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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제주 4.3의 2천년 이야기 통일원료이다
민관기
- 1519
- 2023-04-06 17:30:17
우린 일 평생 수 대를 이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아왔고, 주님의 삶에 대한 충분한? 사료를 가지고도 아직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이고..
제주 4.3의 진실 또한 바로 엊그제와 같은 역사였으나 그 진실이 가려져 있다.
그리고 주님의 역사 또한 지나오는 세월동안 수 십, 수 백억의 사람들이 알지못하고 믿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이나 앞으로도 수도 없을 터이고, 제주 4.3 또한 그럴것이지만 [앞서가는 감리교인들만은 달라야 한다]라는 믿음으로 짧은 이 글을 쓴다.
제주 4.3 항쟁과 폭동?
여순반란사건과 – 여순 사건 등
아직도 제대로 된 호칭 평가도 안되는 현실에 우리 대한민국이 있다.
*. 사실 관계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사회주의 계열 300여 명의 무장봉기가 있었다. 제주의 봉기지도부는 이 섬이 안정적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섬에 까지 들어와 강경진압을 하겠냐?는 다소 안이한 정세판단을 하는 오류가 있었다. 이들의 이 극좌맹동주의 오류로 100배에 달하는 3만여 명의 무고한 희생을 불러왔다.
진압자들은 봉기자 300명만 진압하여야 했지만, 일반인을 이 봉기자들과 잘 알 수도 친할 수도 있으니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각설~
제주 봉기지도부는 역량관계와 섬의 고립이라는 특성을 고려 부족할 수 밖에 없는 각종 자원의 부족을 고려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결정적 우를 범했다. 이들은 무장전이 아닌 농성전을 벌였어야 했다. 3.1 행사에서 벌어졌던 희생을 빌미로 무잔봉기를 일으켰다? 뭔가 이상해도 많이 이상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3.1 절 행사에 무고한 아이가 희생이 되었다. 근데 무장봉기를 벌인다. 이는 다분히 실상은 기회를 이용한 위에 기술한 극좌맹동주의에 다름아니다. 나 같으면 항의 철야 단식 농성을 조직했겠다. 죽어라 패서 해산시키면 시키는 대로 맞아가며 제주인들의 항전의지를 더 모아가며 불퇴전의 투쟁을 조직하고 대륙과의 연계를 든든히 해가며 무장봉기하지 이런 황당한 사람들을 보았나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또 각설~
제주인은 사실 탐라인의 전통으로 보면 호칭 자체에서 박대를 받은 지역인이다.
탐라는 담일이 변한 말이고 담알은 예전 고/ 양/ 부씨가 고구려로부터 남하하고 조선술을 이용 바다 건너 섬에 이른후 붙였던 이름이다.
우린 저 대륙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빛인 피를 담지한 알족들이다. 하니, 우리의 국호를 강하게 담은 알이라 하여 탐알인데 앞으로도 그러하여야 한다는 함을 바라 ‘탐하고/ 라. ’라는 [탐라] 미래형 언어로 변형시켰으며 이를 영원히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저 산과 산 위의 호수(백록담)를 걸고 맹약한 이름이 고/ 양/ 부씨의 탐라였다.
한편, 탐라의 고씨는 고구려 주몽의 또 다른 아들로 보인다. 비류/ 온조가 유리가 부여로부터 남하하여 망명하여 오자 양아버지와 같은 왕자의 난을 피해기 위해 스스로 모친을 모시고 한강유역으로 이동했듯 주몽의 또 다른 아들 고씨도 양씨와 부씨를 대동하고 남하[아버님 저도 양과 부를 데리고 저의 길을 떠나겠습니다. 그래 가라!]하여 선 왕국을 건설하지 않고 고/ 양/ 부씨가 부족국가를 공동 건국+하고 공동 부족장이 되어 500여 년, 1,000여 년이 흐르며 신라와 관계하고 고려로 대륙의 형제들이 통일되자 탐라국은 스스로 옛 한 조상 아래 한 나라로의 통합을 스스로 이루었다. 결코 강요에 의한 복속이 아니었으며, 조공관계가 이루어진것도 아니고 정확히 한 형제와의 결합이었으며, 옛 형제와의 다시 만남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형제간에 피를 흘리며 싸우지 않고 하나될 수 있는 이 기쁨을 이들은 1,000여 년만에 누렸다.
이렇게 고려로 500여 년이 지나며 탐라의 위상은 제주목으로 전락++했다. 우리의 해양에 대한 이해(섬나라 왜가 우스웠고)가 그랬고 이 곳이 중죄인들의 주요 유배지가 되고 왜구의 노략에 살기가 고로왔던 까닭이 작용되었다.
- 조정에서는 주여 지역을 목으로 지정하고 목사를 파견하여 목을 지키게 하였다.
하여, 제주목, 상주목, 진주목, 충주목, 광주목, 해주목 등이 생겨났다.
그렇다하여도 그 전래의 고/ 양/ 부씨의 왕자의 난 피함, 왕정을 선택치 않고 부족간 화백회의를 통해 운영하던 부족의 화해와 협력전통, 스스로 대륙의 형제국과의 통일 등의 정신은 여젼히 면면히 흐르던 터에.
곧, 우리가 택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모범이었던 우리들의 뜻과 혼은 꺽일 수 없다. 의 정신으로 달랑 300명이 무장붕기를 일으켜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 반대 무장투쟁에 전면 돌입했던 것이다.
