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철 목사의 노고와 고충 그리고 고충을 생각하다가,.
관리자
- 4084
- 2012-06-05 17:47:47
조병철 목사님은 예의바르고 베풀기를 잘하는 분별력이 높은 좋은 목사이다. 그래서 ‘나단’(주는 자)이라는 별칭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병철 목사에 대한 밝은 인상을 나는 지금도 갖고 있다.
최근 나는 조병철 목사에 대해 좀 자세히 생각 할 수 있었다. 이때 떠오른 단어가, 노고(勞苦)와 고충(孤忠)과 고충(苦衷)이다. 부디, 조병철 목사 앞에 지극한 은총이 위로부터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우리는, ‘자유게시판’이 혼탁해 갈수록 2012. 5. 30 오후부터 6. 1 오전까지 내려졌던 ‘언로제지’를 ‘화재 시각경보기’ 작동(作動)으로 삼아야 한다. 이 개편은, 김기택 임시감독회장의 공무개시라는 시점과 맞물려 단행되었다는 점에서 오해(誤解)로 번져 거센 환원요청에 힘을 실어주어 정상화된 것으로 해석 된다. 2012. 6. 1 오전 11:57 ‘김기택 임시감독회장의 특별지시로 누구나 읽기에 가능하도록 지시함으로 읽기제한을 변경한 것이다\\'라고 관리자가 게시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틀 동안 ‘자유게시판’은 로그인(Login)을 사용해야만 접근케 한 불편 때문에 고요했고 극히 적은 독자가 ‘감게’에 참여했다. 이 현상은 ‘통계상승효과에 반한 내실정예효과’ 시도의 산술평점이 정확하게 나타낸 결과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 둘 것은 언젠가 비교, 검증여론의 팽배로 ‘내실정예효과’로의 전환이 요청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징후(徵候)다. 독자대세가 파격적인 뉴스와 흥미편향에 끌리는 것 같지만, 냉정히 분석해보면 진가(眞價) 있는 문장만 골라 섭취하는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되새기며 ‘자유게시판’(감리회소식)을 아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반복되는 3重苦(중고) 경제와 정권 말 증후군(症候群)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1929년 미국 대공황에 버금가는 대 폭풍을 만나 잔뜩 우그러져 숨쉬기도 힘들다.
누란(累卵)의 위태(危殆)에서도 회생(回生)의 기적을 발휘해줬던 감리교회 영성(靈性)은 고갈(枯渴), 영천(靈泉)이 말라버렸다. 누군가 부담 없이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어 목을 적실 수 있게 해 주었던, 길신(吉辰)을 그리워하는 지경까지 왔다.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위명(委命)을 받은 목사 자신부터 스스로의 정량(定量)을 채우지 못해 연명(延命)하기에도 벅찬 딱한 실정이다. 게다가, 우리가 서 있는 감리교회 광장(廣場)엔 선량한 성도를 노리는 독사(毒蛇)에 먹사들이 사면초가를 이루고 있다. 이 추한 모습이 ‘샤이버 시대 인터넷’을 통해 도배(塗褙)되고 있다. 여과(濾過) 없이 휘갈겨진,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까지도. 목사(牧師)의 부끄럽고도 처참(悽慘)한 모습들이다. 그 속에 나도 서 있었다.
‘자유게시판’은 감리교회의 지체로서 감리교회의 난파(難破)와 좌초(坐礁)는 막아야 하기 때문에 안 읽을 수도 없고, 읽으면 감리교회 동역자의 이야기니 빠져들 수밖에 없고, 문제는 내 안의 영(靈)이 읽는 순간에 빠져나가고 있다는 거다.
“감리교회 사태 4년” 인간의 계산으로 볼 때 허송세월 같으나, “하나님의 뜻(성경)에 합당해야하고 교리와 장정에 충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성결(聖潔)한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과정이었다. 인간의 생각이 제한되어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4년, 그때 그 때의 목적이 시행되어 왔음을 증언해준 기회였다. 그 증거물이 ‘감리교회 자유게시판의 기록들’과 신실한 ‘감리교회 성도들의 기도’다.
감리교회 사태 이후 감리교회가 렙소디(rhapsody,狂詩曲)를 쓰고 있는 거 잘 안다.
열심히 글로 감리교회를 말하고 있는 분들의 애쓰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말 싸움, 글 싸움은 고만 하여라.
단합(團合)을 이룬 후에 경쟁(競爭)하라.
두려운 6월을...
2012. 6. 5
서대문교회 이주익 목사