이해하였다.

유대 세계에는 다른 어떤 세계보다 더 큰 차별이 있었다.

(1) 유대인들은 가장 극단적이고도 오만한 마음으로 세상에서 그들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이방인들은 멸망을 당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경멸하였다.

(2)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별이 있었다. 여인들은 공적으로 업신여김을 받았다. 따라서 유대의 남자들은 아침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창조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유대 세계에서 여인을 교육한다는 것은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과 같았다. 이러한 이유로, 엄격한 랍비는 공공연하게 여자에게 말하면서도 쳐다보지는 않았으며, 심지어 자신의 아내나 누이에게 말할 때에도 쳐다보지 않았다.

(3)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별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가장 하찮은 조항까지도 지켰으며,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땅의 백성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땅의 백성과 결혼하거나, 또는 자기의 가족을 결혼시키는 일은 범죄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사업을 같이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에게 어떠한 후대도 베풀지 않는 동시에 그들에게서 어떠한 대접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여행도 함께하지 않았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경멸하였다.❸

그러한 사회 질서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의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말은 실로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기존의 사회 제도나 질서를 뒤집어엎는 정치적 혁명이나 폭력적인 혁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인간의 동등성 곧 평등사상이란 근본적이며 신앙적인 의미,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근거된 동등한 신분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은 다 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창 1:27, 욥 31:15), 타락한 이후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손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이다(롬 12:5, 고전 6:15, 12:12, 27, 엡 5:30).

한 몸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인종적, 사회적, 정치적, 성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하나님에 의해 각 사람에게 부여된직무와 기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적 신념이 온갖 종류의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어 왔으며, 또한 현대의 모든 가정, 사회, 그리고 국제 문제 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동등성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미하는데(M. Henry, R. C. H. Lenski, W. T. Dayton),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약속하신 그리스도(3:16의 주석을 보라.), 즉 아브라함이 믿은 것처럼 믿는 모든 사람이 복을 얻게 되는 그리스도께 속했기 때문에 영적인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상속자들인 것이다(4:1,7, 롬 8:17, 엡 3;6. 참조: 갈 4:28, 딤후 1:1, 딛1:2, 히 9:15. 3:18의 주석을 보라).

3:23-29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주께 대한 믿음 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교리의 시대가 명백하게 도래하기 전에, 현실적으로 인간이 주를 믿기 이전에 인류는 율법(양심)의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율법의 감옥에 가두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죄를 인식하여 속죄주이신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몽학 선생과 같은 율법의 역할은 믿음이 오기 전까지에 국한되는 것이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의 옛 인간성이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인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이요,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 인간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평등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인간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다. 그들은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믿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유업을 받을 동등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인종적, 사회적, 정치적, 성적 차별 등이 없으며, 다만 각자의 직무와 기능과 역할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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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F. Rendall, J. Dow, C. R. Erdman, W. T. Dayton.
2) in 이상근.
3) W. Barclay,and Jesus said(Edinburgh:The Saint Andrew Press, 1972, Rep), pp.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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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66-172.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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