이것이 제주 4.3에 담지된 2,000여 년래 제주인속의 본질아더,
이것을 항쟁이라 할 것인가? 폭동이라 할 것인가? 의 문제가 우리민족의 대사를 가른다. 한낱 섬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하여 좀 작게 보인다면 그건 크나큰 오류이다. 어디에서든 그 정신과 줄기는 또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며, 본질은 명확히 세상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찌하랴!
+. 이 때 한라산과 백록담의 호칭이 정해졌고 한라는 한알의 변화어이고 한알은 지금의 하나이므로 탐라인은 한라산을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에게 약속의 상징으로 한라산이라 명명하고.
백록담은
- 백은 깃들어 받아 이은 빛
- 록은 올리어져 있고 계속 앞으로도 올리어짐을 바라 록으로 변했고, 이는 사슴의 뿔이 그러하게 계속 반복하여 올라오는 현상을 본 딴 것이며
- 담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뜻을 담았고 닿았으므로 담기어진 물도 있고하니 그 물에 세례받듯 족장들이 목욕재계하던 거룩한 곳. 그곳이 백록담이다.
곧, 한라산은 자체가 하나님이라 상징되었고 산 자체가 성소로 제례가 올려졌던 민족의 소도이며 건축물이 없는 자연 성전이다.
현데, 요즘은 이 정신을 잊고 산 자체가 신=하나님인양 산신제를 드리니 참 우스운 노릇..
얼마 전 원희룡 전 제주지사가 본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산신제레인 예배에 가서 이를 예배가 아닌 산신제를 한다하니 자신은 기독교인이라 제례에 참여 안 한다고... 역사의 오판이 가져오는 하나님의 눈물이여~
이 고/ 양/ 부의 한라산과 백록담은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성전이다.
- 아님 어디 더 큰 성전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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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4.3의 봉기자들이 6.25가 나기 전 3년 여 전에 김일성의 사주로 봉기했다? 그건 처음엔 아니고 후에 지원 등의 개입은 있을 수 있었다.
아직도 4.3의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29,700인의 희생자들은 추모되어야 하며, 300인의 문제는 아직도 정확히 말해서 미정의 추도상태여야 한다.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르자는 말은 아니지만 선후관계에 대해 선 선을 그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반도내 유일한 합법정부 구성을 거부하고 무장봉기한 것에 대한 분명한 평가/ 정의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 배아프고 분노할 일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이것이 국민의 힘 정부가 대선 전 약속과는 다르게 제주4.3 추념행사에 불참한 말로 표현 할수 없는 결정적 이유이다. 아무튼 민족의 큰 숙제로 남아있으며, 통일로 가는 길에 우리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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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탐라인이었다가 제주인이 된 탐라인들은 이런 굴욕에도 수 백년을 아무 불평없이 살아왔다.
제주 4.3의 핵심 본질을 밝히 알자.
++. 제주의 뜻 :
탐라는 위의 뜻이며 제주는 젓잇 줏이 본말이다. 젓잇이란 젓어들어 이어졌다는 뜻이며 이는 겸손하게 이어지다. 이니 이것은 탐라인의 기상을 높여 겸손한 사람이라 칭송하는 것이 아니며 젓어져 작고 낮은 사람들이라고 비하하는 호칭이 제주라는 말이다.
제주인은 제주란 호칭이 주어진 이래로 이 호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단 기록을 아직 못봤다.
제주무중봉기 – 항쟁은 제주인의 세포속의 기록을 오판이었으나 실천한 것이다. 이를 제주4.3 학살사건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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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정리하면
무장봉기자들은 고려에 이르러 통일되자 스스로 민족화합과 통일을 이룬 그 정신이 단독선거 단독정부 수립으로 파탄날것 같자 이를 저지하기 위한 항쟁이다. 가 정확한 4.3의 정신이었다. 하니, 이들의 엄청난 오류와 오판이 있었음에도 이 정신만은 남과 북의 정신사학자들에 의해 기려지고 전승되어야 할 절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들의 자존감은 이재수의 난으로 증명된다.
제주 선교를 지작한 천주교는 소위 건방선교를 하였다. 이 못사는 조선인들은 우리가 부자처럼 잘난척하고 행세하여야 전도가 될것이란 생각에 교자상 타고 곰방대 물고 제주인들을 하인부리듯 무시해가며 하는 선교를 하였다. 이것의 심리적인 선교의 상태가 하디와 같은 상테였다. 여기에서 하디는 깨달아 회개하고 우리민족에게서 하나님의 본성을 깨달아 하나님으로 섬겼고, 천주교 선교자들은 우리민족에게서 하나님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여 이재수의 교난을 겪은 것.
제주인들은 천주교측의 건방선교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으며,
이 정신이 제주 4.3의 정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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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고양부와 한라산, 백록담, 비류와 온조, 이재수의 교난 등 몇 가지의 역사의 파편들을 가지고 재구성한 것입니다.
또한, 제주인의 옛 정신의 유래가 밝히 밝혀지므로 앞으로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어나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4.3의 구체적 서술은 99% 생략된 것이므로 항왜구국기부터 해방정국과 6.25 그리고 뭍혀왔던 50여 년의 진실인 토벌대의 역사인 미군정, 이승만, 조병옥, 토벌대, 서청단 등의 역사와 여순사건과의 인과관계 등은 따로 확인/ 서술되어야 함을 말씀드립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